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별 걷는 ‘실습비’ 법적 근거 미약… 사용 내역도 불투명

[한국대학신문 송보배 기자] '실습비'는 정녕 '눈 먼 돈'인가. 학생들이 많은 돈을 실습비로 내면서 혜택 못 받는 상황이 최근 A대학에서 발생했다. 이 대학 미디어영상학부 학생들은 등록금 외 실습비 항목으로 1인당 51만원을 걷어 총 금액이 연간 4억원에 이르는데 정작 학생들은 물품이 고장 나도 수리를 못하는 실정이라 주장했다. 복수의 학생들에 따르면 학교에서 해당 학과에 지급하는 올해 ‘실험실습기자재비’ 예산은 약 1500만원으로 영상기자재 수리비도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학생들은 낸 돈에 비해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또 최근 ‘폭언파동’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B대 음대 교수들은 ‘실험실습비’ 중 음대 학장이 음대 공통경비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며 비판하고 있다. 해당 음대 학장은 모략이라 일축했다. 

한 학기 51만원씩 실습비 내는데 왜… 학생들 ‘분통’ = A대 미디어영상학부는 몇 년 째 실험실습기자재비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학부 학생들이 등록금과 통합고지 된 ‘실습비’를 한 학기에 51만원씩 내고 있음에도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기근’ 수준이라고 학생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 대학 미디어영상학부 한 학생은 “방송에서 쓰는 영상 장비 하나 수리하는데 200만~300만원이 든다. 학교 ‘실험실습기자재비’ 예산은 1500만원이라 장비에 문제가 있어도 수리를 못하고 있다. 고칠 수 없어서 그냥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과학대학 한 학생은 “한 사람당 51만원을 실습비로 낸다. 학생 수로 따지면 연간 4억에 해당하는 돈이다. 예산으로 내려주는 '실험실습기자재비'가 1500만원이라는데 3억원이 넘는 나머지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학교에 요구해 사용 내역을 받았는데 1500만원에 해당하는 집행 내역만 들어있어 나머지 비용은 어떻게 쓰이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 낸 만큼 다 받아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턱없이 모자라다”고 밝혔다.

학교측은 즉답을 피하고 있다. 이 대학 예산팀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따로 걷고 있는 ‘실습비’를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 돈을 걷고 있지 않다”며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우리는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대학 본부 예산으로 실험실습기자재비를 집행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등록금이 인하되다 보니 예산이 약간 줄었다”고만 답했다. 예산이 얼마 줄었고, 어떻게 사용됐는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학과별로 걷고 있는 ‘실습비’는 대학 본부 예산과 별도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법적으로 걷는 근거가 없고 대학 본부에서 감시할 수 없는 ‘눈 먼 돈’이란 것이다.

대학교육연구소 김삼호 연구원은 “실험실습비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학교에서 예산으로 집행되는 실험실습비와 일부에서 학과별로 등록금과 별개로 걷는 실험실습비”라며 “학과별로 걷는 실험실습비는 사실 걷어선 안 되는 돈이다. 법적 근거가 없다. 계열별로 그런 내역이 포함돼 등록금이 다른 것인데 실습비를 또 걷는다는 건 학생들 입장에서 이중부담”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학과 별로 걷는 실험실습비가 사용 내역이 불투명하며 사실상 감시할 방법도 없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은 “학교 회계에도 잡히지 않으며 외부에서 수입지출 내역을 확인할 방법도 없다. 결국 견제할 방법이 없어 투명성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상연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 과장은 “(학과별로 학생들이 내는 실험실습비는)등록금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며 “학과와 학생의 합의 하에 걷는 돈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제도적 근거보다는 ‘합의’에 근거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실험실습비 공통내역 공개해라” vs “본질 흐리지 말라” = 한편 최근 B대에서도 실험실습비가 논란이 됐다.

지난달 ‘폭언 논란’에 휩싸인 이 대학 음대의 교수들은 음대 실험실습비 공통경비에 대한 감사를 요청한 것 때문에 ‘미운털’이 박혔다고 주장했다. 

이들 두 교수는 음대 실험실습비 중 공통경비가 사실상 학장 임의로 사용되며 그 사용내역도 공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들은 “지난해 12월 9일 학장에게 학과에서 공통경비 예산을 올렸다. 4개 학과가 공통경비를 할당해 이 돈이 2500만~4000만원 가량이다”며 “우리 학과 예산이 어떻게 쓰였는지 내역을 알고 싶다는 건데 학장이 그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 지난 7월 감사를 요청했고, 지난달 22일에는 공개정보를 청구했다. 학교에서는 곧 공개하겠다 답했다”며 “지출결의서 등 내역만 뽑아서 보여주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이를 공개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 교수는 “학장은 공개했다고 주장하는데 그 내역이 달랑 A4 한 장이다”며 “2009년부터 2014년 8월까지 6년 것을 A4 한 쪽에 보내줬는데 이걸 보면 졸업발표회 팜플렛 제작에 60만원이 사용된 것 외에는 작곡과 학생들을 위해 쓰인 내역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들 교수 중 한 명이 학교로부터 받아 공개한 내역서에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내역이 한 장으로 압축돼 있었다. 공통경비 외 실험실습비 금액 전체가 포함돼 있어서 사실상 공통경비 사용 내역은 알 수 없었다.

이에 대해 해당 음대 학장은 “이미 사용 내역은 공개했고 이 이상은 학교가 할 일”이라 말했다. 또 두 교수의 폭로에 대해서는 대응할 가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해당 학장은 “학생들이 두 교수가 문제가 있다며 거부하는 게 본질인데 두 교수는 화살을 피하려는 의도로 공통경비 문제를 제기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공통경비는 각 학과가 자율적으로 결정해 내는 돈으로 강제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통경비는 각 학과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그래서 학과 별 공통경비 비율도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 실험실습비 논란 결국 ‘투명성 확보’가 과제 = 지난해 충북의 한 대학에선 교수들이 실험실습비를 개인계좌에 별도 관리하며 개인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을 학생이 폭로 했다. 올 2월에는 실험실습비 5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원 모 대학의 직원이 입건되기도 했다.

이렇게 대학의 실험실습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집행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가에선 실험실습비 문제 개선을 위해선 사용내역이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법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현준 경기대 자연과학대학 교학과장은 “실험실습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는 게 보다 공정성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학은 전 학과가 실험실습비 상세 사용 내역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사용 금액도 10원 단위까지 상세하게 기재한다. 이 교학과장은 “실험실습비는 학생들에게 그대로 환원하는 돈이기 때문에 투명하게 운영하는 취지에서 학생들도 그 내역을 볼 수 있도록 모두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 대학에서 학과별로 걷고 있는 별도 회계의 실험실습비에 대해선 날선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김삼호 연구원은 “자체가 근거 없는 돈인데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 돈인데 여기서 투명성을 말하는 것조차 어불성설”이라며 “학과 별도의 실험실습비를 걷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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