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립대 17개교 중 15개교 수강자격 ‘제한 없음’

[한국대학신문 황성원 기자] 서울 소재 사립대 교육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임민정(가명)씨는 지난 학기 때 교양 수업으로 ‘기초 일본어’를 수강했다. 한 학기 동안 빠짐없이 과제도 제출했고 나름대로 시험도 잘 본 터라 A 학점을 확신했다. 하지만 임 씨는 C 학점을 받았다. 성적이 잘못 나왔음을 확신하고 교수에게 찾아가 재확인했지만 “만점자가 워낙 많아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알고 보니 만점자 대부분이 일본어 전공 학생들이었다.

‘제2외국어 기초수업’을 듣는 초급반 학생들은 학점경쟁에서 늘 2순위다. 실력자들이 수업에 들어와 A 학점을 싹쓸이하기 때문이다. 입문 단계 학생들은 ‘꼼수’를 부리는 실력자들에게 “미국인이 알파벳 배우는 꼴”이라며 분통을 터트린다. 이런 이유로 수강 신청 시 제2외국어 수업은 아예 빼버리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부분 대학은 특별히 수강 제한을 두지 않고, “알아서 나가달라”고 권고하는 수준에 그쳐 실효성 없는 대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6학년도 2학기 기준 서울 소재 사립대 중 17개교를 조사한 결과, 2개교만이 외국인이나 전공자가 제2외국어 수업을 들을 수 없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몇몇 대학에서는 전공자일 경우 수강할 수 없다고 따로 공지하거나, 자체 시험을 통해 실력별 분반을 만드는 등 여러 대안을 내고 있지만, 대부분은 해당 과목을 담당하는 교수 재량에 맡기거나 제한이 없는 상황이었다.

서울 소재 사립대 4학년인 A씨는 “지난 학기 ‘기초 스페인어’ 첫 수업에서 실력 조사를 했는데 스페인어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며 “교수님은 초급반이니 수강 신청을 변경하라고 말했지만 바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A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진도를 따라갔지만 B학점을 넘을 수 없었다.

이처럼 교수가 수강 변경을 권고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서울 소재 사립대에서 기초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는 한 교수는 “정말 언어를 배우고 싶어서 오는 학생이 있지만 이미 중급 이상의 학생이 ‘학점’을 잘 받기 위해 수강하는 경우도 있다”며 “사전에 듣지 말라고 권고해도 모른 척하고 앉아있으면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불만에 연세대에서는 올해부터 해당 외국어에 일정한 수준을 가진 학생은 기초수업을 들을 수 없도록 단과대 내 내규를 만들기도 했다.

이번 조치로 2017학년도 1학기부터 수능에서 해당 외국어를 응시한 학생이나 △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해당 외국어를 전공한 학생 △해당 외국어 사용권 외국인 및 재외국민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은 제2외국어 기초과목인 한문과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8개 과목에 수강이 제한된다.

제한 방법은 해당 수업의 오리엔테이션에서 ‘실력 진단 조사’를 실시해 해당 외국어에 일정 수준을 가진 학생들을 거르는 식이다. 해당 학생이 수강할 경우 담당 교수 재량으로 학점상 불이익을 준다.

문제는 학생들이 정직하게 참여하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벌써 실효성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세대 커뮤니티에서 한 학생은 “학생이 사전 설문 조사에 허위로 응답해 과목을 수강하면 교수님께서 진위를 실질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연세대 문과대 비대위는 ‘학생들의 협조’를 거듭 강조했다. 학내 커뮤니티를 통해 “바뀐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선 학생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모든 학생이 수준에 맞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협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해당 규정을 학칙으로 제정해 ‘원천 차단’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교직원들도 난색을 보였다. 학사지도를 담당하는 김은영 연세대 교수는 “학칙으로 수업을 듣지 못하게 제재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다”며 “규칙을 만들기 위해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제한범위 내에 조금씩 다른 사례가 많아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담당 교수에게 재량을 주는 쪽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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