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윤리 교육 강화 구체적 예시 담은 매뉴얼 마련 필요해

[한국대학신문 차현아 기자] 대학가에서 연구윤리 강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연구자들 사이에선 연구 윤리를 엄수해야 한다는 인식도 부족하다. 교육부나 한국연구재단 등에서는 추상적인 수준의 가이드라인만 제공하고 있다. 대학가에서도 실질적으로 연구 윤리 강화를 위한 움직임은 최근 2~3년 전부터야 겨우 발걸음을 뗀 상황이다.

■ 대학 내 연구자 절반 이상 연구윤리 위반= 대학가의 연구 윤리 의식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서울교대 연구팀이 한국연구재단의 정책연구용역과제로 수행한 ‘2013년 국내 연구윤리 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 소속 연구자들이 최근 2년간 연구부정행위를 경험한 횟수가 2~3회라고 응답한 비율이 48.3%에 달했다. 4~5회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6.7%였다. 대학 내 연구자들이 1년에 한 번은 연구 부정행위나 연구부적절 행위를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들이 연구부정행위 및 연구 부적절행위로 경험했던 유형은 △ 자료의 중복 사용(43%) △ 표절(34%) △ 부당한 논문저자표시(32%) 등의 순이었다. 대학 내 연구자 절반 이상(54.7%)이 연구윤리가 연구 수행 과정 중 중요한 기준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연구 윤리가 문제로 지적되기 시작한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2005년 황우석 서울대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 논문조작 사건이 터진 후 부터다. 서울대를 필두로 각 대학이 연구윤리에 대한 자체적 기준과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2007년 2월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내놓았다. 하지만 내용이 추상적인 수준에 불과해 위반 여부를 실질적으로 가려낼 기준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 지침에 따르면 표절은 ‘타인의 아이디어, 연구내용, 결과 등을 적절한 인용 없이 사용하는 행위’라고만 명시돼있다.

■ 대학가 연구윤리강화 방안 마련 중=서울대는 2006년부터 본격적인 연구윤리 강화 지침과 강화 방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서울대의 경우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이 들을 수 있는 연구윤리 정규강좌가 마련돼 있다. 학부생도 교양필수로 개설된 연구윤리 강좌를 들어야 한다. 또한 연구윤리 심포지엄과 연구 윤리 실무 워크샵 등 다양한 교양 강좌를 제공하기도 한다.

서울대는 다른 학교보다 논문 표절 기준이 구체적인 것이 특징이다. 서울대의 연구윤리지침에 따르면 타인의 연속된 2개 이상의 문장을 인용표시 없이 그대로 사용한 경우는 표절로 추정한다.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도 최근에 연구 윤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화여대는 내년 초 총장직속의 총괄연구윤리센터를 연다. 연구진실성위원회와 IRD, 동물실험윤리위원회 등 연구 윤리와 관련된 모든 기능을 갖춘 종합센터인 셈이다. 한양대의 경우 내년부터 연구윤리 교육을 대학원생에게 의무화하기로 했다.

유사도 검색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대학 차원에서 실시하는 학문 윤리 강화 방안 중 하나다. 각 대학들은 최근 이 프로그램을 학부생을 포함한 대학 구성원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자신이 쓴 레포트 및 논문을 입력하면 이미 등재된 국내외 등재 학술지 논문과의 유사도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방법은 학교마다 천차만별이다. 한양대는 작년부터 유사도 검색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대학원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타 논문과 유사도가 낮다는 사실을 검증받아야 학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학부생들에게는 레포트나 학위논문 제출 시 이 프로그램 활용을 강제하지 않는다. 학부생들의 프로그램 활용도는 높지 않은 실정이다.

성균관대의 경우 학부생은 유사도 검색 프로그램 활용도 할 수 없다. 학생으로부터 레포트를 제출받은 교수만 그 유사도를 확인할 수 있다. 타 저작물이나 논문과 유사도가 높은 레포트를 제출한 학생에게 교수는 반려 조치를 취하는 식이다. 그렇다보니 학부생들은 자신의 레포트의 연구 윤리 위반 여부를 스스로 검증하기 쉽지 않다. 서울 시내 모 대학에선 프로그램 서비스가 아직 시범 운영 단계에 머물렀다.

■ 학문 단위 별 연구윤리 기준 구체화해야=각 학문단위 별로 다른 연구 윤리 지침이 부족하다는 것도 연구 윤리향상이 답보상태인 이유다. 연구 윤리 지침이 모든 학문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마련되다보니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른다. 이공계의 연구 표절은 실험 데이터 조작 등 분야의 특성이 적용된다. 그러나 인문사회 계열을 위한 기준이 별도로 마련되어있지 않다보니 이공계의 기준을 들이대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올해 8월에서야 인문사회계열을 위한 연구 윤리 지침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연구재단 정책연구과제로 수행된 ‘인문사회 분야 연구윤리 매뉴얼’에서는 인문사회분야에서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를 수정해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것은 허용 가능하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인문사회 분야는 학문 분야의 특성상 연구 성과가 이공계에 비해 빠르게 생산되고 확산되기 힘들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 성과가 대중화되기 위해 일부 중복게재는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연구비를 중복으로 받거나 연구 결과를 중복계산 받을 때는 ‘부당한 중복게재’로 봐야 한다.

성균관대에서 연구윤리 특강을 하는 김상현 성균관대 교수(러시아어문학)는 “인문사회계열과 자연계열은 연구 윤리에서도 분리해야 맞다.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모여 그 분야에 맞는 연구 윤리 기준을 세부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연구 윤리의 일상화위해 인식개선 필요해= 전문가들은 연구 윤리를 일상적으로 인식하고 엄수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문사회 계열 대학원생 대상으로 연구윤리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인터넷 문화의 보급으로 여기저기서 문서를 긁어와 과제 제출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인용을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연구윤리가 일상화되도록 각 학교 차원에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 학부생 때부터 연구 윤리 의식을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학부생에게도 연구윤리 수업을 강제하는 대학은 서울대 외에는 전무한 실정이다. 성균관대는 2017년부터 학부생들에게도 연구윤리 강좌를 필수로 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학부생 대상의 연구 윤리 교육 확충 계획이 없는 대학들도 많았다.

한국연구재단의 이민호 연구원은 “외국은 우리보다 학부생 때부터 엄격하게 연구 윤리를 강조한다. 학부생들도 논문 제출 시에 유사도 검색 시스템의 검증을 받았다는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및 한국연구재단 차원에서도 늦게나마 연구윤리 강화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초등학생 때부터 저작권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해 연구 윤리 의식 강화 내용을 담은 전자책을 초등학교에 보급할 예정이다. 또 내년 3월부터는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연구지원사업에 선정되려면 연구 윤리교육을 무조건 이수해야 한다는 규정도 마련할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의 개정을 위해 현재 정책 연구 중이다. 조만간 절차를 거쳐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개정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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