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청년들, 같은 아이템 ‘제목만 바꿔’ 사업지원

기관들, 중복 수혜 걸러낼 장치 없어…알고도 선정하기도
전문가 “창업 관련 DB 구축 절실”

▲ 수도권 사립대 학내 게시판에 창업경진대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사진=황성원 기자)

[한국대학신문 황성원 기자] 창업선도대학 40개교의 올해 창업자 선발 규모가 1000명이 넘어가면서 창업 활성화가 급물살을 탔지만, 비슷한 아이디어로 각종 창업지원사업을 지원해 중복 혜택을 받는 창업 좀비들 때문에 대학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창업지원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중복 지원을 막고, 우후죽순 생겨난 창업지원사업이 어느 정도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기화된 취업난과 정부의 창업 활성화 정책이 맞물리며 청년창업은 해마다 증가세를 보였다.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신설법인 동향을 보면, 2016년 신설법인은 약 8만 개에 이르고, 이 중 청년층이 세운 법인은 약 900여 개로 전년도 대비 22% 넘는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가파른 증가세는 중앙정부부터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대학, 기업 등에서 아이디어가 있는 청년 창업가에게 기초 자금부터 사무 공간, 컨설팅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특히 지자체나 대학에서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창업경진대회가 잇달아 열리면서 청년층의 창업 도전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러나 창업지원사업이 늘어나는 만큼 부작용도 심각하다. 다수의 사업에 중복으로 지원하면서 상금만 챙기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지방 사립대 창업지원센터 관계자는 “일부 청년 창업가들이 똑같은 아이디어를 조금씩 변형해가며 각종 사업에 지원해 상금만 받아 챙기는 경우가 있다”라며 “창업 관계자들은 이들을 일명 창업 좀비라고 부른다. 청년창업과 관련한 모럴해저드(Moral hazard)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창업 좀비를 걸러낼 제도적 장치도 부재한 상황이다. 대학창업지원센터 등 사업을 주관하는 기관들은 창업자가 같은 아이템을 제목만 수정하더라도 다른 아이템으로 평가되며, 사실상 그간 어떤 사업에 지원했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어 중복 지원을 알아채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수도권 사립대 창업센터 관계자 A씨는 “국내 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팀이 있다. 1년 안에 각종 사업에서 1억7000만원이 넘는 지원금을 받았지만, 아직 사업화를 진행하지 않았다”라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기관 외에는 중복 지원을 알아차릴 방도가 없고, 새롭게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최근 통계청이 ‘청년 창업가들이 창업지원사업을 미신청한 이유’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원사업 통과가 힘들어 포기했다’는 비율이 ‘지원사업을 알지 못해 신청하지 않았다’는 답변 다음으로 많았다. 즉, 지원사업을 알고도 어차피 통과가 힘들 거라는 생각으로 일찍이 포기한 경우가 다수라는 얘기다. 신용평가 등 자격요건이 맞지 않아 신청을 포기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 말은 요건을 충족한 팀은 계속해서 지원해 지원금만 받아가는 독식 구조로 이동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관계기관에 배정하는 창업 지원금을 대폭 늘리자 ‘일단 주고 보자’는 식의 실적주의도 만연한 상황이다. 창업지원 기금으로 배정된 예산을 소요하기 위해 중복 지원을 발견하고도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전국단위에서 창업경진대회 심사위원이 한 시상팀의 중복 지원 사실을 발견했지만, 대회 주관 기관에서 예산 소요를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시상했다고 밝혔다.

우후죽순 생겨난 창업지원사업을 정리하고 관련 DB를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구자록 울산대 창업지원단 부단장은 “해당 사업이 중복 수혜가 아닌지 키워드를 입력해 확인할 수 있는 DB가 구축돼야, 사업화 의지가 있는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부처에서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창업지원사업도 단기적 창업 활성화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실 없는 창업 기업만 양산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어 정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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