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 성추행 사건 발생해도 대학 당국 교수 처벌에 소극적

대학가 성추행 교수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면서 상아탑의 도덕 불감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추행 당사자에 대한 이같은 가벼운 징계가 성추행에 관대한 대학 문화를 양산할 우려가 있으므로 관련자를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자신의 연구실에서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물의를 일으켰던 서울시립대 J교수가 서울시로부터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J교수는 지난 1월 자신이 가르치던 한 여학생을 연구실로 불러 여학생의 양쪽 귀를 잡고 자신의 볼과 입을 여학생의 볼에 갖다댔고, 입술을 혀로 핥는 등 성추행을 범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시립대 성폭력 예방 대책위원회는 지난 7월 사건 당사자인 J교수의 성추행 혐의를 인정했고, 9월초 총장 명의로 서울시에 J교수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시 측은 J교수를 중징계 단계 중 가장 낮은 수위의 정직 1개월로 의결했다. 징계처분을 내렸던 서울시 특별징계위원회 한 관계자는 “혐의자가 그동안 학문적 연구 업적과 정신적 고충으로 인해 성추행에 대한 대가를 일부 치렀다는 점을 감안해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면서 “J교수가 공무원 품위 유지의 의무를 위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시립대 학생들은 정직 1개월 결정에 수긍할 수 없다면서 강력히 반발. 학교측은 10월 4일 총장 명의로 재심을 청구했으며, 대책위와 학생회는 지난 2일 학내에서 삭발식을 갖고 시청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립대의 경우처럼 최근 각 대학의 성폭력 예방 움직임에도 불구, 대응 강도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얼마 전 연세대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K교수 성폭력 사건의 경우는 사건이 발생한지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지난 2000년 5월, K교수는 논문 지도를 해주겠다며 피해자를 불러내 강제로 신체 접촉을 하고, 술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등의 성폭력을 저질렀다. 이 후 피해자는 충격으로 자살까지 시도하는 등 엄청난 고통을 겪고 남은 학업마저 포기한 채 한국을 떠났지만, 학교측과 교수 사회의 소극적인 태도는 사건을 유야무야 시켰다. K교수는 오히려 자신의 가해사실을 부정하며 말을 바꿔 “피해자가 원래 정신이 좀 이상했다” 는 등 피해자를 비방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지지자를 명예훼손으로 역고소 했다가 취하하는 등 행동까지 했다. 징계를 받거나 알려진 이런 사건 외에도 수많은 대학에서 교수 성폭력 사건이 처리 중에 있다. 서울시립대나 서강대 외에도 동국대 K 교수, 서강대 H 교수, 교원대 L 교수, 강원대 L 교수, 경북대 O 교수, 경일대 L 교수, 서울대 L 교수 성폭력 사건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하고 학내에서 문제화됐던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모두 대학 교수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논문 지도를 받는 대학원생이나, 교수를 도와주는 조교, 강의를 듣는 학생 등에게 성폭력을 행사했지만 학교측은 한결같이 이들 교수들에 대해 ‘솜방방이 처벌’을 내리는데 그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대학내 성추행 문제가 교수와 학생 사이의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발생하는 대학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만큼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성폭행 사건 피해자가 해당 교수에게 논문을 지도 받는 대학원생, 조교,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이라는 점은 교수 성폭력 사건이 교수사회의 권력관계나 권위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만큼 이 문제가 먼저 해결되야 학내 성추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서울지역 6개 대학 여학생단체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교수성폭력 뿌리뽑기 연대회의’ 한 관계자는 "대학 징계위원회는 가해자인 교수 중심의 시각으로 피해자를 '훈계'하거나 합의를 유도하는 등 '중재'를 자신들의 할 일로 착각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보다 훨씬 성문화가 개방된 다른 나라들도 학교 성폭력 문제의 경우 다른 사안보다 훨씬 엄중하게 처벌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어 관련 사건이 터질 경우 교수는 사임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캐나다는 교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학교가 바로 조사를 시작하고 교수는 조사가 끝날 때까지 정직 조치된다.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면 그 교수는 파면되거나 학교를 옮겨야 하며, 이는 종신교수에게도 엄격히 적용된다. 학생은 학업중단에 따른 손해와 미래의 예상손해에 대해서까지도 보상청구가 가능하다. 캐나다 뿐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의 경우도 캠퍼스 내 교수와 학생간 성추행 관련 스캔들 문제를 엄격히 다루고 있어 교수들은 항상 성추행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수업에 임하고 있다. 한편 서울시립대 한 교수는 “교수 성폭력 문제는 더 이상 교수 사각지대 속에 남아 있을 수 없다”면서 “차고 넘쳐 수면 위로 떠오른 교수 성폭력 문제, 예방을 위해선 무엇보다 가해자 교수에 대한 학교측의 처벌 의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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