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역사를 독점하겠다는 발상…국정교과서 제작 참여하지 않겠다”

[한국대학신문 정명곤·송보배·이재익 기자]중앙대·한국외국어대·성균관대·서울시립대 4개 대학 29명의 역사 관련학과 교수들이 ‘국정 한국사 교과서 제작‧참여 거부성명서’를 15일 공동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교수들은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발표는 정부가 역사를 독점하겠다는 발상이다”며 “이는 하나의 역사 인식만을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행위”라는 유엔의 경고를 인용했다. 그들은 “역사교과서는 국정보다는 검인정을 통해 다양한 역사인식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덧붙였다.

교수들은 “치열한 학문 연구에 기반한 역사교과서의 지속적인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특정 역사인식만을 강요하는 주입식 암기 교육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며 “국가 권력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역사를 농단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육영수 교수(중앙대 역사학과장)는 “국가가 자진 개입하여 권력의 입김으로 소독한 역사 교과서를 청소년의 학습에 강요하는 것은 역사 교육이 지향하는 과거 사건과 인물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가로막는 나쁜 역사 방법이다”며 “좌익과 우익, 진보와 보수 등 논쟁과 토론을 통해 바른 역사를 배워나가야 할 학생들에게 편향적인 역사지식을 암기하게 하는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상범 교수(한국외국어대 사학과)는 “역사 교과서 제작 국정화 문제가 학생이나 교수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득을 목적으로 제기된 것이다”며 “외국 선진국들의 역사 교과서의 편찬에 있어서 창의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시기에 다시 독재 정치 시기의 국정교과서로 회귀하는 일은 미래 세대에게 미안한 일이다”고 말했다.

집필거부 선언에 참여한 교수는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7인(김종섭, 배우성, 신희권, 염복규, 염인호, 이우태, 이익주)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10인(구태훈, 김택현, 박기수, 박재우, 오제연, 유정애, 임경석, 정현백, 조성산, 하원수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5인 전원(박경하, 손준식, 육영수, 장규식, 차용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 7인 전원(김상범, 노명환, 반병률, 여호규, 이근명, 이영학, 임영상) 이상 29명이다.

 

 


이하 성명서 원문

국정교과서 제작 참여 거부성명서

10월 12일 정부는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발표하였다. 정부가 역사를 독점하겠다는 발상이다. 1972년 유신을 공포하며 1974년에 국정교과서를 발행했던 ‘유신체제’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지극히 우려스럽다. 유엔에서는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독점하는 것은 하나의 역사인식만을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행위라고 경고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수호기관인 헌법재판소도 역사교육은 국정보다는 검인정을 통해서 다양한 역사인식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역사를 국정화하는 것은 전제정부나 독재체제에서나 행하는 일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지침에 따라 편찬된 역사교과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인식과 창의력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민주주의적 사고능력의 성장을 저해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이 ‘국정’과 ‘검인정’을 넘어서서 ‘자유발행’을 선택하고 역사교육을 학계의 전문가들에게 맡겨 수행하는 이유이다. 정부와 여당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다. 청년일자리 문제, 남북문제, 정치개혁 문제, 복지 문제 등 우리 앞에는 너무나 많은 시급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지속되는 이념논쟁 속에서 이러한 현안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서는 안 될 것이다.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치열한 학문연구에 기반한 역사교과서의 지속적인 발전을 저해할 뿐 아니라, 특정한 역사인식만을 강요하는 주입식 암기 교육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창의적 사고력을 강조하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국가권력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역사를 농단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무시하고 독점하려는 행위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우리 서울 시내 주요대학 사학과 교수들은 국정교과서의 집필참여를 거부할 뿐 아니라, 국정교과서 제작과 관련한 어떠한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는 바이다. 정부당국은 시대착오적인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조치를 시급히 철회하고 역사교육을 정상화시켜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2015년 10월 15일

▪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7인
김종섭, 배우성, 신희권, 염복규, 염인호, 이우태, 이익주
▪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10인
구태훈, 김택현, 박기수, 박재우, 오제연, 유정애, 임경석, 정현백, 조성산, 하원수
▪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5인 전원
박경하, 손준식, 육영수, 장규식, 차용구
▪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 7인 전원.
김상범, 노명환, 반병률, 여호규, 이근명, 이영학, 임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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