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현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대전대 석좌교수)

오늘 한국의 대학교육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근본문제는 교육수요와 교육공급 사이의 ‘괴리’(乖離; Mismatch)에 있다고들 한다. 쉽게 말하자면, 이는 정작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은 대학에서 가르치지 않고 엉뚱한 것을 가르치느라 헛기운을 빼고 있다는 말이 된다. 정말 그런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그렇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기엔 ‘양도논법의 오류’가 깃들어 있다. 실은 우리 사회가 대학에 요구하는 것이 두 가지인데, 그 두 가지가 서로 양자택일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서만 보면, 대학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 두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학문탐구이고 다른 하나는 직업능력의 함양이다. 대학을 향해 교육수요와 교육공급 사이의 ‘괴리’를 말할 때, 대학 밖의 사람들, 특히 기업인들이 암암리에 의도하는 것은 대학이 학문탐구를 핑계로 현실적으로 필요한 직업교육은 등한히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대학인이 대학 밖의 사회를 향해, 특히 기업을 향해 불평하는 것은 대학이 학문을 탐구하고 전승하는 지성의 전당이지 어디 직업학교냐는 것이다. 기업 쪽에서 보면 대학이 유능한 직업인을 양성하지 않고 있어 불만이고, 대학인 쪽에서 보면 기업계의 요구에 눌려 학문탐구라는 대학의 본래적인 기능이 자꾸 위축되어 가는 게 큰 걱정인 것이다.

과연 이 두 가지 요구는 이렇게 양도논법의 오류를 피할 수 없을 만큼 ‘양자택일적’인가? 이 양자 사이의 균형을 이루어 양자를 종합하는 교육 기획은 정말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가? 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굳게 믿는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만 척결된다면 말이다. 그 병폐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산적 기초학문과 소비적 응용학문의 차이를 간과해 이들 영역에서의 교육을 동일 평면에 병렬시키는 몰학문적 평면적 사고의 우매가 Ⓑ연구와 교육과 행정과 생활 등 대학인의 삶 거의 전부를 전공학과의 틀 안에서 전개해온 ‘전공학과 중심주의’의 통념 및 관행에 찰떡같이 달라붙어 있는 현실이다. 이 두 가지가 굳게 결속되어 있으니, 이를테면 철학과 경영학이 학문적으로 똑같이 취급돼 각기 철학과와 경영학과로 병존하게 된 것이 당연시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두 학과가 대학에 진학하는 어린(?) 학생들의 선택 앞에서 대등하게 경쟁하게 된다는 데 있다. 인구 350만의 한국 제 2의 도시 부산, 전문대학 9개교와 일반대학 15개교가 있는 부산광역시에 철학과가 남아있는 대학은 부산대 딱 한 곳이라는 사실이 과연 적절하고 자연스러운가? 그렇다. Ⓐ와 Ⓑ가 결속돼 있는 현재의 교육 구조 아래에선 ‘불가피’할 정도로 매우 합리적인 결과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토대라고도 하고 정점이라고도 한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면, 대학생이 철학교육을 받는 건 너무나 지당한 일이다. 철학자가 되라는 게 아니라, 철학적 문제가 어떤 것이고 철학적으로 접근한 다는 게 뭔지, 그게 어떤 점에서 개인적 공동체적 삶에, 학문적 탐구에 의미가 있는지, 그 정도는 배워야 되지 않을까. 철학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역사학, 문학,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수학 등 기초학문분야의 교육을 어느 수준까지는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과연 이런 교육을 받는 게 직업능력 함양에 장애가 되는가? 산업구조가 바뀌고 직업세계가 바뀌고, 직업능력의 내용도 바뀌고, 알파고가 등장하는 이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기초학문 교육은 직업능력 함양에 오히려 필수적이다.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정직한 대학인이라면 다 안다. Ⓐ와 Ⓑ의 통념과 관행을 깨기만 하면, 모두에서 말한 두 가지 요구 사이의 균형을 이루어 양자를 종합하는 교육 기획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제 급박해졌다. 용기를 갖고 통념과 관행의 벽을 넘어야 할 때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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