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30년 후의 한국, 오늘의 대학교육
[시론]30년 후의 한국, 오늘의 대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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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현 (본지 논설위원/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

‘공급자’니 ‘수요자’니 하는 장삿속 용어를 쓰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긴 해도, 대학에서도 공급자 중심 교육에서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 방향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충분히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공급자가 교수고 수요자가 학생이라고 볼 때, 대학에서 수행되고 있는 교수-학습활동이 진정 학생들이 시대정신의 요구에 부응하는 능력을 함양하는데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교수가 젊은 시절 스스로 지향했던 가치체계를 지키려는 데에 초점을 맞춰지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대체로 50대 인사들이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각 분야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이들은 대개 30년 전에 대학생활을 했다. 30년 전, 그러니까 1980년 대에 대학을 다니며 고등교육을 받았던 분들이 오늘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역이라는 말이 된다. 이 산법대로라면, 오늘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앞으로 30년쯤 후에 이 나라의 주역이 돼 활동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 교육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는 교육과정을 수립하고자 할 때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30년 후 이 나라의 문화사회적 상황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육의 수요자는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이라기보다는 30년 후의 우리 사회, 30년 후에 이 나라에서 활동할 사람들인 것이다.

30년 후에 활동할 사람들에게 오늘 우리는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한단 말인가. 어떤 시대상을 전제로 오늘 교육의 방향을 잡는단 말인가.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인류 문명 자체가 전환하는 마당에 미래를 예측하기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아주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21세기는 디지털 기술이 새로운 문명을 준비하는 시대이다. ‘디지털 기술’은 사유와 지각의 융합 및 호환을 비생명적 물리적 공간 속에서 실현시키고 있다. 나아가 인간의 의사소통 또는 정보교환 활동에서 자연세계의 시공적 제약을 거의 없애고 있다. 그래서 이 기술은 사유 대상을 감각 대상으로 변환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논리적 합리적 사고를 기피하고 감각적 지각을 선호하는 문화생활을 즐기게 한다. 또 자연적 물리적 세계의 시공적 제약을 극복해 사람들로 하여금 욕구충족 과정의 순차성과 단계성을 뛰어 넘어 동시적 총체적 욕구충족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이를 추구하게 만든다. 기술의 융복합과 이에 기초한 산업의 융복합 현상은 이러한 욕구 및 욕구충족의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취해진 현상이다. 흔히 ‘정보화’라 일컫는 시대적 변화는 근본적으로 바로 이 두 가지에서 연원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생각한다면, 30년 후에 활동할 사람을 가르쳐야 하는 대학은 그 교육내용과 방법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지적 능력이 근본적으로 문제해결의 능력이다. 주어지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그 양태와 성격이 달라진다면, 그 문제의 해결에 요구되는 지적 능력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복합적 욕구충족의 기대에서 오는 복합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그 지적 능력 또한 복합적이 것이어야 할 것이고, 이런 능력은 역시 융복합적 교육을 통해서 함양될 것이다. 적실성 있는 유용한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의 능력, 새로운 정보를 산출할 수 있는 창의적 사고의 능력, 세분화된 분야들의 위상을 전체 속에서 가늠할 수 있는 통찰력 등을 기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학교육은 더 이상 세분화된 각 학문분야의 인에서만 이뤄져서는 안되며, 보다 개방적으로 여러 학문분야를 가로지르는 방식으로 시행돼야 한다. 전문 학문분야의 특수성과는 무관한, 모든 학문 분야에 걸쳐 범용적으로 요구되는 기초능력의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전체를 조망하는 통찰력의 함양을 위해 다학문적 학제적 융복합교육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작금 대학사회의 뜨거운 관심사가 돼 있는 소위 ‘구조조정’이란 것도 이러한 교육내용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그 본래적 의미에 걸맞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단순히 ‘입학생 정원 조정’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새로운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교육과정과 이 교육과정을 뒷받침할 교육구조의 재편에 촛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말이다.

향후 수십 년간, 아니 수백 년간 전개될 새 시대의 대학교육 전반에 관해 누가 나서서 이러한 새 이정표를 세워야 할 것인가. 대학 총장들의 모임인 대학교육협의회에서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이런 거대담론에 관한 진지하고도 중량감 있는 선언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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