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행복(한양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

‘문(文)’은 ‘무늬(紋)’를 의미하고, ‘인문(人文)’은 ‘인간이 만들어낸 무늬’이다. ‘무늬’는 다양하고 조화로운 아름다움이니, 인류가 창조해낸 것들 중에서도 건강하고 선진적이고 핵심적인 것들이 어우러질 때 ‘인문’ 혹은 ‘인간의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이 형성된다. 그래서 인류가 축적해 온 ‘무늬’들의 정수(精髓)를 공부하는 인문학은 다양한 개성과 가치들이 서로를 용납하는 세상에서 저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을 구현하고자 한다. 인간존중의 원리와 배려의 미덕을 가르치며,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사회를 지향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스스로의 삶에 성실히 임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자살률은 매우 높은데 출산율은 지극히 낮고, 절망을 호소하는 젊은이가 많은 우리나라야말로 ‘인문역량강화’를 위한 국가적 뒷받침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문화’는 그것을 창조해 낸 집단의 관습이나 가치 및 전통 등등을 담고 있으며, 그 집단의 상징체계이고 생활양식이다. 그래서 문화는 그것을 공유하는 집단의 정체성을 강화함으로써 집단의 보존은 물론이요 지속적 발전까지를 돕는다. 개인들은 자신이 몸을 두고 있는 집단의 문화를 습득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자신의 집단에 대한 ‘귀속’을 확인함으로써 충성심을 갖게 된다. 즉 한국의 말과 관습과 역사 등등을 한국인이라는 집단이 함께 창조하고 공유하고 계승하는 것인데, 이것을 다룸으로써 한국의 문화를 존속시키고 국민적 결속을 도모하는 것은 한국인문학의 영역이다. 한국의 ‘인문역량’이 강화되면 학술적 과제들은 당연히 학계의 토론을 통해 해결될 것이고, 학계의 논쟁거리가 학계 바깥의 비학술적 문제로 비화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니, 그로 인해 야기된 불필요한 분열들도 봉합될 것이다. 그럴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 지금은 인문역량강화를 위한 뒷받침을 과감히 확대해야 할 때인 것이다.

경제의 해외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여건도 우리의 인문역량강화를 절실히 요구한다. 상품의 품질과 브랜드가 구매 결정의 핵심적 요소라면, 생산국의 국가브랜드가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가브랜드 형성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요소는 그 나라의 인문역량이다. 외국인이 우리 화장품을 사고 한국음식을 전보다 즐겨 먹는 것은 우리의 국가브랜드 개선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다. ‘한류’로 인한 국가이미지 제고가 공업상품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포함한 전체 한국문화의 파급까지를 촉진하고 있는 것인데, 한류는 한국의 인문역량에 그 뿌리를 둘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자국 인문역량의 강화와 밖으로의 파급에 진력한다. 중국은 ‘정치적·경제적 교류’를 하드웨어에, ‘인문 교류’를 소프트웨어에 비유하면서, 자국 문화의 세계적 확산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와 ‘인문유대강화’를 추진하고 있거니와,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 각국과의 ‘인문교류’를 매우 중시한다. 최근에 내세운 ‘일대일로(一帶一路)’ 속에도 ‘인문교류’가 중요항목으로 설정되어 있다.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G1 G2는 국가브랜드 제고에 ‘인문’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계 최고의 해외의존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이야말로 자국의 인문역량강화를 위한 뒷받침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밖에도 한국의 인문역량강화를 서둘러야 할 이유는 수없이 많다. 그래서 교육부의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 기획은 환영할 만한 일인데, 그러나 이에 배정되었다고 보도된 344억원의 예산은 애초 신청된 1200억원에 턱없이 못 미쳤다. 목전의 수요에 대한 대응에 급급하여 구조조정의 칼날을 함부로 대학인문학에 겨눠서는 안 된다. 원대한 미래를 전망하는 정치는 기초학문의 기반을 훼손하지 않을 것이며, ‘대학인문역량강화’를 위한 충분한 뒷받침을 통해 국력 신장의 장기적 안정적 기반 수립을 지금 시작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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