“정부 국고지원 부족으로 기성회비 발생했는데 대학에 책임전가”

국‧공립대 “기성회비 제하면 30% 재정 구멍… 대학 운영 불가”
국총협 등 “교육부 공교육 철학 없어, 이참에 ‘교육공공성’ 이슈화해야”

[한국대학신문 송보배 기자] 내년 초 ‘기성회비 반환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다시 국공립대 기성회비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법원이 ‘기성회비 반환 소송’에 연거푸 학생 승소 판결을 내려 현재로서는 기성회비 징수의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국‧공립대들이 2학기에도 기성회비를 걷고 있어 최종판결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국‧공립대 관계자들은 “기성회비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국고 지원 부족으로 학부모에 부담을 떠넘긴 것”이라며 “주체는 정부인데 지금 와서 각 대학의 문제인 것처럼 발뺌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각 대학의 문제가 아닌 ‘교육 공공성’에 대한 철학의 문제, 사회적 합의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는 지난 18일 기성회비를 교비와 일원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같은 교육부 발표에 국‧공립대에 대한 재정 지원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기성회비 50% 정부 예산 부족분 충당에 쓰여, ‘국립대’ 맞나 = 국립대 기성회계에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지출한 시간강사료, 공공요금, 인건비 등은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20일 국회 교문위 정진후 의원(정의당)이 발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기성회비 수익의 약 50%가 정부 예산의 부족분을 충당하는데 쓰였다.

시간강사 부족분에 1634억원, 공공요금 부족분에 1601억원 등이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국‧공립대에 대한 정부 재정이 열악하다는 의미다.

지병문 전국국‧공립대총장협의회장은 “국고에서 교수들에게 주는 연구비가 1년에 400~500만원 선이다. 1980년대에 한 번 오르고 그 뒤로 오른 적이 없다”며 “국립대 교수들의 연봉이 사립대의 절반 수준인데 이런 상황에서 우수한 교수를 유치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시간강사 부족분 지출에 대해서도 “대학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강사 수가 있는데 정부 지원금만으로 충당하려면 절반의 인원밖에 쓸 수 없다. 정부 지원 제대로 됐다면 대학이 기성회비를 걷을 이유가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국립대 회계 문제도 제기된다. 현재 국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 비중은 35% 내외다. 국고 비중이 적은데도 ‘국립’이라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대학학회 TF팀장을 맡은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과) 역시 “미국 주립대들도 50~60%가 공공 재원이다. 그렇게 지원이 돼야 주립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우리나라는 심지어 ‘국립대’ 임에도 국고 회계는 3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국고 지원의 열악함이 기성회비 문제의 핵심이라는 데에 국공립대 의견이 모아진다.

■ 국립대 관계자들 “정부 장기 비전과 철학 부족‧기성회비 대학 탓은 침소봉대” = 이런 상황에서 기성회비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가 대학에 책임을 전가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병문 회장은 “기성회비는 대학들이 마음대로 걷은 것이 아니다. 그동안 ‘비국고회계 관리규정’ 등 마련해 기성회비를 관리해 온 정부가 이제 와서 마치 정부는 막았는데 국립대가 마음대로 걷어서 쓴 것처럼 책임을 회피한다. 이런 시각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반상진 교수는 “일부 언론에서 기성회비의 불법적 사용을 부각시키는데 물론 그것은 대학들이 개선해야 하는 문제”라고 전제하면서도 “마치 대학이 근거 없는 기성회비를 불법으로 거둬들인 것으로 비추는 것은 잘못”이라며 “국립대에 대한 심각한 이미지 훼손”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무책임한 처사에 대해서는 학생 측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혜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정책위원장은 “정부에서 마치 당사자가 아닌 것처럼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말하며 “어떤 대학도 기성회비 문제에 대해 정부가 책임지라는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학생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면서 학생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는 대학 당국도 비판했다.

또 정부의 ‘공교육’에 대한 의식 부재도 지적되고 있다. 지병문 회장은 “대학교육의 공공성에 대해 정부가 관심이 없다”며 “우리나라 국립대생 20%에 불과한데 정부는 지금껏 국립대생을 줄이는 정책으로 갔다. 교육공공성에 생각한다면 국립대 투자 늘리고 국립대생 수를 늘려야 하는데 거꾸로 해온 것”이라 강변했다.

김혜민 정책위원장도 “정부가 국립대에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갖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 ‘야당법’ ‘여당법’ 해석에 시각차 여전, 대법원 판결 앞두고 대책 마련 ‘시급’ = 내년 초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여‧야당이 마련한 대체 입법은 아직 국회 계류 중이다.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안(이하 재정회계법)’,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기성회 회계 처리에 관한 특례법안’,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국립대학법안’이 그것이다. 이중 교육부가 지지하는 법안은 기성회비를 등록금에 포함시키는 재정회계법이다. 이는 기성회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으로, 정부로서는 가장 국고 지출 부담이 적은 방법이다.

하지만 재정 부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지난 20일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과 전국국공립대학생대표자연석회의는 기성회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의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은 기성회비를 합법화하는 법안이라며 공격했다.

김혜민 정책위원장은 “정부에서 공교육 책임을 못 지니 꼼수 부리는 것 아닌가”하고 말했다.

이병운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상임회장은 “기성회비는 60~70년대 정부가 재정이 부족하다며 마련한 것”이라며 “이제 국립대 정체성을 살려 기성회비를 없애고 국고 지원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정회계법이 통과될 경우 총장에 권력 집중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반상진 교수는 “재정회계법 통과되면 총장이 인사권과 재정권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상당한 권력 집중화다. 총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학 전체가 좌우된다”며 “정부 지원은 없는데 국립대는 학생들의 비판 대상이 되고, 교수들은 총장에 대한 견제력을 사실상 상실하게 돼 학생, 교수 불만이 가중 된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대의 재정 자율성 면에서는 긍정적이라는 반응도 있다. 한상신 전북대 사무국장은 “국고로 지원되는 일반회계로는 대학 자율성에 한계가 있다”며 “지금까지 각 대학에서 특화된 학생 지원 프로그램, 이를테면 전북대가 실시하는 학생 해외 봉사와 해외 대학 경험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이제껏 기성회계에서 담당해왔다”며 “재정회계법 통과되면 기성회계가 담당했던 대학 재정의 자율적 영역이 확보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여‧야당이 서로 합의해 대법원 판결 전에 빠른 대처를 마련해 줘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지병문 회장은 “대체 법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 초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큰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며 “여‧야당이 서로 타협해서 빨리 대체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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