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걸(공주대 교수회장/환경교육과 교수)

정부는 창조경제의 기치 아래 세계 경제난국의 극복과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창조는 새로운 생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창조의 바탕은 열린 사고이다. 열린 사고는 속박 받는 영혼에서 나올 수 없고 자유로운 영혼에서 나온다.

자유로운 영혼의 인재는 열린 교육에서 배출된다. 열린 교육의 기틀은 자유로운 학문에서 시작된다. 학문의 터전은 대학이다. 학문과 사회의 양심인 대학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학원의 자유(academic freedom)가 보장되어야 한다.

학원의 자유는 교수에게 연구의 자유가 주어지고, 억압, 그리고 고용 불안이나 표적 수사 등의 위협 없이 정치계나 정부 당국에 불편한 것을 포함하여 생각이나 사실을 자유롭게 나누고 가르칠 수 있을 때 보장된다. 학원의 자유가 살아 있는 나라의 대학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인재가 배출되어 창조경제를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래서 대학의 자율성이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자율은 이성 이외의 외적 권위나 욕망에 구속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율은 외부의 강압이나 제한 없이 스스로 다스리는 자치가 이루어질 때 보장된다. 그래서 학문과 나라의 발전에 대학의 자치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교육과 연구의 본질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교육부는 대학을 정형화하고 대학의 자율을 말살하는 시도를 끊임없이 추진해 왔다.

고등학교 졸업자 수 감소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며 교육부는 대학 구조개혁 평가를 구실로 입학정원 감축을 골자로 하는 대학 정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평가의 어설픈 잣대는 대학을 교육과 연구를 위한 고등교육기관으로 인정하지 않고, 기업에서 당장 필요한 단순 노동의 업무 연수원 정도로 생각하거나 정치적 표어를 치장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게다가 평가 결과 경쟁력 있는 대학의 입학정원을 강제로 줄여 정원에 턱없이 미달하여 정원 감축의 의미가 없는 부실 대학에 강제로 학생들이 밀려 입학하게 만듦으로써 부실 사학재단이 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구조개혁은 초중등교육 업무가 교육 자치의 원칙에 따라 교육청으로 이관되었을 때 교육부에서 이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과잉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교육에 불필요한 탁상행정을 일삼아 교육을 망치고 있다.

예를 들어 교육부는 사교육 부담을 줄이고 공교육을 살린다며 EBS 수능을 강제하고 EBS 담당 업무와 조직을 도입했다. 하지만 몇 강사가 만든 강의 교재에 충실한 EBS 사교육이 흥행하면서 제2의 사교육 전성기를 초래하였을 뿐, 오히려 교육전문가들이 교육계 의견을 수렴하여 만든 교육과정에 충실한 초중등학교의 교육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또한 교육부의 대학평가를 통한 대학 정형화도 교육과 연구의 본질을 무시하며 대학 구조개혁을 구실로 평가조직을 확대하고 구조개혁 상담업무까지 만들기 위한 추진으로 보인다. 이러한 탁상행정의 대학 정형화는 대학의 자율을 심각하게 훼손함으로써 학문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자리 잡지 못하게 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의 인재가 육성될 수 없고 창조경제의 기반을 잃게 될 것이다.

급기야는 ‘창조에 극약인 독재’에서 벗어난 자율의 상징인 총장 직선제까지 재정 지원의 불이익과 표적수사의 덫으로 자율의 포장을 씌워 강압적인 타율의 폐지를 추진해왔다. 게다가 총장 임용제청까지 근거 없이 난발하여 대학의 근간을 흔들며 학문과 사회의 양심인 대학의 민주를 말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묵과하지 못한 부산대 고현철 교수는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것에 둔감해져온 대학과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고 고현철 교수의 고귀한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지난 기간의 회피를 반성하고 대학과 사회의 민주를 지키기 위한 몸짓이 9월 18일 전국교수대회로 시작된 것에서 희망을 본다.

이제라도 교육부는 교육과 연구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대학의 자율을 보장함으로써 대한민국 창조경제의 선봉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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