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의 용’ 노 전 대통령 등 성공신화 이면에 산업화된 사교육

더불어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이 지난달 19일 행정고시 5급 폐지를 골자로 한 공무원 인사제도 개혁 방안을 밝힌 뒤 파장이 크다. 당장 행정학 전문가들은 섣부른 시도라며 정치권 주도의 인사제도 개정에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앞서 이미 폐지됐거나 폐지를 앞둔 외무고시, 사법고시 등과 맞물려 더불어민주당이 ‘사다리 걷어차기’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행시 폐지론을 둘러싼 논쟁과 고시제도의 현재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한국대학신문 이재·윤솔지 기자] 2007년 사법고시 폐지와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이 결정된 뒤 2013년 외무고시가 폐지돼 현재 국립외교원 체제로 전환됐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소속 초·재선 의원모임에서 행정고시 5급 폐지를 골자로 한 공무원 인사제도 개선안을 제안하면서 한때 국가기간인력 양성제도로 각광받았던 고시제도가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폐지 논의에 휩싸인 행정고시는 1949년 공무원법이 제정돼 고등고시를 실시하면서 시행됐다. 고시는 연령과 학력에 제한이 없고 합격하면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어 ‘개천에서 용나는’ 신분상승의 사다리로 여겨져 왔다. 이 때문에 숱한 고시생의 성공신화가 수기집으로 묶여 출판되는 현상도 한동안 이어졌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시 사상 가장 큰 성공신화를 쓴 것으로 손꼽힌다. 상고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은 1975년 당당히 사시에 합격한 데 이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 최초의 고졸 출신 대통령이라는 신화를 썼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공신화의 이면에는 산업화되고 전문성을 잃어가는 고시문화가 움트고 있었다. 1980년대 혈혈단신으로 절이나 고시원에 들어가 두문불출하던 고시생의 모습은 이후 1990년대 학원 수강을 통한 시험 준비가 일반적인 양상이 됐다.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수강하면서 1년에 한 두번 치러지는 시험을 기다리는 게 수험생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

상황이 이렇다보니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과는 달리 고시준비는 경제적인 계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한 고시생은 “고시생의 경제적 격차는 결국 스타강사의 강의를 듣느냐 듣지 못하느냐로 양분된다. 스타강사의 강의는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을 정확하게 예측하는데 있는데 이는 결국 수강료의 격차로 이어지고, 경제적인 신분으로 나타나는 결과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 외에도 고시를 통과한 합격자들의 이너 서클도 문제로 대두됐다. 수만 명의 지원자 중에서 수백 명만 합격하는 고시의 구조적인 특성상 고시에 합격한 이들은 손쉽게 기수문화로 묶이고 폐쇄적인 카르텔을 형성해 나갔다. 직무능력보다 기수가 더 중요한 사회가 대두된 것이다. 고시제도의 손질 혹은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이 지점에서 잉태됐다. 수년간 적폐된 공직사회의 기득권 유지를 극복할 방안은 그들의 입구 자체를 개혁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행시 폐지 논의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전문가들도 이런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다. 이승종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은 “고시의 문제는 결국 기득권 형성과 권력 독점”이라고 지적했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사례 등이 고시로 형성된 ‘패거리 문화’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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