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국정감사가 끝내 좌초할 위기다. 지난달 26일 첫날부터 여당의 국감 보이콧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시작된 20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첫 국감은 여당이 국감장에 복귀한 4일 이후에도 증인채택 문제로 정회하는 등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와 관련된 모든 증인 채택을 반대하면서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2일 이정현 당대표가 단식을 접으며 국감에 복구했다. 당초 정세균 국회의장을 표적으로 비난공세를 지속했으나 날로 하락하는 지지율에 발목을 잡혔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의혹에 대해 야당이 송곳검증을 다짐하며 여당 없는 국감을 강행하자 위기감이 고조됐다. 새누리당의 국감 보이콧과 이정현 대표의 단식이 실상은 정세균 국회의장을 노린 게 아니라 이 같은 의혹을 덮기 위한 ‘쇼’라는 정가의 분석도 설득력을 얻었다. 김영우 국방위원장(새누리당)을 비롯해 나경원 의원 등 비주류 의원들의 국감복귀 의사도 날로 커지며 당 지도부에 부담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 교문위가 7일 증인채택을 놓고 파행을 거듭하자 유성엽 위원장(가운데)이 정회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이재 기자>

그러나 국감은 새누리당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최대 쟁점은 역시 ‘최순실 게이트’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최순실 씨가 국정 전반에 걸쳐 전횡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국감의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순실 씨가 재벌에 압력을 행사해 800억원을 모금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K스포츠재단이 의혹에 중심에 서면서 재단 관계자들을 소환해야 한다는 야당의 요구도 거세졌다. 그러나 여당은 최순실 게이트 의혹 검증보다 이미 정해진 국감 일정을 일정표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당장 교문위는 여야의 최대 격전지로 떠올랐다. 교문위는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인가를 내준 문화체육관광부가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씨의 딸 정모씨가 2015학년도 이화여대 입학 당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면서 정회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4일도 새누리당 의원들은 최순실 게이트 관련 증인채택을 야당이 표결로 강행하려 하자 일방적으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6일과 7일 열린 시도교육청 대상 국감도 증인채택 문제로 파행을 거듭했다. 6일 야당은 국회법에 따라 이날까지 출석요구서를 전달해야 일반증인이 13일 문체부 종합감사에 출석할 수 있다며 증인채택을 강행했으나 새누리당은 안건조정요구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표결을 저지했다. 안건조정요구서가 제출되면 90일간 해당 안건을 논의할 수 있어 사실상 이번 국감 소환은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7일도 야당은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에 대한 일반증인 채택합의를 요구했으나 새누리당은 교육감 국감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며 사실상 거절했다.

앞서 여야는 추석 전인 지난달 12일경까지 이인수 수원대 총장과 상지대 김문기 전 이사장,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 등에 대한 일반증인 출석요구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순실 씨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자 돌연 여당은 그간의 합의를 파기하고 일체 증인 채택을 거부하는 것으로 선회했다.

■ 이기동 한중연 원장 ‘돌발이슈 … 고등교육, 다양하지만 단편적 문제에 머물러= 그렇다면 교문위는 지난 국감을 어떻게 진행했을까.

우선 고등교육 이슈는 최순실 게이트에 밀려 주요 이슈로 떠오르지 못했다. 당초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치문제로 학내 소요사태를 겪고 있는 이화여대가 주요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최경희 총장의 일반증인 채택이 무산되고 이화여대에 대한 문제기도 정씨에 대한 특혜시비로 번졌다.

일부 질의는 고등교육의 맹점을 예리하게 꼬집기도 했다.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은 취업한 학생에게 출석과 학점 등을 면제해주는 취업계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에 저촉된다며 이에 대한 해결책 마련에 늑장을 부린 교육부를 질타했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내 사립대들이 여의도 면적의 149배에 달하는 431.1㎢을 보유하고 있다며 수익도 나지 않는 땅투기에 몰두하는 사립대 운영 전반을 지적했다.

