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조직구성원으로서 인간은 약점이 많다.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인성, 성격, 선호, 선입견, 가치관 등의 개성에 따라 조직의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구성원 간의 감정까지 더해지면 일을 아예 그르치기도 한다. 반면 정보와 정보로 연결된 시스템은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스템은 이런 인간적인 약점이 아예 없다. 오히려 인간의 능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정보저장능력과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과학적 논리로만 보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행정 조직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인공지능이 주도하고 인간은 단지 이 명령을 따르는 종속 변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비록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인간은 행정 조직을 움직이는 중심에서 내려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인간이 시스템에 밀리지 않고 좀 더 오래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능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구성원 간의 주관적인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구성원은 각자 누구는 플러스 몇 점이고, 또 다른 누구는 마이너스 몇 점이라고 감정관계에 점수를 매긴다. 이 감정점수는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고 변덕이 심하다. 스스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해 둔다면 플러스 동료는 계속 좋은 면만을, 마이너스 동료는 계속 더욱 나쁜 면만을 들춰내서 보려 할 것이고 결국 감정은 양극단으로 치달아 인간관계는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조직 밖에서의 개인적 감정은 관여할 바가 아니지만 조직에서 구성원 간에 발생하는 감정점수는 조직의 협력관계를 왜곡시킨다. 자신과 좋은 인간관계라 하더라도 공적인 일에서는 냉철하게 비판하고 극복해야 할 때가 있고, 비록 나쁜 인간관계일지라도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일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인간관계에서의 협력은 부족하더라도 눈감아주고 나쁜 인간관계에서는 어떻게든 협력을 피해가려 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조직의 성과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 관계에서는 과도한 유착관계가 있을 것이고 또 다른 관계에서는 협력이 단절돼 동맥경화를 일으킬 것이다. 반면 감정이 없는 시스템은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여기에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점수 조건을 투입해서 알고리즘을 만든다면 그 시스템은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프로 행정인은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조직구성원 누구와도 협력해서 최적의 성과를 만들어낼 줄 안다. 그것은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자는 이러한 긴장된 균형의 상태를 ‘천균(天鈞)’이라 했다.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아울러 한가지로 봄’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시비를 판단하는 기준은 나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있음을 알면서도 스스로 그 아집 속으로 들어가는 우리의 마음을 반성하게 만드는 정의다. 철학자 강신주는 천균을 ‘자연스런 가지런함’이라고 풀이했다. ‘천’은 자연스러움을, ‘균’은 도자기를 만드는 회전 장치인 물레를 뜻하는데 천균은 흙덩어리가 물레의 중심부에 놓여 균형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만일 흙덩어리가 물레의 중심부에서 벗어나 있다면 물레가 회전할 때 그 흙덩어리는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흩어져 도자기를 만들 수 없다.

조직구성원 누군가에 대한 감정도 이 흙덩어리와 같다. 중심에서 벗어나면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엉망이 된다. 타자에 대한 감정의 덩어리를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자리, 즉 천균에 둬야 타자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고 나아가 능동적인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매일 아침 출근 전 동료들에 대한 흐트러진 내 마음을 바로잡고 새로운 모습으로 그들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프로 행정인의 자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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