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립대 바로보기]국내 대학 82%가 사립대 … 재정난에 곳곳 붕괴 조짐

사립대를 제대로 볼 때가 됐다. 그간 온갖 부패와 불통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사립대. 동시에 사립대는 국내 고등교육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비리사학의 얼룩과 느리고 변하지 않는 둔감한 기관이라는 허상을 벗기고 난 사립대의 실체는 어떨까. 본지는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국가 발전을 이끌어온 사립대의 부정적인 허상을 걷고 제대로 된 발전전략을 마련하고자 7회에 걸쳐 ‘사립대 바로보기’를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와 공동으로 기획연재한다. <편집자주>

연재순서
➀ 재정난에 빠진 사립대와 교육부의 ‘줄세우기’
➁ 사립대 재정 체질 개선과 재정교부금법 제정
➂ 사립대 재정위기, 대학규모에 따라 다른 양상
➃ 하위권 대학 학생도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
➄ 사립대 학교법인, 투명성 높이는 노력 필요해
➅ 비리·부실 사립대에 대한 총장들의 시선은?
➆ ‘사립대 바로보기’ 국회 포럼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국내 전체 4년제 일반대 가운데 사립대는 모두 165곳(82%)이다. 대학 10곳 중 8곳은 사립대인 셈이다. 여기에 전문대학과 사이버대 등 주로 사립으로 운영되는 대학체계를 모두 합하면 사실상 국내 고등교육은 민간영역에 완전히 위탁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학정원만 놓고 봐도 사립대의 비중은 뚜렷이 드러난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간한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전체 대학의 입학정원에서 사립대 입학정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4.4%로 집계됐다.

그러나 사립대를 둘러싼 현실은 녹록치 않다. 고등교육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부패하고 제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난에 휩싸이기 일쑤다. 사립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적대적이다. 비리로 얼룩진 일부 사립대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모든 사립대가 부패의 온상이고 사립대 경영진이 부도덕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이다. 수년째 정부의 등록금 동결·인하 기조가 지속되면서 이미 사립대의 재정은 임계점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를 목전에 두고 정부가 꺼내든 대학구조조정 정책이 사실상 지방 사립대를 대상으로 진행되면서 지난 8년간 지방 사립대에서만 입학정원 5만 403명이 줄었다. 이는 고스란히 사립대의 등록금 수입 감소로 이어져 사립대의 재정에 큰 타격을 줬다.

교육부가 각종 대학재정지원사업을 통해 세금을 퍼주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과 달리 정부의 고등교육 지출비중은 매년 낮아지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996년 약 15조에 그쳤던 교육부 예산은 2015년 약 51조로 3.3배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정부예산은 5배가 늘어 정부의 교육예산 비율은 24%에서 15.9%로 오히려 낮아졌다.

이처럼 정부의 교육지원이 도리어 후퇴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사립대들을 중심으로 등록금을 폭발적으로 올려온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국가장학금 정책 등을 도입하면서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억제한 2009년 이전인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사립대는 매년 등록금을 평균 5.1~6.9% 수준으로 인상해왔다. 이는 당시 물가인상률의 2~4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 때문에 한 때 고액등록금으로 인해 학생이 자살하는 등 사회적인 비극이 초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등록금 동결·인하 정책이 수년간 지속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사회적 여론에 의해 형성된 사립대 옥죄기가 지속되면서 사립대가 고사할 위기에 빠진 것이다. 수년간 첨예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던 대학 등록금은 사실상 사립대 수입의 전부다. 사립대 재정포털 사립대학회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전체 사립대의 자금수입 총계는 19조 190억원으로, 이 가운데 등록금 수입은 10조 9443억원으로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이밖에 전입및기부수입 약 4조, 국고보조금 수입 약 2조, 자산및부채수입 약 1조 6934억원 등이 사립대 재정수입의 큰 줄기다.

지출은 인건비 지출과 관리비 지출이 가장 많다. 지난 2014년 결산 기준 교수와 직원 급여로 매년 각각 약 5조와 1조 6466억원이 쓰인다. 각종 시설관리비용으로 나가는 돈은 해마다 약 2조에 달한다. 연구학생경비등으로 5조가 지출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19조에 달하는 수입 가운데 실제 대학운영에 쓸 수 있는 비용은 1/4 수준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현재 존재하는 직업의 80%가 소멸하고 전혀 새로운 직업이 등장한다는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이를 연구하고 사회를 선도해야 할 대학이 교육과 연구의 여력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최경수 발전기획단장은 “사립대의 앞날이 어둡다. 지금 재정여건으로는 얼마 못가 모조리 파산하고 말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 이상 사립대를 옥죄기만 해서는 국가교육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밝혔다.

사립대의 재정난은 다양한 방식으로 고등교육의 지반을 흔들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특히 대학의 규모에 따라 선제적으로 무너져나갈 수 있다. 지방에 있는 소규모 사립대부터 문을 닫으면서 지역의 학생들에 대한 고등교육과 지방의 경제에 미칠 악영향도 예상된다. 실제 교육부의 5등급 대학구조개혁 평가 결과를 보면 구조조정 대상인 하위권(D·E등급)에 지방 소규모 사립대가 대다수 포진해 있어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지방 사립대의 붕괴로 인한 여파는 이미 폐교된 대학의 전례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교육부의 폐쇄명령 등으로 인해 문을 닫은 일부 대학의 학생들은 인근 대학으로 특별편입학이 허용됐지만 적응을 못해 중도탈락하거나 아예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모습도 보고됐다. 또 대학에 근무했던 교수와 직원 등 구성원들이 제대로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등 지역사회의 현안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현실이다. 최경수 단장은 “지방대가 사라진 지역은 경제적으로 활력을 잃고 쇠락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사립대의 재정난의 여파는 대학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교육문제가 심각하다.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대학들이 교수나 직원을 임시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수년간 시간강사와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문제가 대두됐지만 현재는 구조적으로 대학에 비정규직 고용을 강요하는 형태나 다름없다.

대학의 살림을 책임지는 한 지방 사립대 기획처장은 “재정이 열약해 교수와 직원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본부라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싶겠나. 업무의 안정성 등을 고려하면 당연히 정규직 채용이 유리하다. 그러나 정규직 1명 임금으로 당장 필요한 비정규직을 2~3명 채용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선 다른 선택은 불가능하다. 교육부의 각종 대학정책이 대학의 비정규직 폭증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최근 교육부의 대학 특성화 사업에서 탈락한 대학들은 속속 특성화 사업단을 해체하고 사업단의 인력을 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푼이 아쉬운 대학들은 교육부의 각종 대학재정지원사업에 지원했다가 탈락하면 사업단을 해체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립대 전 이사장은 대학의 재정을 움켜쥔 교육부의 정책을 ‘악질적’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이사장은 “사립대에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등에 업고 대학의 목줄인 재정을 틀어쥔 채 각종 교육부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경로로 악용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모든 목적은 정원감축에 두고 있으면서 온갖 감언이설로 국고지원사업을 벌여 대학들을 줄세우기 하고 있지 않나. 학벌타파와 대학 자율성 신장을 외치면서 실제 하고 있는 것은 대학의 뒷덜미를 잡고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이사장은 또 “무엇보다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큰 틀에서 허용하는 새로운 방식의 대학정책이 필수적이고 사회적 인식을 바꾸면서 대학이 등록금에 대한 일정한 자율권을 되찾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전향적인 정책이 반드시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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