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열(한국학술진흥재단 사무총장)

지난 6월은 월드컵에서 공동 개최국인 우리나라의 대표팀이 눈부신 활약으로 월드컵에 참여하기 시작한지 48년만에 처음으로 4강에 진입해 온 국민이 열광하고 환희하였다. 월드컵 열기로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대한민국의 저력을 스스로 확인하고 이를 온 세계에 유감없이 전파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11명의 선수와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우리의 꿈을 실현시켰으며, 우리는 모두 다함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나가고 있다는 체험을 공유했다. 해외 언론들은 체력, 기술력, 정신력에서 놀랍도록 향상된 우리 대표팀에 대해 일제히 경탄했으며, 수십수백만 인파가 연출해내는 열정적이면서도 질서정연한 거리응원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우리 대표팀과 거리응원은 이제 세계인의 마음 속에 국가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 놓았다. 언론에서는 아직까지도 월드컵과 관련된 기사, 논설, 칼럼 등이 많이 실리고 있으므로 여기서 더 이상 축구에 관한 글을 계속하는 것은 불요불급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첫 출전해 조별리그에서 커다란 점수차로 대패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는 한국 대표팀이 48년이 지난 올해에는 2승 1무의 좋은 성적으로 16강, 8강, 4강에 진입할 정도로 막강하게 성장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뿐더러, 우리 사회가 특히 우리 학계가 지나온 발자취를 뒤돌아보고, 또한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늠하게 한다.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고 6.25전쟁을 겪었던 50여년전만 하더라도 풀 한포기 없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우리 학계가 교육에 치중하면서 많은 대학이 세워지고 학생정원도 엄청나게 증가되어 매년 많은 수의 학사, 석사, 박사가 배출되고 있다. 연구에 관해서는, 금년으로 창립 21주년을 맞이한 한국학술진흥재단이나 25주년을 맞이한 한국과학재단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본격적인 관심이 기울여진 것은 불과 4반세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우리 대학의 SCI 등재논문 발표 순위가 1998년 18위에서 1999-2000년 연속 16위, 2001년 14위로 매년 약진하고 있는 것도 대학인들로서는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4강 진출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면서도 외형상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변화다. 이는 물론 최근 몇 년 동안 그 이전과는 달리 정부가 우리나라 대학의 발전을 위해 학술연구조성사업, BK21사업, 기초학문육성사업 등 꾸준히 지원을 한데 힘입은 바 크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1백93개 4년제 대학의 총 연구비가 1조1천5백69억원(2000년 기준)으로 미국 스텐포드대학의 1년 연구비 4억1천7백만달러(1999년 기준. 5천4백21억원)의 2배에 불과하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사실이다. 사실상 우리 대학의 현실을 들여다 볼 때, 모든 면에서 과거보다는 많이 향상되었으나, 우리가 국제적으로 경쟁해야 할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아직도 열악한 부분이 많다. 교수 대 학생비(교수 정원), 대학행정지원 인력, 교육 및 실험실습장비, 도서 및 학술지 등 더욱 많은 투자를 요하고 있다. 한 예로 서울대학교의 2001년도 세출예산이 2천6백76억원이고, 이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를 포함한 경직성 경비임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국?사립대학교의 형편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이와 같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자 맡은 바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 왔던 많은 대학인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우리 대학들도 보다 체계적으로 기초 체력을 길러야만, 국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국제 무대에서도 어깨를 펴고 선진국들과 나란히 경쟁해 나갈 수 있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지원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대학의 교육 및 연구기반을 충실하게 다질 수 있는 대학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 방안 또는 대학인 스스로의 자구노력 방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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