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모 교수 개인의 윤리적 면책은 불가” 대체로 동의

“기업이 원하는 대로 연구결과를 조작하도록 길을 열어준 격”
연구 데이터 선별해서 쓰는 것은 “연구자 자유”라는 반론도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옥시 보고서’ 무죄는 연구자의 데이터 조작에 면죄부가 될까.

가습기 살균제 보고서 조작 혐의로 재판중인 조 모 서울대 교수가 지난달 28일 2심서 보고서 조작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학계는 당혹감에 빠졌다. 판단의 결정적 자료가 될 조 교수의 연구노트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검찰의 기소이유와 판결이 엇갈린 상황이다. 다만 “조 교수가 결과보고서를 작성하며 데이터를 잘못 해석한 것은 분명하다”며 윤리적 책임에서 면책될 수는 없다는 분위기다.

이날 과학계 온라인 커뮤니티인 포스텍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는 “데이터의 선별사용이 부정행위인지, 업체의 요구대로 보고서를 써 주는 것이 어느 정도 범위에서 용인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는 글이 게재됐다. 이번 판결로 말미암아 유사한 사례가 사회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댓글에는 “헌법 상 연구자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 “원하는 데이터만 골라 쓰는 ‘체리 피킹’ 확산 계기될까 우려”=28일 아이디 ‘강시’를 쓰는 한 교수는 BRIC에 올린 글에서 “데이터 조작이나 선별적인 데이터 사용은 연구의 의미를 왜곡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부정행위로 판단하는 것이 아마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의 공통된 의견이라 생각한다”며 “업체가 요구한다면 용역비를 받기 위해 업체에 유리한 데이터만을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합법행위가 됐다”고 비판했다.

데이터를 빼는 것만으로 실험 결과를 바라는 대로 조작하기 충분하다는 우려다. ‘강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실험동물을 40마리 썼다면 40마리가 죽었다고 써야 하며, 평균을 벗어나는 것을 논문의 표준 편차와 오차로 표기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동물을 빼버리면 플러스 마이너스 100의 오차가 2로 줄어들 수도 있다”며 “이 판결이 용인되고 과학계가 입을 다문다면 연구윤리가 옅어져 버릴 것이다. 학생들이 자기(교수)에게 야단맞을 데이터는 빼고 유리한 데이터만 보여주는 격”이라고 우려했다.

▲ BRIC 웹페이지 캡처. 28일 2심에서 조모 교수가 풀려나자 연구윤리 문제를 두고 자유게시판 '소리마당'에서 논쟁이 일어났다.

해당 글에는 연구방법이나 실험실 환경이 잘못된 데이터를 누락한 것이 잘못이냐는 댓글도 달렸다. 이 교수는 “저는 선별된 데이터를 쓰는 게 잘못이라고 했으나, (반박은) 시약을 잘못 써서 데이터가 나왔다면서 옹호한다. 조 교수 측 사람이 아닌가”고 주장했다. 물타기라는 것이다. 이어 “(시약을 잘못 쓴 경우는) 버려야 하는 데이터지 쓸 수 있는 데이터도 아니다. 계란 후라이를 하는데 소고기를 내놓고 계란 후라이라고 할 것이냐. 연구 윤리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고 말했다.

데이터 조작을 유도하는 연구부정이 관행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지역의 박사급 연구자 A씨는 “현실적으로 많은 연구책임자들이 직접 (데이터를) 조작하라 지시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다만 ‘뭔가 잘못됐다’는 애매한 말로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재실험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며 “(실험실에서는) 교수가 절대 갑이고 졸업이 늦어지는 게 부담스러운 대학원생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주지 않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관행을 부추기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고백이다.

학계 내의 자정 역할을 해오던 상호 검증도 완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황우석 사건 당시에는 2005년 BRIC을 통한 연구자들의 실험결과 사진 조작 의혹 제기가 논문 조작 규명의 단초가 됐다. 2014년에는 오보카타 하루코 전 일본 이화학연구소 연구원의 만능 역분화 줄기세포(STAP)를 미국 연구팀이 검증 연구해 재현 실패를 입증하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하지만 A 박사는 “현실적으로 그런 것은 어렵다. 피어 리뷰(동료 평가)를 하는 (그룹 내) 관계도 문제고, 검증이 되지 않았어도 잘못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며 “논문에 메소드(실험방법)를 쓰지만 보안, 특허 등으로 100% 오픈하는 일은 없다”고 지적했다.

고의적 조작이 아니라는 이번 2심 판결에 대해 A 박사는 “이번 판결은 법에 의한 판결이라 ‘불편한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며 “다만 사회 전반에 이 정도는 괜찮다는 그런 것을 준 게 아닌가. 법에 의한 판결은 존중하지만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성과에 대한) 상벌이 뚜렷하지 않고, (잘못에 대한) 미비한 징계 시스템을 지적하고 싶다”고 밝혔다.

