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대 신안산대학 교수(교육연구소 배움 이사장)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 대학의 모습과 역할을 제대로 전망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등교육 현황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오해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수가 급감하고 급기야 대학정원에 비해서 대학진학 희망자의 수가 줄어들면서 대학의 구조조정 문제가 고등교육의 가장 뜨거운 현안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고등교육의 문제가 논의될 때 가장 쉽게 등장하는 것이 대학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나치게 높은 대학 진학률 그리고 현재의 대학정원에 비해 학생 수가 급감하고 있어서 일견 이런 주장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대학의 수가 많다는 것이 사실인가? 대학 수가 많다는 주장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대학의 수가 많다는 주장은 잘못된 전제로 인해 심각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의 수가 많다는 주장은 대학 입학 정원과 대학의 수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비켜나가고 있다. 우리 대학의 입학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자의 수보다 많은 것은 사실이다. 약 3억 인구의 미국은 대학의 수가 3000개가 넘는다. 인구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우리나라 대학의 수(또는 대학의 교육여건)는 그렇게 많은 수준은 아니다. 단순 인구대비가 아닌 대학 진학률을 놓고 보면 대학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학령기 학습자 교육이 중심인 우리 대학과 취업 후 진학자가 많고 평생교육에 높은 비중을 두는 미국 대학의 역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사립대학이 고등교육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현실로 인해 부실대학의 적지 않고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서 대학 수를 줄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부실대학이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대학의 전반적인 교육의 질이다. 2016년 기준으로 서울지역 대학 중 전임교원 확보율의 법정기준을 만족한 대학은 단 2곳에 불과하다. 이러한 열악한 고등교육 환경에 비해서 대학의 정원이 과도하게 많은 것이 대학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구조조정을 이야기 하면서 대부분 대학의 교육의 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 고등교육정책의 핵심적인 목표는 대학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고등교육의 질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하는 구조개혁의 방향 설정과 미래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을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대학재구조화 정책은 전략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고등교육 정책은 세 가지 중요한 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첫 번째는 대학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대학 구조개혁이다. 두 번째로 대학의 역할에 대한 제고와 대학 간 협력과 역할 분담이다. 마지막으로 지방소재 대학에 대한 집중지원 정책이다.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의 수를 줄여서 대학입학 지원자와 대학정원을 맞추는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대학이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원을 감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되면 대학의 재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국가의 고등교육예산을 증액해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학의 역할에 대한 제한된 인식도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대학 진학률이 높은 나라에 속하지만 이것이 대부분 학령기(고등학교 졸업자나 재수생)에 집중되어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급격한 직업의 변화가 예상된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과 지식에 대한 재교육에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며 그 역할의 많은 부분을 대학이 담당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학 내 학생의 인구사회학적 특성이 달라진다. 학령기 인구와 사회와 직업의 경험이 풍부한 중장년이 섞여서 학습하는 새로운 대학의 풍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기가 도래할 때 학령기 학생 수에 맞춰서 대학의 수를 무작정 줄인 것이 또 다른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대학 정책에서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지방대학 육성을 통한 지역균형발전의 실현이다. 사회경제적 인프라의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해 있는 우리나라의 사회구조로 인해 서울과 수도권의 대학은 대학 자체의 교육력과 무관하게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구조를 깨뜨리는 것은 대학이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경쟁하도록 하는 길이자 서울 수도권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과도한 경쟁이 벌어지는 대학서열화를 해소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 소재 대학에 대한 역차별적인 집중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은 앞에서 강조한 두 가지, 즉 미래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을 명확히 재정립하고 이런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대학교육의 질을 확립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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