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본지 논설위원/서울과기대 교수·LINC 사업단장)

요즘 대학 앞을 지나다 보면 정부지원 사업을 수주한 내용을 담은 플래카드가 즐비하게 붙은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업을 많이 수주한 것이 마치 그 대학의 역량이 우수한 것처럼 홍보하고 광고하는 것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이러한 정부지원 사업에 3관왕을 했느니 5관왕을 했느니 하면서 한껏 자랑하기도 한다. 몇몇 대학에서는 더 많은 재정지원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서 아예 기업처럼 별도의 사업전담팀을 만들어 상시 가동하거나, 사업관련 외부 관계자를 대학으로 초빙하여 사업수주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현실을 대학만의 잘못된 관행이라고 여길 수는 없다. 대학에서야 자체 교비를 들여서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대학 발전사업을 때를 기다려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해결하고, 그 대가로 절약한 교비를 대학 적립금으로 활용하거나 또 다른 사업에 투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대학 입장에서는 달콤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 대학총장은 이러한 사업 수주 활동을 통해 대학 구성원으로부터 훌륭한 업적으로도 평가받을 수 있기도 하다. 
 
정부가 발주하는 대학 재정지원 사업을 특정 대학에서 독식하듯이 많이 수주하는데는 앞서 언급한 대로 대학 나름대로의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유연하게 설계된 사업평가 시스템도 하나의 요인이다.

정부가 대학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유사 사업의 평가지표를 분석해 보면, 평가지표의 세부유형이 대체적으로 유사하다. 하나의 재정지원 사업을 수주하게 되면, 또 다른 재정지원 사업을 수주하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사업추진 결과를 평가받을 때에도 하나의 재정지원 사업을 수주한 대학보다는 복수의 다양한 재정지원 사업을 수주한 대학일수록 평가를 더 잘 받을 수 있을 확률이 높다. 겉보기에는 사업성과가 매우 우수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성과에는 이런 저런 사업결과가 중복되어 활용되므로서, 실제의 사업성과보다도 훨씬 과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이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된 배경은 지금까지의 정부주도 사업이 대부분 정형화된 틀속에서 평가요소의 중복성 확인없이, 탑다운 방식으로 여러 부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설계되어 추진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이 할 수 있는 품목까지 싹쓸이 하여 골목상권을 붕괴시킨 것처럼, 대학에서도 이와 유사한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제거하지 않고는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의 성과로부터 다양하고도 성공적인 롤모델을 발굴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정량적 사업성과만을 양산하는 악순환만 계속될 것이다. 더욱이 대학은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고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만을 쫓아다니는 허약한 대학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일부 대학이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을 독식하는 형태로 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재정지원 사업의 사후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즉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 선정되어서 사업을 수행하다가, 사업기간이 종료되어 재정지원이 중단되면 해오던 사업을 모두 중단하는 형태의 먹튀방식의 사업추진 대학을 철저하게 가려내, 일정기간 사업에 참여할 수 없도록 페널티를 주어야 한다. 이와 더블어 정부의 연구개발지원 사업에서 운영하는 3책 5공 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즉 과거에 특정 대학의 일부 연구자가 정부의 연구개발 사업을 독식하는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정부에서는 1명의 연구자가 연구책임자로는 3개 과제 그리고 공동연구자로는 5개 과제까지만 참여를 제한시키는 3책 5공 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특정 연구자에게 연구과제가 쏠리는 현상을 막고 연구의 다양성과 효율성을 높인 사례를 참고해 볼만 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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