■ 실험 데이터 조작 아닌 취사선택은 “연구자 자유”…함량 미달일 뿐=반면 법원의 판결을 옹호하며, 이 같은 주장이 연구윤리 문제가 아닌 학문 자유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BRIC에서 아이디 ‘흠’을 쓰는 한 연구자는 “서울대 조 모 교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라며 반박 댓글을 달고 “2심 재판이 끝난 현 시점에서 결론은 검찰이 추정한 혐의는 근거 없음이다. 검찰이 주장하듯이 옥시를 위해 고의적으로 실험 데이터를 삭제했다는 주장에 대해 (조) 교수가 동의를 했다면 그런 판결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실험 노트와 보고서를 보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흠’은 다른 댓글에서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22조를 들었다. 이 연구자는 “조문의 해석을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인 사례로 강정구, 박유하, 조 교수가 있다. 일부 국민들의 믿음과 일치하지 않은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건”이라며 “(2심은) 너무나 당연한 판결이다. 본인의 신념에 의해 실험 데이터 중 일부를 삭제한 행위는 도덕의 영역이지 사법적 판단의 영역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조 교수를 보면서 학문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문제점을 지적한 바이오 전공자가 거의 없었다는 암을한 현실과 더불어, 아직도 그를 사법의 잣대로 다뤄야 한다는 사람마저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 서울대 정문.

이에 대해 익명을 요청한 독성학 전공 B 교수는 “A라는 데이터를 B로 바꾸라고 지시했다면 조작이다. 다만 데이터가 잘못 나오면 사견으로 판단해 오판할 수 있다”며 “그것은 무능한 것이지, 무능한 것을 처벌할 수는 없지 않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의인지 악의인지를 놓고 법적 다툼을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PHMG의 독성에 대한 연구결과는 많이 나와 있다. 데이터 조작의 문제를 떠나 이 사건은 관리체계의 문제”라며 “5년 전에 피해자가 사측에 소송을 했는데, (이후 나온) 김앤장과 조 교수의 데이터를 본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았다. 사람을 죽게 만든 사태는 10년 전부터 발생하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사전에 관리했으면 예방했을 수 있는 사건이나, 책임이 사후 평가보고서를 만든 교수에게 전가된 ‘주객전도’라는 설명이다.

‘흠’도 BRIC 글의 다른 댓글을 통해 “조 교수도 도의적인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역학 조사로 가습기 살균제가 (피해자 사망의) 원인이라는 정부 발표가 있었고, 시판이 금지된 상태였다”며 “직접 책임을 져야 할 집단은 업체 대표, 정치권, 공무원이다. 국민 정서를 고려해서 만만한 교수 두 명을 희생양으로 삼은 게 아닌가”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연구를 수행하지 못해 정상이어야 할 대조군에서 병변이 생겨 결론을 내지 못한 부분에 대해 조 교수는 윤리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서울대가 양심을 가진 집단이라면 연구윤리위원회를 열어 조 교수의 윤리적 일탈 문제에 대해 엄격한 조사를 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연구비 관리 지침 개정한 서울대…대법 확정 판결까지 논란은 계속될 듯=앞서 서울고법 형사4부(김창보 부장판사)는 지난달 28일 서울대 조 모 교수의 증거위조, 수뢰 후 부정처사 혐의에 실형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서울대 산학협력단으로부터 연구 용역과 무관한 물품대금 5600만원을 가로챈(사기) 혐의는 원심 판결을 인정했다.

한편 작년 9월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 여부는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중요사안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간질성 폐렴 항목 데이터를 합리적 설명 없이 임의로 누락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행위”라며 징역 2년, 벌금 2500만원, 추징금 120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 측 발표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조 교수의 연구용역보고서는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로 발생한 인명피해 책임을 피하는 근거로 활용돼 왔다. 검찰은 조 교수가 옥시 측으로부터 의뢰를 받고 불리한 생식독성(임신) 실험결과와 ‘간질성 폐렴’ 항목 데이터 등을 빼놓은 보고서를 고의로 작성했다고 보고 수사 단계에서 구속 기소했다.

한편 서울대는 재발 방치 대책으로 지난 1월 민간 연구비 관리 지침을 개정하고 서울대 소속 연구자가 기업의 용역 연구를 할 경우 ‘이해 상충 방지 서약서’를 사전에 쓰도록 조치했다. 조 교수는 현재 직위 해제 상태다. 대학 측은 대법원 확정 판결 뒤 정식 징계위원회를 열고 파면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