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입법권 침해, 입법·행정 신의 저버린 행위"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교육부가 여야 합의로 제정된 법률을 또다시 시행령으로 뒤집었다. 올해만 영유아 보육법에 이어 두 번째다. 야당은 ‘입법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26일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운영에 관한 규정'을 입법예고했다. 이 규정은 3월 13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립대 회계법(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다. 시행령에서 교육부는 교수와 직원에게 교육·연구·학생지도 경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한 법률의 내용을 교수에게만 차등지급하도록 바꿨다.

직원에 대한 경비지급은 여야가 막판까지 줄다리기를 했던 조항이다. 국립대 회계법의 원안에 해당하는 '국립대학의 재정 회계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에서는 교수에게만 경비지급을 허용했다. 여야는 이 같은 조항이 직원들의 실질임금 삭감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법안에 직원에 대한 지급근거를 마련하는 데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막판까지 반대입장을 고수했다. 직원에 대한 임금보조성 경비지급은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원에 대한 지급근거를 마련하지 못하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할 상황에 오자 돌연 입장을 바꿔 직원에 대한 경비지급에 합의했다.

대학가에서는 교육부와 기획재정부의 합의설도 제기된다. 대학가 한 관계자는 “법안심사 막판 기획재정부와 교육부가 법률안의 내용을 시행령을 통해 완화할 수 있다는 데 공감대를 이루고 합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교육부 관계자들은 법 통과 이후 이어진 총장간담회 등에서 기획재정부의 강한 저항 등을 언급하고 있어 이 같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법학자들은 입법과정에서 국회가 정부에 지나치게 과도한 위임권한을 줬다는 지적이다. 황순흠 국민대 교수(법학부)는 “법률구문을 보면 지급의 대상과 지급방식 등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시행령에 위임했다. 중요한 내용이라고 봤으면 대상을 법률로 한정짓고 방법이나 기준을 시행령에 위임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입법취지를 훼손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부처의 경솔함을 잇달아 꼬집었다. 한 법학자는 “시행령은 법률을 보완하는 것이 목적이다. 법안의 분명한 입법취지를 왜곡하고 훼손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해당 법률 제28조 1항를 보면 ‘국립대학의 장은 소속 교직원에 대하여 대학회계의 재원으로 교육·연구 및 학생지도 등을 위한 비용을 지급할 수 있다’고 정했다. 해당 조항 2항은 ‘제1항에 따른 비용 지급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교육부령으로 정하고, 국립대학의 장은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세부적인 사항을 재정·회계규정으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가운데 1항의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한 부분이 강제조항이 아니고 ‘비용 지급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시행령으로 정하게 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현재 교육부는 해당 조항에 대한 법제처의 해석을 요청한 상태다. 그러나 제정된 법이 아니기 때문에 답변의 강제성은 없다. 한석수 대학정책실장은 “입법예고 상태이므로 의견을 들어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은 개의한 4월 임시회에서 국립대 회계법 시행령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당초 입법취지를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야당 관계자는 “국회는 과거 법률안으로 세부내용을 정하는 것이 과잉입법이라는 지적이 많아 해당기관과 정부부처에 자율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시행령 위임권한을 늘려왔다. 일부 법학자의 견해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다만 시행령을 통한 입법취지 왜곡은 법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의 신의가 달린 일이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에 앞서 교육부는 영유아 보육법 시행령에서도 국회의 입법취지를 무시한 채 예산부담 주체를 설정해 갈등을 야기한 바 있다. 국회는 영유아 보육법에서 관련 예산의 지급주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설정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시행령을 통해 재원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한정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부담주체일 경우 시나 도예산에서 영유아 보육예산이 편성돼야 하는데 시행령에서 이를 지방교부금으로 한정해 시·도의 예산 편성을 가로막은 것이다.

교육부 외에도 시행령을 통한 입법취지 무력화 시도가 잦아지고 있다. 오는 16일 1주기를 앞둔 세월호 참사에 대한 특별법도 시행령도 그 중 하나다. 여야는 ‘4ㆍ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으나 해양수산부가 시행령을 통해 인력규모를 25% 줄이고 규명 과제도 대폭 축소했다. 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조차 “해양수산부(해수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에 따르면 진상조사를 거의 할 수 없다”며 “공무원들이 중심이 돼 특조위 업무소관을 관장하는 것은 특별법의 취지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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