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택(본지 논설위원 / 서경대 철학과 교수)

▲ 반성택 서경대 교수
마침내 평가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학생도 학습 후 평가를 받고, 교수에게도 연간 업적평가, 강의평가는 이미 중요한 일이 돼 있다. 뉴스에서는 정부기관, 공기업, 대학, 사기업 등에 대한 평가 결과를 가끔 대할 수 있다.

누구도 평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이다. 평가하는 쪽도 누군가에 의해서 거꾸로 평가를 받는다는 점은 매우 특징적이다. 학생은 교수를 평가하고, 교수는 학생을 평가한다. 대학은 교수를 평가하며, 국가기관은 대학을 평가한다. 국가기관도 평가를 받는다. 국가기관의 평가 원칙을 정하는 정치인들도 선거 등을 통해 평가받는다. 평가와 관련해 일종의 순환 구조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제왕적, 권위적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 사회가 어떤 초월적이거나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민주적 성격을 지닌 것에 기인할 것이다. 더 이상 평가를 받지 않는 그 어떤 영역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오늘날 사회의 근본 특성이 평가 전성시대를 몰고 온 것이다.

오늘날 평가는 피할 수 없다. 초점은 평가가 그 취지를 잘 살려서 평가대상의 발전이나 합리성 제고를 결과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학도 예외일 수 없다. 대학평가는 평가대상인 대학의 발전, 나아가 질적인 발전을 낳도록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학평가의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이와 다르다. 평가가 대학의 질적 발전을 이끌기 보다는 대학교육 현장에 여러 혼란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많다. 90년대 정도까지는 그나마 존재하던 대학별 특성, 즉 한양대 공대, 인하대 공대, 고려대 법대 등의 특성이 평가가 지속되면 될수록 더욱 희미해지고 있다. 이에는 물론 대학서열 구조도 작용하나 대학을 특성화해 발전하도록 하려는 평가 정책이 그 정책적 취지를 산출하는 데 사실상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취업률 중심 평가로 인해 대학의 본래적 의미가 약화돼 대학 질적 발전이 정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육과 연구기관인 대학에 대한 평가에서 전임교수 관련 여러 평가지표가 대학의 질적인 발전을 오히려 저해한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의 비전임교원을 전임교원 산정에 포함시켜 주는 평가 지표는 대학 질적 발전을 오히려 가로막는다. 또한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도입된 전임교원 강의담당 지표가 담당비율은 높이지만 내막을 보면 기존 전임교원의 교육과 연구 여건을 약화시켜 질적인 발전을 오히려 막고 있는 점도 문제다.

말이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문학 분야에 국한시켜 보면, 대학 관련 각종평가가 인문학의 학문적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실시돼 그렇지 않아도 위기의 인문학을 ‘평가제도가 인증하는 위기’로 몰고 갔다는 지적도 수시로 제기된다. 대학평가가 인문학의 위기를 제도화된 위기로 격상시킨 셈이다.

이렇듯 한국 대학의 양적 발전에 이어서 질적 발전을 이끌어야 할 대학평가는 그 소기의 목적 달성에 현재까지는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학을 살려야 한다’는 구호도 등장하고, 대학의 황폐화 및 취업 학원화, 교육인력 외주화 등이 거론된다. 그리고 대학평가가 대학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심화돼 대학의 존립까지 좌우하는 평가로 이어지자, 이제 평가는 발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제거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존재 근거를 좌우하는 평가가 대학을 엄습하자 이제 대학은 필사적으로 보고서 꾸미기에 나서고 이에 편승해 각종 컨설팅 업체가 맹활약한다. 이 결과 평가산업이라는 용어도 대학에서 익숙하다. 평가의 산업화가 진행돼 온 것이다.

대학평가 이대로는 안 된다. 하지만 평가는 해야 한다. 교수 개인에 대한 업적평가는 논문 중심이라는 지적부터 단기간의 성과에 매달린다는 비판 등에 시달리지만 교수의 생활을 바꿔 놓았다. 교수되는 것이 목적인 시대가 지나가고 교수로 ‘의미있게’ 기능하는 시대를 업적평가는 열었다. 마찬가지로 대학평가도 대학의 퇴출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서열화를 더욱 조장하기 보다는 평가대상의 질적 발전을 견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이 교육과 연구를 주요 기능으로 하기에, 이를 주로 수행하는 교수의 규모, 지위, 역량을 평가하는 체제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또한 현대사회가 보여주는 자본주의적 속성을 보면, 투입 교육비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스템 도입이 절실하다. 전임교원 및 교육비 문제를 제대로 평가하는 제도 도입이 대학의 질적인 발전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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