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감축 논란으로 본 의대 사태와 대학 자율

의대 정원 감축 문제와 관련, 교육인적자원부는 요즘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다. 교육부가 제시한 ‘2004학년도부터 단계 감축안’에 대해 의료제도발전특별위원회(의발특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대한의사협회 등 일부 의료계는 의발특위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탈퇴는 물론 정부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높이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청와대나 관련부처인 보건복지부조차 사실상 의료계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교육부가 제시한 대안이 그리 먹히지 않는 분위기. ◇ 발단 : 문제의 발단은 지난달 8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의발특위가 2003년도 의대 입학정원 10% 일괄 감축과 정원외 편입학을 금지하는 내용의 결의사항을 채택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에대해 당장 2003학년도부터 의대정원을 일괄 감축하는 것은 현재 입시가 진행 중이고 대학들의 반대가 크다는 점을 들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결국 의료계와 정부 당국자간 수차례 면담과 회의가 이어졌고 지난 3일 교육부가 전국 41개 의대 학장을 소집한 자리에서 밝힌 대안은 2004학년도부터 2006학년도까지 의대정원을 현재의 10%인 3백25명까지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 의료계 입장 : 교육부 안에 대해 의료계 반응은 냉담하다. 의발특위는 간단히 말해 2년전 의료계 파업시 정부가 약속한 의대 정원 10% 일괄감축방안을 당장 올해 입시부터 이행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의사협회는 의발특위가 제시한 감축안이 실현되지 않을 경우 의발특위에서 탈퇴하겠다는 성명도 지난 4일 발표했다. 의협은 특히 “의료의 백년대계를 위해 대통령 직속기구에서 압도적 지지로 결정된 사항을 해당부서에서 거부하는 것은 국가행정의 난맥상을 보여준 것”이라며 강력 대응 입장을 천명했다. 보건복지부도 4일 내년도 보건의료 분야 입학정원 협의요청에 대해 의대는 10% 감축하고 나머지 약대, 한의대, 간호대, 치대는 정원을 동결하는 의견을 교육부에 전달했다고 밝혀 교육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날 교육부 관련 과장이 청와대의 긴급 호출로 불려가는 사태가 목격된 것도 이런저런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대목. ◇ 문제점 : 그러나 이 문제를 보는 대학가 일반의 시각은 그리 간단치 않다. 먼저 정부가 의료계와 한 약속은 책임으로 남지만 교육부 지적처럼 2003학년도 대입전형이 사실상 시작됐고 정원 감축이나 정원외 입학제한 등을 위해 필요한 법령개정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몰아붙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는 반응. 대학 자율이 경쟁력의 관건인 시대에 대부분의 대학이 반대의사를 보이는 정원 일괄 감축이 필요한지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로 교육부가 지난달 12~21일까지 의대정원 감축에 대한 대학들의 의견을 물은 결과 41개 대학의 68.3%인 28개교가 정원 감축을 반대했고, 무조건 찬성한 대학은 한 곳도 없었다. 정원 감축시기도 전체의 75.6%인 30개대학이 2004학년도 이후를 꼽았으며 정원감축방법으로는 정원에 비례해 줄여야한다는 응답이 39.0%, 의대평가를 통해 차등 감축해야한다는 응답이 31.7%이고 전체 대학에서 일률적으로 줄여야한다는 응답은 19.5%인 4개 대학에 불과했다. 의료계는 정원 감축이 의료발전의 백년대계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의료인력 감축이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인지도 명확지 않다.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의료 서비스와 병원 문턱이 여전히 높은 현실에서 국민들은 의료인력 감축이 의료인력 양성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사들의 병원 개업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솔직히 헷갈려한다. 사회 일각에서는 오히려 2년전 의약 분업 당시 국민을 볼모로 파업을 벌인 의료계의 처사를 악몽으로 떠올리며 정원 감축이 밥그릇 수호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의대정원을 감축할지 아니면 증원할지의 문제는 정부도, 의료계도 아닌 시장의 환경에 맡겨 대학이 자율 조정해야 한다”는 서울지역 한 대학 교수의 지적은 그런 의미에서 되새길만하다. 교육부가 의료계 입장을 수용해 기존 정책을 번복할지, 아니면 의료계가 정부 입장을 수용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런저런 단체들이 백년대계라는 이유로 교육에 개입하는 일이 허다해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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