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학생 구분 없이 한목소리, 시국선언 발표 대학 100여개 넘어

5일 전국 시국대회 및 12일 청년총궐기 예고
총학생회 아닌 개인별·전공별 시국선언도
법학 전공 교수들 “대통령 수사 합법” 주장

▲ 대학생들은 5일 전국 동시다발 대학생 시국대회를 열고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수도권과 강원지역 대학생들이 5일 서울 대학로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하는 모습.(사진=이재익 기자)

[한국대학신문 이재익·구무서 기자] ‘비선실세 국정농단’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대학가 시국선언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대학생들은 단순히 ‘비선실세’에 대한 분노와 처벌이 아닌 국가수반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대통령의 하야까지 거론하고 있다. 대학교수들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거국중립내각 구성’ 등 학생들보다 다소 부드러운 어조로 시작한 교수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통령 하야’의 목소리가 더 거세지고 있다.

지난 26일 이화여대에서 시작된 대학가 시국선언은 4일 현재 전국으로 확산됐다. 4년제 일반대학 총학생회뿐만 아니라 신학대, 사범대학, 전문대학 등 대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고등교육기관이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대학 수로만 따져도 100개가 넘는다. 오히려 시국선언을 하지 않은 대학을 찾기가 어려워질 정도다.

■ 시국선언, 대학별 선언에서 전국단위 공동선언으로 확대 = 전국 각지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던 대학가 시국선언은 이제 공동선언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2일 전국 40개 대학 총학생회를 포함한 57개 대학생 단체는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 선포식을 가졌다. 선포식에 참가한 학생대표들은 사유화된 국가권력에 분노하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실세들을 비판했다.

먼저 학생들은 이화여대에서 문제로 떠오른 최순실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특혜에 대해 비판했다. 학생들은 박근혜 정부가 최순실씨의 딸에게 특혜를 베푸는 동안 이 나라의 미래인 청년과 대학생들은 내팽개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교수님과 학칙도 바꾸며 권력의 특혜를 받을 때 대학생들은 강화되는 경쟁 속에 시험과 리포트를 준비하며 수많은 밤을 새워야 했다”고 비정상적인 현실을 꼬집었다.

또한 “박근혜 정부 아래서 이 땅의 민주주의는 죽어 있었고 국민들은 신음과 고통 속에 있었다. 온 국민이 현 사태에 분노하고 거리로 나선 것은 최순실이라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박근혜 정권의 4년 속에 축적됐던 분노가 폭발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시대에 대학생들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며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최은혜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이화여대는 그간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학사특혜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 중심에 있던 최순실은 모든 국가 운영에 관여하고 있었다. 이건 헌정질서가 파괴된 비정상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며 “책임총리제, 거국중립내각제로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라면 국민이 물러나라 요구할 때 물러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전국 40개 대학 총학생회를 포함한 57개 대학생 단체가 2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 선포식을 가졌다. 학생들은 5일 지역별로 전국 대학생 시국대회를 열고 선언문을 발표했다. 오는 12일에는 민중총궐기 참가 전 ‘청년총궐기’에 참가할 예정이다.(사진=이재익 기자)

■ 다양한 범주로 확산된 시국선언 = 대통령과 측근들에 대한 공분이 담긴 시국선언은 대학 총학생회가 아닌 개인부터 전국 단위까지 다양한 범주로 발표되고 있다.

416대학생연대 장은하 대표(한신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932일이 됐다. 있을 수 없는 그날, 희생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국가를 기다렸다. 대통령의 7시간 등 각종 음모론은 피해자 가족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현 국정파괴사태에 대한 의혹은 권력집단이 그대로 있는 한 밝혀질 수 없다. 대통령 퇴진은 국정원 개입,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모든 의혹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 말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그 측근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도 많았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가 교수로 있는 국민대 학생들은 3일 기자회견을 열고 “면피성, 책임 회피성 임명에 동의한 교수에게 제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이 교수로 재직한 성균관대와 한양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단과대 연합의 목소리도 진행됐다.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이나 단과대별 전국단위 연합을 결성하고 시국선언에 나서고 있다. 전국 사회과학대 학생회 연합, 신학대학 연합, 간호대학 연합 학생 등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전국 교육대학 12곳과 사범대학 22곳의 학생들도 '전국 예비교사 동시다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발표문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은 앞으로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기조차 부끄러운 역사의 한 순간"이라며 "언젠가 교단에 서서 2016년을 가르쳐야 할 때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있도록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대학교수들 ‘거국중립내각’ 주장에서 ‘하야’ 촉구로 = 교수들의 시국선언도 비슷한 모양새를 띄기 시작했다. 전국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거국중립내각 구성’ 등 학생들보다 다소 부드러운 어조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통령 하야’ 촉구의 목소리가 더 거세지는 형편이다.

