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석(본지 논설위원/ 가천대 교수)

시장경제를 대리인(agent)과 위임자 또는 본인(principal)이 서로 상반되는 이해관계에 기초하여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는 젠센(M. Jensen)과 메클링(W. Meckling)의 ‘대리인이론(Agency Theory)’에 따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본인 즉 주인이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리인이다.

19세기 근대국가에서는 주로 의회가 국민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했지만 행정부의 역할과 위상이 높아진 20세기 현대국가에서는 정부가 국민의 대리인 역할을, 의회는 정부에 대한 주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대리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고 이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기업에서는 기업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대리인비용을 최소화하는 메커니즘, 즉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며,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플라톤도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외면한 대가는 자신보다 열등한 자들에 의해 지배를 당하는 일”이라고 했다.

민주사회에서는 투표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핵심적인 수단이지만 그것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장자크 루소는 그의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고 했다. 선거 후에 국민은 관객으로 전락해버린다는 관객민주주의(Observer Democracy), 선거가 끝나면 대의기관의 통치의 객체로 전락해버린다는 시간제 민주주의(Part-time Democracy)라는 비아냥거림이 이해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지 못했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면 국민들이 선출한 대리인들이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정상이다.

미국의 경우, 1920년에 여성참정권이 인정된 후 여성을 위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1964년과 그 이듬해 민권법(Civil Rights Act)과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이 통과되면서 흑인들을 위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 그러한 예이다. 그런데 어떤 논문에 따르면 투표율은 관심 있는 후보의 유무, 후보들 간 정책 차이의 크기, 자신의 한 표가 선거결과에 미칠 영향, 투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시민적 의무감의 크기 등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후보가 없을 때, 후보들 간 정책에 차이가 없을 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압도적 우위 또는 압도적 열세에 있을 때, 투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크거나 시민적 의무감이 적을 때 기권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기권도 정치참여의 한 형태일 수 있겠으나 민주주의 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 투표에 소용되는 비용, 시민적 의무감의 상실, 투표의 효용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은 인위적으로라도 개선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청년들의 투표율이 낮은 데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삼포시대’, ‘88만원 세대’ 등 취업난, 임금격차, 치솟는 집값 등 현재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사회문제가 반영된 탓이겠지만, 이들을 투표현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시스템 개혁이 선행돼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서울시립대의 반값등록금이 실현되고부터 동아리나 학회에 가입하는 학생들이 늘었다는 사실을 봐도 그렇다. 민주주의는 투표를 전제로 설계된 시스템이다. 따라서 낮은 투표율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 2011년의 OECD 발표 자료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와 룩셈부르크, 그리고 벨기에의 투표율은 각각 95%, 92%, 91%였으며, 투표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거나 일정 횟수 이상 투표에 불참할 경우, 일정 기간 투표권을 박탈하는 의무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우리보다 효율적인 사전투표제를 이용하여 투표율을 높이는 국가들도 있으며, 스웨덴처럼 사전투표를 했으나 선거 기간 중 마음이 바뀌면 재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나라도 있다.

우리의 미래인 청년층의 참여가 적은 선거는 우리의 미래도 불확실하다는 증거이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체제를 정당화 시키고 유지시켜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4월 13일에 실시 예정인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대학생들이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청년실업문제, 등록금, 그리고 장학금 등의 현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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