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강령 청탁 개념 모호…일선고교에도 강령 알려야

▲ 입학사정관 윤리강령 네 번째 항에는 청탁에 대한 내용이 명시돼있으나 출장비가 청탁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출처=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 입학사정관 A씨는 금요일 오후 마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입시 정보가 부족한 지방 학생들을 위해 모의 면접을 하러 갔다. 집합시간이 토요일 오전 9시라 전날 내려가 숙박을 해야 했다. 출장비는 고교에서 지급하겠다고 해 대학에는 출장비 결재를 올리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입시 정보를 제공했다는 뿌듯함을 안고 귀가했으나 며칠 뒤 A씨는 크게 낙담했다. 입학사정관이 고교에서 돈을 받았다는 언론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주말에 시간을 내 지방 출장을 다녀온 A씨는 한 순간에 뇌물을 받은 사람이 돼버렸다.

[한국대학신문 구무서 기자] 지난달 6일 마산에서 모의면접을 진행하던 일부 입학사정관들이 금품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입학사정관 윤리강령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윤리강령에 의하면 입학사정관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금품을 받으면 안 된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윤리강령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사건이 문제가 된 이유는 입학사정관들이 고교로부터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통상 입학설명회의 경우 대학에서 비용을 지불하는데 입학사정관들이 고교로부터 돈을 받았기 때문에 뇌물을 받고 입시 기밀을 누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입학사정관들은 고교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이 돈은 뇌물이 아닌 출장비 성격인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서울서 마산까지 왕복 교통비만 해도 15만원 정도다. 여기에 숙박비와 식비, 일당 모두 합해서 고교로부터 25만원을 받은 것"이라며 "고교와 대학으로부터 이중 지급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부당이득을 취한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B대 입학처장은 "이중지급이나 비밀 누설을 의심하는 것 같은데 우리학교는 이중지급을 하지 않았고 비밀 누설을 해야 할 만큼의 액수를 받은 것도 아니다"며 "우리 학교의 경우 출장비로 28만원이 나가는데 이번에 고교로부터 받은 금액과 거의 비슷하다. 일반적인 출장비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부터도 입시설명회 주최에 따라 고교로부터 출장비를 받는 경우는 있었다.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 박정근 회장은 "대학에서 고교에 와 자기 학교 설명회를 하는 경우는 대학에서 비용을 부담하지만 강연의 경우라면 고교에서 강연료 산정하는 방식에 따라 지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C대 입학사정관팀장도 "고교가 주관사가 돼 대학을 초청하는 경우 거마비를 고교서 지급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고교에서만 받고 대학으로부터 이중지급은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행적으로 고교로부터 출장비를 받는 사례가 일부 있었으나 윤리강령에 따라 출장비가 과연 청탁을 목적으로 한 금품인지 의문이 일고 있다.

지난 2012년 8월 23일 제정된 입학사정관 윤리강령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청탁을 배제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 윤리강령은 제정 후 각 대학에 전달됐으며 대학별로 청탁, 금품 등을 금지하는 문구를 넣고 있다.

그러나 해당 윤리강령 문구만으로는 출장비가 금품에 해당하는지 설명하기에 부족한 실정이다. 출장비가 청탁과 금품에 포함된다면 그간 고교로부터 출장비를 받았던 모든 입학사정관들은 모두 윤리강령을 위배한 셈이 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방재현 입학지원팀장은 "금품은 대가성이 포함돼야 하는데 출장비가 금품에 포함되는 개념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일선 고교에는 해당 윤리강령을 모르고 있거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와 대교협 모두 입학사정관 윤리강령에 대해 교육청·고교에 공문을 보내거나 교육을 이행하지도 않았다.

이번 사건을 조사한 경남도교육청 관계자는 "대학이나 교육부 차원에서 윤리강령을 고교나 교육청에 전달한 적이 없다"며 "그러다보니 고교에서는 서울에서 와 아침일찍부터 늦게까지 고생하신 분들에게 최소한의 교통비는 지급해야 되지 않나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고교 관계자도 "근무일이 아닌 휴일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당연히 출장비를 줘야 된다고 생각했다"며 "윤리강령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고 이번 일이 윤리강령에 위배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고 항변했다.

그렇다보니 윤리강령을 정비해야 한다는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대교협은 각 대학으로부터 경위서를 제출받아 상황을 판단중이며 조만간 총괄협의회를 열어 대응책을 결정할 예정이다. 정명채 대학입학지원실장은 "대학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면서도 "제반 사항들이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김겸훈 회장은 "이번 사건은 모두에게 알람 역할을 했다. 입학사정관은 고교에서 돈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고교는 우릴 도와주는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며 "학교별로 상이한 윤리강령을 명확히 정비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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