교수 시국선언의 첫 시작은 성균관대였다. 성균관대 교수 30여명은 지난달 27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내각 및 청와대 비서진 사퇴’와 ‘거국 중립 내각’ 구성을 주장했다.

성균관대 교수들은 “‘국기를 문란시킨 비정상’의 사태를 접하고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며 “대통령은 가능한 빨리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을 전부 사퇴시키고 거국 중립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헌을 비롯한 모든 나랏일을 새 내각에 일임해야 더 이상의 사회 혼란과 국격 추락을 방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탄핵에 대해선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탄핵 논쟁은 바람직한 선택만은 아닐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후 진행된 대학교수의 시국선언들은 ‘하야’와 ‘중립내각 구성’의 목소리가 비등하게 진행됐지만 중립내각 구성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과 함께 여당과 청와대가 주도한 내각은 진정한 중립내각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교수들의 목소리도 ‘하야’로 굳어지고 있다.

▲ 전국 대학교수들과 연구자들 2234명이 2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을 훼손한 책임을 묻고 하야를 촉구했다.(사진=이재익 기자)

■ 전국대학교수·연구자 2234명 ‘하야촉구’ 서명 청와대 전달 = 지난 2일 전국 대학교수들과 연구자들 2234명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을 훼손한 책임을 묻고 하야를 촉구했다. ‘헌정파괴와 국기문란을 야기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전국교수연구자 시국선언’ 참가자들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라며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전국 대학교수와 연구자 2234명의 서명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시국선언 참가자들은 △대통령 즉각 퇴진 및 자진 검찰 출두 △새누리당 해체 및 야당의 정치공학적 타협 중단 △거국중립내각 반대를 주장했다.

이들은 국가와 대통령에 대해 “대한민국은 국민주권의 원칙하에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도록 노력하는 민주공화국 체제이며 대통령은 공공적 책무를 위임받은 최고 공직자”라고 정의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본분을 망각하고 봉건시대의 왕처럼 자신과 가신을 위해 국가권력을 사유화했다. 비선실세의 본말을 보면서 참담함과 자괴감을 감출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대통령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몰랐다면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이고 알았다면 대통령이야말로 국정농단의 주역이자 최순실과 더불어 국기문란 행위의 공범”이라며 “이번 사태가 시민이 주체가 되는 민주사회의 기틀이 되길 바란다. 그 유일한 통로는 대통령 즉각 퇴진”이라 주장했다.

또한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거국중립내각 등에 대한 차선책에 대해서도 “이미 존립이 불가능해진 박근혜 정권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을 챙기려는 반국민적 책동”이라며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 대국민담화에도 가라앉지 않는 분노, 5일 전국단위 동시 시국대회 = 4일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진행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대학생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담화 직후 각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오히려 책임만 더 회피하고 있다며 분노를 표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왔다.

이제 학생들은 시국선언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시국대회’로 행동에 나선다. 5일 전국 각지에서는 전국 동시다발 대학생 시국대회가 열렸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대학생들은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결집해 광화문까지 함께 행진했다. 호남권은 오후 5시 광주 금남로에서 광주 청년학생대회를 열고 행진과 집회를 이어갔으며 영남권은 부산 서면에서 공동선언문을 낭독하고 청년 행진을 진행했다. 충청권은 오후 2시 30분 대전 타임월드에서 대학생 시국선언 대회 이후 오후 4시 시민촛불집회에 참여했다. 학생들은 오는 12일에도 민중총궐기 참가 전 ‘청년총궐기’를 열고 대학생과 청년들의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이번 시국대회의 공동대표를 맡은 안드레 동국대 총학생회장은 “박근혜 정권이 급작스러운 총리 인선과 검찰조사를 받겠다는 사과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국민들의 퇴진 요구를 회피하는 행위다. 검찰도 시간 끌기, 최순실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고 있다”며 시국대회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대학생 시국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사진=이재익 기자)

■ “대통령 수사 가능” 전공 교수들 주장 = 교수들은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한 학문적 해석도 내렸다. 청와대가 형사소송법 제111조 제2항의 ‘소속공부소 또는 당해감독관공서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내용 등을 이유로 검찰 수색 등을 거부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장(인천대)은 지난달 30일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국정을 문란 시킨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공익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위한 경우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형사법 전공 교수 69인도 4일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헌법 해석상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헌법 제84조의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문구를 “형사상 소추 불가만 규정하며 수사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또한 수사의 조건과 소추의 조건은 구별되며 추후의 소추와 처벌을 위해서라도 사전에 증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또한 교수들은 대통령의 퇴진이 국가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주장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임재홍 전국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은 2일 진행된 전국교수·연구자 시국선언에서 “대통령 때문에 혼란이 발생했고 (대통령이)물러나야 수습할 계기도 만들어질 것이다. 물러나지 않는다면 검찰은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게 된다. 여야 정쟁도 격화될 것이고 분노한 시민이 쏟아져 더 큰 위기를 불러낼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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