이동섭 국민의당 의원은 빈번한 대학 전공 통폐합으로 인해 대학문제가 심화됐다며 대학이 취업학원으로 변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동섭 의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대학 전공학과 통폐합은 1045건에 달한다.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환경 변화 등을 빌미로 교육부가 강도 높은 대학구조조정을 실시하며 발생한 결과다.

이밖에도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평가 △사립대 재정 투명성 △고교대학연계심화과정 △ 입시제도 변화 △반값등록금 정책 △대학 중도탈락생 △대학 기부금 양극화 △정부 진로가이드 부적합 등 다양한 문제가 지적됐다.

그러나 고등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세울만한 문제제기나 대안제시는 미흡했다는 평가다. 교육부의 일방적인 통제 아래 진행된 대학구조조정의 문제 등을 지적하며 국가교육제도 전반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한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의 질의 정도를 제외하면 현상을 비판하는 질의에 머물렀다는 것.

안철수 전 대표는 30일 국감에서 “현재 교육계의 문제는 작은 것을 하나하나 바꿔선 해결할 수 없는 단계”라며 “총체적이고 혁신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교육통제부로 전락한 교육부를 폐지하고 국가교육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 최순실 게이트가 국감 전반의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가운데 지난달 30일 교육부 소관부처 국감에선 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의 기행이 돌발이슈로 등장했다. 첫 질의에서부터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제주 4.3 항쟁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차로 논란을 빚은 이기동 원장은 시종일관 교문위원을 ‘선생’이라고 호칭하며 부적절한 언사를 거듭했다. 급기야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기동 원장의 선임과정을 질의하면서 “교육부나 청와대로부터 지시 받은 바가 있느냐”고 묻자 “목숨을 걸고 말하는데 절대 그런 적 없다”고 소리치고 화장실이 급하다며 위원장 허가 없이 국감장을 이탈하는 등 기행을 일삼았다. 또 화장실에서 “젊은 것들에게 수모를 당하다니. 못해먹겠다”고 소리치는 등 기관장으로서 부적절한 행위가 반복됐다. 사적으로 국정교과서 원고본을 봤다고 밝히는 등 파문을 이어갔다.

■ 국립대·교육부 종합감사, 백남기 농민 사망원인 이슈 될 듯=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교문위 국감에선 어떤 이슈가 주로 다뤄질까?

현재 교문위 국감 가운데 고등교육을 점검할 수 있는 일정은 11일 국립대와 국립대 병원 국감과 14일 종합감사 등 두 차례다. 이 가운데 국립대 국감은 최근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잃은 뒤 결국 사망한 백남기 농민에 대한 사인 규명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서울대병원 측은 백씨의 사인을 ‘병사’로 적시해 사회적인 논란에 휩싸였다. 백씨 유가족을 비롯해 대한의사협회와 각종 의사단체 등은 백씨의 사망원인은 물대포로 인한 외인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교문위는 이에 대한 사실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백씨의 주치의로 사인을 ‘병사’로 적시한 백선하 서울대 교수 등을 일반증인으로 채택하는 데 합의했다. 이밖에는 서울대 비정규직법 위반 등도 도마위에 오를 전망이다.

14일 교육부 국감에서는 최순실 게이트가 재차 이슈로 부상할 것이란 관측이 높다. 교문위 일반증인 채택이 모조리 무산되면서 교육부 장관을 대상으로 한 문제제기가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교문위의 국감 일정 자체가 연장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한 국회 관계자는 “국감 일정이 새누리당의 보이콧 여파로 인해 19일까지 연장됐다. 당초 교문위는 야당 단독으로 국감을 진행했고, 여당도 정권에 부담되는 최순실 게이트 관련 이슈를 재차 들출 필요가 없어 연장 가능성이 없었지만 이제는 야당이 증인 채택 등을 위해 다시 연장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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