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곤 전국국공립대학교노동조합 정책실장

국립대는 저렴한 등록금으로 고등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주기 위해 존재한다. 지역 곳곳에 국립대를 설치·운영해 지역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꾀하는 역할도 한다. 민주공화국 시민의 비판의식과 균형 잡힌 사고를 갖도록 기초·인문학을 양성하는 것도 국립대의 역할이다.

우리 사회는 국공립대 학생 비중이 전체의 60∼90% 이상인 OECD 국가들과 달리 사립대 학생 비중(75%)이 국·공립대학(25%)의 3배에 달한다.(대학교육연구소 자료) 국가가 부담하는 고등교육 재정은 OECD 국가 평균이 80%인 반면 우리나라는 16%에 그쳐 학부모 등 민간 부담이 84%에 이른다. 국가가 설립한 국립대도 학생과 학부모가 내는 등록금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어 국립대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하다.

사립대 비중을 줄이고 국립대는 늘리는 것은 고등교육 정상화의 한 방법이다. 따라서 고등교육 재정을 늘려 국립대 비중과 역할을 확대하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논의가 필요하다. 교육부와 몇몇 국립대가 ‘국립대 연합대학’ 정책을 거론하는 것은 국립대 존재 의의를 훼손하는 것으로 맥을 잘 못 짚은 것이다.

교육부와 몇몇 국립대 총장들은 연합대학은 과거의 국립대 통폐합 정책과 다르다고 항변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이들은 연합대학을 추진해 대학의 인적·물적 자원을 공유하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림없다. 국립대 위기는 대학들이 자원 공유를 안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재정 지원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국립대도 서열화 돼있다. 거점국립대, 지역중심국립대, 특수목적국립대, 교원양성국립대로 나눠 수십 년간 차별적 지원을 받았다. 수십 년간 특혜로 성장한 거점국립대는 연합대학을 지역 중소국립대와 자원을 공유하기 위해 출발한다 해도 결국 서열화가 존재하는 한 거점국립대로 무게 중심이 쏠리게 돼 중소국립대는 흡수될 것이다.

연합대학 정책은 영양제 주사가 필요한 환자에게 병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다른 환자의 약을 뺏어 먹으라는 것과 같다. 국립대가 위기라는 진단에는 동의하지만 위기를 극복하는 처방에는 동의하지 않는 이유이다.

고등교육 재정 확충을 요구하자. 부실 사립대를 국공립화해 국립대 비중을 늘릴 것을 주장하자. 그리고 그 어떤 요구이든 총장과 몇몇 보직 교수들의 독단이 아니라 해당 대학의 교수·직원·학생 등 대학의 주체들과 함께 논의하는 대학 민주주의가 전제돼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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