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명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 한신대 교수)

12월 9일 국회에서 역사적인 탄핵이 이뤄졌다. 광장에 모인 시민의 힘이 당리당략에 의한 부당한 정치적 거래를 막고, 국회에서 탄핵을 결행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탄핵은 2016년 11월부터 지금까지 거세게 타오르고 있는 광장의 시민혁명이 일구어낸 하나의 성과이다. 하지만 아직 문제는 출발점에 있다.

박근혜는 공화국의 기본질서를 파괴해버린 중대 범죄행위를 범하고서도 세 차례의 담화를 통해 자신은 대통령 직위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밝혀왔다. 12월 6일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면담을 통해서도 차라리 탄핵을 받아들이고 헌재에서의 다툼을 통해 시간을 벌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제는 탄핵정국에 숨어, 헌법재판소 심리과정에서 사태를 역전시키거나 최소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려고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조차 탄핵이면 족하다고 하면서 박근혜를 엄호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오늘날 국민의 정서에 통할지 의문이다. 시민혁명에 나선 주권자는 박근혜 정부가 시민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공화국의 ‘공공적 의무’를 팽개쳤다는 점, 그리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권력을 사유화해 독점재벌과 담합하고 국민들에게 끝없는 적대행위를 해왔다는 점,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공화국의 기본질서를 처참하게 붕괴시켜버렸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국민들은 박근혜가 헌법적 절차 뒤에 숨는 행위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박근혜는 국민적 탄핵의 결과를 겸허히 수긍해 즉각 퇴진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의 일익인 황교안 내각도 대행체제로서 자격이 없으므로 차제에 동반 사퇴하는 것이 맞다.

탄핵이 이뤄지는 최후 순간, 야당은 '의원직 사퇴'를 내걸고 비교적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11월 시민혁명과정에서 야당은 당리당략에 의해 기회주의적 타협을 계속해왔다. 국회청문회에 불려나온 재벌의 경호원들이 국회에서 노동자를 폭행하는 것을 방관하면서도, 야당이 앞장서 국회 탄핵투표일에 시민들에게 국회를 폐쇄한 것은 그들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언제든 야당은 11월 시민혁명을 ‘권력장악’이나 ‘개헌논란’ 등 스스로의 편협한 이익을 위해 충분히 왜곡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야당이 시민혁명에 나선 주권자의 본질적 여망을 왜곡하고 이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시민들은 야당 또한 탄핵하고 자신들의 새 정치세력을 광장에서 만들어낼 것이다. 오늘날 우리 앞에 있는 시민은 87년 군부독재의 굴레를 갓 벗어난 ‘신민(臣民)’이 아니라, 그 후 30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한 ‘깨어있는 민주정신’에 충일한 혁명적인 시민이다.

소위 박근혜게이트는 최순실에서 시작해서 박근혜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최순실 구속, 그리고 박근혜 퇴진과 구속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주권자 국민은 우선 박근혜가 농단한 국정의 온갖 적폐를 철저히 청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일파와 담합해 전국민을 위기로 몰아넣은 천민자본주의 재벌 지배구조,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반민주적 국가권력기관, 국정농단의 한 축으로서 시녀노릇을 자임해온 보수 언론과 대학 등을 민주적으로 개혁해야만 한다. 나아가 깨어있는 강고한 시민들의 합의와 연대에 기초해 민주평등, 공공성의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박근혜게이트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주권자 국민의 여망에 따라 후세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길이다.

우리 교수연구자들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다수의 교수들이 연루됐다는 사실에 대해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3000명을 넘는 우리 교수연구자들은 지식인의 사회적, 역사적 책무를 되새기면서 두 차례의 시국선언을 결행하고 시민항쟁에 참여해왔다. 그 활동의 조직적 표현인 ‘박근혜 즉시 퇴진과 민주평등 국가시스템 구성을 위한 전국교수연구자 시국회의’는 우리의 시민혁명이 완수될 때까지 헌신하고자 한다. 우리가 지닌 전문적 지식과 식견을 광장의 민중, 시민과 폭넓게 나누고, 민주평등, 공공성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는데 교수연구자로서 진취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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