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선발 기준의 부재’가 딜레마의 이유

▲ 국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의견(제공=한국경제연구원)

[한국대학신문 김진희 기자] 블라인드 채용이 올 하반기 채용의 ‘대세’로 떠올랐다. 문재인정부가 직무역량 중심 사회를 마련하기 위해 이를 국정과제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들은 여전히 블라인드 채용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당초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법제화하고 이러한 흐름을 민간까지 확대하겠다던 문재인정부의 목표와는 상충되는 지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5일 2016년 기준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209개사 응답)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들은 대체로 ‘블라인드 채용’ 자체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209개사 가운데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는 의견이 62.7%에 달해, ‘부정적이다(28.2%)’는 의견보다 두 배 가량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반응은 실제 ‘블라인드 채용’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56.5%의 기업들이 블라인드 채용 도입 계획이 없다고 답변한 것이다. 이미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다고 밝힌 기업은 24.9%, 향후 도입 계획이 있다고 답한 기업도 18.6%에 그쳤다. 블라인드가 채용의 트렌드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 도입에는 망설이고 있는 대기업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이 이러한 딜레마의 이유로 꼽고 있는 건 바로 ‘명확한 선발 기준의 부재’다.

박우식 커리어웨이 대표는 “블라인드 채용의 확대는 직무 역량 중심의 채용 사회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좋지만 아직 기존 스펙 등을 대체할 만한 뚜렷한 선발 기준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도입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관계자 역시 “기업 입장에서는 최대한 구직자의 많은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뽑고자 하는 게 당연하다”며 “명확한 선발 기준이 있다면 달라질 수 있지만 아직 그렇지 못하다 보니 인식과 실제 도입 여부 간 차이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고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학벌, 어학성적 등 기존의 스펙들을 대체할 수 있는 명확한 선발 기준을 확립해야한다고 제언했다.

박 대표는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게 되면 자연스레 자기소개서, 인·적성, 면접의 비중이 늘어날 텐데 그 과정에서 직무에 대한 전문성 등을 가려낼 수 있는 뚜렷한 선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인크루트 관계자도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몇 년 전부터 자체적인 ‘블라인드 채용’ 시스템을 개발해 채용에 적용하고 있다”며 “이를 참고해 각 기업 상황에 맞춘 나름의 ‘블라인드 채용법’을 개발하는 것도 좋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도입 초기여서 그런 것일 뿐, 일반 기업에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만큼 앞으로 블라인드 채용 도입 비율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선발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인사담당자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견기업 컨설팅이나 가이드북 지원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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