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실 (본지 논설위원/ 교육정책학자,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역사에 길이 남은 명연설은 중대한 변화의 분기점에서 나왔다. 짧지만 강렬한 진심의 힘을 보여준 링컨 대통령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겠다’로 각인된 게티스버그 연설은 이후 150여 년 동안 줄곧 민주주의와 정부 역할을 논할 때 예외 없이 인용돼 왔다. 

대공황으로 도탄에 빠진 상황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취임사로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세계대전의 대혼란 속에서도 힘과 용기가 넘치는 명연설로 절망에 빠진 국민들과 신뢰를 구축하는 강력한 소통에 성공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당시 미국이 당면한 국내외 도전을 열거하며 간결한 화법으로 변화와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집권기간 내내 전 세계를 향해 때로는 울고, 웃고, 노래하고, 말을 잇지 못하는 먹먹함을 보여주며 열정과 진정성으로 공감을 얻어냈다.

상상력을 끄집어내 도전을 통해 혁신을 이뤄야 하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전 지구적으로 ‘파괴적 혁신’이 요청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정치적 격변기를 헤쳐 나가며 새 정부를 탄생시켰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 많은 국민이 지지해 선거 기간 내내 회자된 ‘나라를 나라답게’라거나 ‘나라다운 나라’에 대해서는 그동안 ‘답다’라는 접미사에 대한 편견이 있던 터라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대통령 취임사에서 접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구절이 가슴을 울리고 머리를 밝히고 있다. 

이제 우리도 세계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 취임사를 갖게 됐다고 본다.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해 결과가 정의로울 수 있는 국가사회를 만들기 위해 익숙한 관행과 결별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며 소통하고, 겸손한 권력이 돼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 취임사에 나타난 확실한 메시지를 우리 대학과 대학 구성원은 되새겨야 할 것이다.

대학다운 대학, 총장다운 총장, 스승다운 스승, 학생다운 학생, 행정다운 행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00답다’라는 말은 본질을 잘 지니고 있다는 말인데,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품었던 ‘여자다워야지’라는 말에 대한 반감이 커서 본질의 본질에 대한 중요성을 폄하하게 된 듯하다.

사회화라는 보수적인 역할과 사회혁신이라는 진보적인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학습조직으로서 대학은 유연성과 혁신 탄력성을 지녀야 한다. 긍정적, 부정적 양방향으로 무성한 쟁점이 존재하는 4차 산업혁명의 최종 목적지는 그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만드는 구성원의 역량에 달려있으므로 이러한 역량의 육성과 발현을 지원하는 대학 문화가 구축돼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기회가 크고 강렬한 만큼 그것이 야기할 문제 역시 복잡하고 무거울 것이므로 협력하는 괴짜, 융합형 창의인재 육성을 위해서 대학은 무엇보다도 지속발전이 가능한 교육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대학은 하나의 생명단위로서 자체적으로 생성하고 성장하며 소멸하는 자율적 조직체이기에 자율성은 내부의 조정체제가 작동하도록 하는 주요 요인이다. 이러한 자율 기제가 살아있지 않으면 대학의 건강은 나빠지고 역동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반면 요즘 대학에서는 자율의 필요성만 외치거나 근시안적 시급성에 의한 대증요법에 급급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대학에서는 대학(운영)에 관한 연구만 빼고 모든 다른 연구를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대다수가 공감하는 것도 이러한 준비 부족에 기인한다. 이제 대학에서는 자율을 제대로 이해하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자율을 합당하게 행사할 것인지 준비하고 역량을 보여줘야 할 때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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