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진 대표성 없고 최신 트렌드 반영 못해 정부도 ‘보조재’ 용인

2013년~2016년 637억원 2017년 55억원 등 5년간 692억원 '낭비'

[한국대학신문 이재·천주연 기자] 박근혜 정부가 능력중심사회를 구축하겠다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교육부가 4년간 637억원을 쏟아 부어 제작한 NCS 학습모듈은 대학가에서 완전히 외면당하거나 보조교재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 학습모듈은 NCS를 교육훈련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구성한 교수·학습자료로 사실상의 교재다.

23일 교육부와 전문대학가에 따르면 NCS를 직업교육과정에 도입한 전문대학가 일선 교육현장에서 NCS 교재에 해당하는 학습모듈을 실제 교과과정에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한 전문대학 관계자는 “학습모듈이 현장에 맞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동일한 직무라고 해도 기업과 지역에 따라 적용방식이 달라 표준화가 어렵다. 일선 대학현장에서 교육에 쓰려고 하다보면 도리어 산업체가 그런 교육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실제 교과과정 개발에서도 학습모듈에 정해진 일부만 차용해 쓰는 경우가 생기다보니 학습모듈 자체가 무의미해진 상황이다. 참고자료로밖에 못 쓴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NCS 학습모듈을 개발한 개발진의 대표성에도 의구심을 표하는 실정이다. 경북지역 한 전문대학 관계자는 “산업구조가 폐쇄적이고 전문가 풀(pool)이 적은 분야라면 표준화가 용이하다. 그러나 기계나 용접 등은 차원이 다르다. 수없이 많은 기업과 전문가가 있는데 누가 이를 표준화할 권위를 가질 수 있겠나. 용접만 놓고 봐도 업무현장과 대상, 기업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런 문제들이 애초에 노정돼 있었기 때문에 학습모듈로 표준화해도 권위가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실제 개발과정에 참여한 교수의 증언 등에 따르면 산업체 대표로 도저히 접해본 적 없는 인사가 개발진으로 참여하기도 했다고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학습모듈이 교재로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NCS 분야 중 건설기계운전·정비 분야의 학습모듈에서 굴삭기 운전 관련 능력단위가 빠진 채 개발돼 공개된 사례도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학습모듈이 기술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학습모듈 개발 당시 최신 기술트렌드를 반영하려고 해도 학습모듈 완성까지 연구와 개발, 검증 등 최소 6개월여가 소모되다보니 완성된 시점에서는 이미 낡은 기술로 전락하고 만다. 실제 교육부가 개발을 완료했다고 공개한 한 학습모듈에는 2006~2007년경의 기술사례가 예시로 제시돼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한 전문대학 교수는 “10년전 기술을 사례라고 제시한 교재를 최고 1만원 상당으로 팔고 있다. 이걸로 무엇을 가르치라는 것인지, 지금 트렌드와 전혀 맞지 않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NCS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 모든 과목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NCS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런 과거의 기술사례를 가지고 응용지도를 하라고 하는데, 응용지도를 하면 그 자체로 표준화를 목표로 했던 NCS와 학습모듈 개발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 가르치는 교수 개인의 능력과 자질에 따라 응용돼 내용이 달라지면 그게 무슨 국가직무능력표준인가”라고 비판했다.

학습모듈을 가르칠 교수들에 대한 교육도 빠졌다. 수도권 한 전문대학 교수는 “학습모듈이 교재고, 교재를 갖고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들을 위한 교재가 따로 있다. 교육부는 교수용 교재를 갖고 학생들을 그대로 가르치라고 한다. 근데 그 교수용 교재는 누가 가르치나? NCS 도입 초기인데 누가 교수용 교재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표준적으로 가르칠 수 있겠는가”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NCS 학습모듈이 실제 교육현장에서 외면당하자 주무부처인 교육부도 학습모듈을 교육과정에 전면도입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난해 10월부터 가이드라인을 작성·배포해 보조교재 등으로 사용할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한국연구재단 전문대학지원팀 한 연구원은 “지난해 10월 자율적 활용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우선적으로 학습모듈을 활용하되 핵심내용을 제외하고 수정보완을 허용하는 내용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정에도 불구하고 전문대학가의 혼란이 거듭되자 한국연구재단 등 정부관계자들이 직접 NCS 컨설팅위원들에게 학습모듈의 문제를 인정하고 수정보완을 허용했다는 내용을 알리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결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학습모듈에 투입된 예산이 사실상 낭비됐다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는 앞서 지난 2013년 학습모듈 개발예산으로 37억원을 편성한 데 이어 △2014년 132억원 △2015년 235억원 △2016년 233억원 등 637억원을 편성했다. 오는 2017년 예산안에도 4차 산업혁명 등 미개발분야 50개 학습모듈 개발을 위해 55억원을 편성했다. 이 예산까지 통과된다면 박근혜 정권 집권 5년간 NCS 학습모듈 개발에만 692억원이 쓰이는 셈이다.

경북지역 또 다른 전문대학 관계자는 “혈세낭비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NCS가 우스갯소리로 교육계의 4대강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타당성이 있고 도입이 가능한 일부 분야부터 천천히 시작했다면 달랐을 수 있지만 지금은 국정과제라는 이유로 도입을 사실상 강제하고 완성도를 높인다며 짧은 기간 내에 다량의 학습모듈 개발을 밀어붙이니 부실한 교재만 양산되고 세금만 날린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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