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원 (본지 논설위원, 인제대 교수)

매년 가을 단풍 끝자락을 지나 눈서리 오는 초겨울을 맞이할 때면 신선한 지적 자극을 주는 메아리를 접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노벨상 수상자가 언론에 발표되는, ‘혹시나 우리나라에서 하는’기대의 순간이다. 그 때마다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탈 수 있는 학문적 풍토와 여건이 언제쯤 갖추어 질 수 있는가를 자문해본다. 이울러 우리나라 대학특성화의 현실과 국제경쟁력의 씁쓸한 단면도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이공계 특성화가 명확한 포항공대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거기서 포항공대 출신 졸업생이 미래의 노벨상 주인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담아, 대학 내에 두상만 비워둔 석상을 보게 되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대학을 방문했을 때 그 곳에서도 이와 유사한 풍경을 접하게 되었다. 비엔나대학 현관에는 그 대학 출신 노벨상 수상자 9명과 함께 다음의 빈 자리는 누구일까 라는 물음표가 있다. 거기에는 반가운 양자메커니즘 방정식을 제시한 슈레딩거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사실 오스트리아는 지금까지 총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학문적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나라이다. 물론 오스트리아도, 비엔나 대학도, 지금은 그 위상이 많이 달라지긴 했다. 노벨상이 모든 학문적 발전성과와 업적의 척도는 아니라 해도, 우리나라 대학이 정말 노벨상에 버금가는 학문적 수준과 풍토가 마련되어 가고 있는가를 반추해보면, 노벨상이 울려주는 메아리가 단순히 허공의 외침만은 아님을 음미하게 된다.  
 
첫째, 우리나라 대부분 대학의 학과 특성화의 현실을 보면,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연구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대부분 대학 연구는 개별 교수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교수가 떠나면 그 연구주제는 사장되고 학문의 연속성이 단절되는 경향이 있다.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 세대를 거쳐 흘러가도 그 탐구과제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테마를 가지고 연구의 폭과 깊이를 더해 가며 지속가능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학특성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 대학의 자원을 공유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산발적 시설설비 체제다. 연구를 선도할 수 있는 고가의 중추적인 시설설비를 위한 재정은 턱없이 미흡하다. 우리나라 대부분 대학이 개인교수에 의존한 연구와 실험장비 및 실험설비를 갖추고 있으며, 그러한 체계는 단발성 연구에 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셋째, 심도 있는 연구에 공동으로 협력해 천착할 수 있는 연구테마와 교수구성 체계가 미흡하다. 학과의 역사와 전통에 기반을 둔 학문적 특성화가 명확해야 신임교수를 초빙해도 그 역할이 무엇인가가 분명해진다. 몇 십 년의 연구 전문성을 지닌 교수나 새로 초빙된 신임교수가 모두 모래알처럼 수평적으로 단순히 병존하는 학과체계는 괄목할 만한 국제적 연구 성과로서의 결실을 맺는데 한계가 있다. 진정한 학문적 체계와 전통, 교수들 간의 존중과 협력을 기반으로 학과 교수의 학문적 연구체계가 정립돼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세계적인 선도 학자의 초빙이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대학특성화는 크게 대학전체특성화와 학문분야특성화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부분 종합대학을 지향하는 환경 하에서는 대학전체특성화를 추구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다 보니, 백화점식 학과만 즐비하고, 이 대학 저 대학의 잘 나가는 학과를 모방하여 변경하거나 개설하는 것이 오늘의 대학특성화를 위한 구조조정 모습이 아닌가 한다.
 
최근 대학교육의 국제화 속에서 특히, 다양한 외국 학생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있다. 국제적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대학특성화의 진정한 모습을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갖추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그저 시간이 경과하면 깰 꿈이나 허공의 메아리가 아니길 기대해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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