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호(덕성여대 교수·한국미디어문화학회 회장)

지난해 영화 ‘변호인’, ‘겨울왕국’, ‘명량’에 더하여 ‘인터스텔라’까지 천만 관객을 돌파히며 우리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교적 저렴하게 향유할 수 있는 문화생활이라거나 거대한 문화산업의 마케팅이 이뤄낸 결과라거나 우리가 감성적인 문화나 의식구조를 가진 때문이라는 등 다양한 분석이 있다. 이 중에 특히 감성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 ‘인터스텔라’가 가족애 등과 연관된다면 한국영화 ‘변호인’과 ‘명량’은 역사적 감성과 연관시킬 수 있다. 이를 인문학적 시각에선 감성의 신체지형도로 분석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감성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라 인식됐다. 인문학의 설명은 인간의 감성은 가슴뿐 아니라 이성을 대표하는 머리로도 느낄 수 있다고 알려준다. 독일 계몽주의의 대표적 극작가 레싱이 인간의 완전성은 '머리와 가슴의 감성이 합칠 때'라고 지적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현대의 뇌과학은 인간의 감성도 뇌에 존재한다고 하겠지만 인문학적 감성의 신체지형도는 문화와 상징을 포괄하고 있다. 머리가 감성을 가진다는 말은 이성적 판단에도 감성이 개입됨을 지적한다. 따라서 두뇌의 감성이나 과학적 감성이란 표현도 성립될 수 있다. 또한 역사에도 감성이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역사적 감성이라 할 수 있다. ‘명량’이 이순신 장군이 승리로 이끈 해전의 기록을 감성적 판단력으로 재구성한 것이라면, ‘인터스텔라’는 과학적 판단에도 감성이 중요하게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의 영화 ‘국제시장’의 흥남철수 장면에선 군인이 목숨처럼 지켜야 할 무기는 버리고 피란민들을 태우라고 명령한 장군의 결정이 극적으로 묘사됐는데 그의 판단에도 머리의 감성이 작용했다.

이처럼 감성은 우리 사회에 폭 넓게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런 인간 감성에 대한 연구와 정확한 분석에 인문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도 감성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어느 때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우리 사회의 관심은 인문학이 아니라 단지 인문교양에 대한 갈망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한국의 대학에서 인문학의 현실이라는 것은 참으로 우울하다. 대학의 인문학 전공은 학생과 학교로부터 외면 받고 있지만 사회의 인문강좌는 넘쳐난다. 방송과 언론에는 인문강좌를 가장한 수다꾼들이 나와 장터를 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인문정신을 강조하던 때를 생각해보면 그 진정성을 믿고 싶지만 현실의 괴리는 더욱 심해 보인다. 우리 사회와 대학에서 인문학의 지형도는 이렇게 기형적 성장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지난 해 역시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올해의 인문학은 어떤 지형도를 그릴 것인가. 미래 인문학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전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다만 여전히 부정적일 뿐. 후자의 경우 답이 없지는 않지만 간단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인문교양이 아닌 인문학이 제도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제도로서 한 학문의 정착과 발전에 정부의 지원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건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이지만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학문은 상황이 변하면 생존할 수도 없다.

우리 시대 인문학은 다시 핵심적 역할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대의 주요 경향들을 간파하는 시대의 알리미, 시대의 경향을 주도하는 방향타가 되며, 미래융합사회에도 인간과 인간 가치가 중심이 될 수 있게 인문지형도를 그려야 한다. 이것이 너무 거창하게 들린다면 인문학이 인간의 본성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연구하며, 시대를 미리 보는 것은 언제나 인문학이 해온 임무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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