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구조개혁 관건은 대학-교육부 신뢰회복

“평가기관 민간 위탁해 특성 따른 평가 받도록 해야”
“학문단위 분야 평가 도입 필요 … 종합평가 병행”

2004년 구조개혁 선도대학 지원사업 이후 대학구조개혁 정책 추진 10년이 지나고 있다. 10년간 대학구조개혁 정책은 대학가의 불신과 불만을 키웠다. 교육부와 대학 모두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평가방식에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정부재정지원사업을 미끼로 한 교육부의 일방적 대학 줄세우기 정책에 대학구조개혁 정책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향후 대학구조개혁 정책의 새로운 방향과 신뢰구축 방안에 대해 3회에 걸쳐 심층 취재 보도한다. <편집자주>

▲ 10년간 추진된 대학구조개혁 정책을 바라보는 대학들의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다. 일방적인 정책 하달 방식에 대학들은 교육부가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5월 9일 전국에서 모인 교수와 학생들은 서울 대한문 앞에서 대학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소연‧이재 기자] 대학가가 교육부에 날선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비판의 날을 세운 이유는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구조개혁 평가초안 때문이다.  평가지표가 종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핵심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대학구조개혁 ‘새판짜기’를 강조하며 취임했지만 뭐가 달라졌냐는 불평이 쏟아진다.

지난달 30일 한밭대에서 열린 ‘대학구조개혁 평가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는 교육부 ‘일방통행’의 전형으로 지적됐다. 교육부가 각 대학에 공청회 개최 공문을 발송한 것은 금요일인 26일 오후다. 주말을 끼고 있어 사실상 대학가의 업무가 종료된 시점이다. 한 대학협의체에서는 “화요일에 열리는 공청회를 금요일 오후에 공지하는 건 사실상 오지 말란 이야기”라며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김민기 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은 “3자협의체를 구성하자는 둥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공청회를 졸속으로 진행해 평가지표를 통보했다”며 “교육부가 대학구조개혁 당사자들과의 공감대는 안중에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 신뢰는 핵심요소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집행자와 대상 사이의 신뢰관계 구축이 정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대학구조개혁에서는 평가자인 교육부와 피평가자인 대학 간 신뢰관계 구축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대학은 교육부가 지금처럼 일률적인 평가방식으로 줄 세우기를 거듭하고, 정책 집행 과정에서 일방통행을 고수하는 동안은 교육부에 신뢰어린 시선을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와 대학 간 불신은 이미 도를 넘었다. 평가대상인 대학들은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가 없어 정원감축 등 ‘제살깎기’에 선뜻 동참하지 않고 있다. 한 경남지역 사립대 기획처장은 “교육부가 제대로 된 평가안을 가지고 나오면 따르겠지만, 지금 교육부가 그럴 수준이나 되냐”고 비판할 정도다.

■‘포스트 대학구조개혁’ 핵심은 신뢰회복=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구조개혁 정책을 새 궤도에 올리는 첫 번째 과제가 신뢰회복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신뢰회복을 위한 중론은 평가기관을 민간에 위탁해 다양화하는 것이다. 교육부가 일률적인 잣대를 세워두고 평가 지표를 만들어 전국의 모든 대학을 일렬로 줄 세우는 방식에 대학들이 거부감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평가 민영화’다. 이미 교육부도 세부지표 마련 등은 한국연구재단이나 한국교육개발원 등 준정부기관을 활용하고 있지만 이 같은 체제를 아예 민간위탁으로 돌리자는 것이다.

이 방식을 도입하면 특성에 적합한 평가가 가능하다. 기숙사 수용률처럼 지역과 수도권의 특성에 따라 중요성이 다른 지표를 한꺼번에 평가받지 않아도 된다. 진민 경남대 기획처장은 “수도권은 지방 진학자가 많으면 기숙사 지표가 더욱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지방은 인근지역 진학자가 많으면 기숙사 지표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현행 체계는 둘을 한꺼번에 비교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학은 최근 기숙사 수용률을 높이기 위해 융자사업을 통해 기숙사를 신축한 바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대학평가에 이 같은 민간위탁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996년 7월 비영리기구인 ‘고등교육인증위원회(Council for Higher Education Accreditation, CHEA)’를 출범시켜 이에 속한 3000여 개의 회원교가 자율적으로 협의한 규약에 따라 평가인증기구를 지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주로 대학 기관의 교육 수준점검과 향상에 초점을 두는 방식이다.

■ 학문마다 특성 달라…학문단위의 평가 필요해= 대학뿐 아니라 학문 단위별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교육부의 현재 ‘종합평가’ 방식이 학문간 전문성을 훼손하고 일부 학과가 폐지되는 원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인문·사회·예술분야는 교육부가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시작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학문계열이다. 각 대학은 취업률 지표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이들 관련 학과를 잇달아 폐지했다. 이 때문에 대학구조개혁이 대학교육을 황폐화시킨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길용수 한국대학경영연구소장은 “학문단위별로의 평가는 필요하다. 종합평가로 대학 자체의 교육여건을 검토하는 평가를 존속시키더라도 각 전문분야에 대한 평가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특성화를 살리는 취지에서도 학문단위별 평가는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김석준 안양대 총장은 “대학마다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골고루 나눠 가질 수 있도록 평가도 여러 기준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하나의 일률적 평가 기준이 아닌 20개, 30개 다양한 학문적 특성을 고려한 기준이 있어야 대학 특성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학문단위별 평가가 이뤄지면 고착화된 학벌 구조가 사라지고 대학들이 각자의 특징과 장기적 비전을 고려한 대학 운영이 가능해지게 된다. 전통적으로 인문학이 강한 대학, 산학협력이 잘 이뤄지는 대학 등 일률적인 줄 세우기에서 탈피할 수 있다.

■ 시대가 달라졌다…정책 패러다임 전환 요구= 그러나 교육부가 민간위탁 방식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같은 대학구조개혁 방식으로는 당면한 학령인구 감소 위기에 적극적인 대처가 힘들다는 분석 때문이다.

특히 민간위탁 방식의 평가에 대해서는 이미 거부감을 드러냈다. 백성기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은 30일 한밭대서 열린 공청회에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기관인증평가는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것으로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대교협의 대학평가가 대학간 ‘짬짜미’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대학가에서도 이견은 있다. 주로 교육부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 이견이다.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여러 평가기관을 만들어도 기관장은 결국 교육부 관계자가 차지하지 않겠느냐. ‘교피아’ 배만 불리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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