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기업 지역사회 등 수요자 중심교육 절실

개혁에 이어 '경쟁력'이 화두다. 국가, 기업, 개인을 불문하고 사회 모든 영역에서 경쟁력이란 단어가 회자된다. 대학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순 없다. 아니, 자율과 자치 상아탑으로 상징되는 대학에 오히려 경쟁력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경쟁력이란 말을 뒤집어 보자. 그 속에는 '자유경쟁체제'란 이념이, '세계'라는 경쟁대상이 숨어있다. 패자는 도태되고 승자만이 살아남는 냉혹한 정글의 법칙.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는 글로벌시대에서는 일등국민, 최고의 상품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다. 까딱하다가는 아르헨티나처럼 한때 컴퓨터 업계를 호령했던 애플社처럼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지식기반사회가 전개되고 있다. 지식이 경쟁력의 핵심인 사회이다.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대학 경쟁력이 들먹여지는 근본 이유이다. 서울대 오세정 교수는 대학이 "최신 지식을 전수하는 교육기관의 기능을 통해 정보 유통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기초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의 창조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최근 한국개발원(KDI)이 내놓은 '비전 2011 프로젝트'는 대학사회에 '경쟁력'이 화두가 되는 까닭을 다시 한 번 주목하고 있다. 보고서는 '향후 10년 동안 세계화와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아 노동과 자본보다 기술-지식에 의한 생산성 증가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대두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세계화 기준에 부합하는 창의적이고 우수한 인적자원 공급확대를 위해 대학교육이 중요함을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현재 대학이 국가경쟁력 제고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경쟁력'을 과연 갖추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OECD회원국 30개국, 산업화로 부상중인 신흥경제국 19개국 등 세계 경제분야에서 핵심역할을 하는 49개국을 대상으로 국가경쟁력을 평가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은 2000년에 이어 2001년에도 28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고> 이는 홍콩 대만 칠레 헝가리보다 뒤진 순위이다. 이 가운데 교육·인적자원부문 경쟁력은 32위로 국가경쟁력을 까먹었으며, 대학교육의 효율성, 교육시스템의 효율성 면에서는 각각 47위와 44위로 대상 국 가운데 꼴찌를 면하기 급급한 상황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 대학의 연구수준을 가늠하는 세계 유명대학 SCI 논문수 비교(SIS社 2000년 기준)를 보면, 우리나라 서울대는 55위, KAIST 1백60위, 연세대 2백22위, 고려대 3백33위, 성균관대 3백36위, 포항공대가 3백41위에 그쳤다. 특히 우리나라 대학 중 최고 순위를 기록한 서울대는 2000년 2천2백2건으로 1위 하버드대의 8천2백78건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고> 조금 지난 얘기지만 지난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교육위원회의 "한국 대학의 시설과 연구기능이 열악하며, 한국의 대학은 다른 사회분야의 발전에도 보조를 못 맞추고 있는 데다 사회의 기대와의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아직도 유효한 것을 보여준다. 국가의 기대와 요구가 큰 반면, 현실은 낙후된 경쟁력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든 우리나라 대학, 그렇다면 경쟁력을 높일 방법은 무엇인가. 삼성전자 안승준 인사담당 상무이사는 대학사회에 '경쟁원리' 도입을 주장한다. 그는 "무한 경쟁시대에서 유독 대학만이 평가를 회피하고 외부와의 경쟁을 피하려 든다면 이는 국가전체의 큰 손실"이라고 지적하고 "학생에 대한 공정하고 엄격한 학력평가가 이루어짐은 물론 대학의 또 다른 주체인 교수사회에 대한 경쟁원리의 도입"을 제안한다. 안 이사의 지적대로 우리나라 대학은 대학간, 대학 내 경쟁체제가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시간강사 시절 박봉에도 열심히 교육과 연구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전임교원이 되면 무사안일에도 커다란 과오가 없는 한 승진과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사회, 서울대학을 벤치마킹 해 똑같이 닮아가고 한 대학이 특성과를 개설해 인기를 끌면 곧 바로 많은 대학이 따라 가는 심하게 얘기하면, 특성 없이 대동소이하게 운영되는 곳이 바로 대학사회다. 그러나 경쟁원리가 전면적으로 적용된다고 할 때 수반돼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공정한 경쟁 룰과 인센티브 부여이다. 교수사회에 경쟁을 촉발시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단순한 연봉제나 계약제를 실시하는데 머물지 말고, 동기 부여할 수 있는 인센티브제 정착과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 시스템 구축, 교수들의 자유로운 대학간 이동이 관건이다. 대학간에도 대학준칙주의로 대학설립을 자유로이 해 대학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퇴출 시스템 구축 마련도 시급하다. 또 '장원급제 식' 서열 화라는 산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도 과제이다.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대학간 경쟁을 통한 서열 화는 필요악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수의 연구수준, 교육 질 등에 의해 이루어져야하며, 대학의 노력여하에 따라 변화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서열 화는 학부생들의 입학성적에 따라 이루어진다. 따라서 학생은 어느 대학을 입학하느냐에 따라 장래가 정해진다. 기를 쓰고 대학입시에 몰두할 수밖에 없고, 입학한 다음에는 장래가 결정됐으므로 더 이상 애써 공부할 까닭이 없다. 모든 것이 정해진 상황에서 대학도 교수도 학생도 실력발휘 할 동인이 없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대 장회익 교수의 '국립대 개방 안'과 최근 某 일간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서울대 문제'는 서울대문제가 대학경쟁력의 한 복판에 있음을 의미한다. 포항공대 장수영 교수의 "대학의 서열은 연구업적과 취업률, 각종 국가고시의 합격률로 경정돼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면에서 설득력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기업에서 본 대학, 수학논문, 국제경제학술지, 특허, 교육환경, 도서관, 채용시험, 학생식당 등 여러 기준에 의한 대학서열이 발표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기준에 의한 서열 화는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또 하나의 방법은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다. 여기서 수요자는 크게는 학생과 기업 지역사회 등을 일컫는다. 사실 지금까지의 교육은 개발독재 정치체제 영향을 받은 공급자 중심이었다. 이에 따라 학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과목을 공부할 수 없었고, 교수의 일방적인 지시와 낡은 강의에도 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기업은 이렇게 배출 된 인력을 이익창출의 최전선에 내보내기 위해 다시 수년에 걸쳐 재교육을 시켜야 했다. 하지만 이런 시대는 점차 저물어가고 있다. 세계화와 대학입학 연령 인구 감소로 학교 선택의 여지가 넓어지고 있다. 대학교육의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면서, 이제 대학 수요자 중심시대가 되고 있다. 결국 학생들의 요구와 시대변화에 맞는 학사과정,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학제개편과 산학협동을 통한 연구 확충은 대학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지난해 2월까지 영남대 총장을 역임한 김상근 교수는 "교육개방이 이루어지고 본격적인 자유경쟁체제에 돌입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대학은 더 이상 머무를 곳이 없으며, 과거에는 교육이 단순하게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들 사이의 일방적인 관계에 의해 형성됐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고객만족의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경쟁 개념의 도입과 수요자중심이라는 큰 축이 대학사회에 작용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대학재정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해 11월 펴낸 '대학교육 기본통계자료'에 따르면 정부 총 예산 1백조2천2백46억 원 중 교육예산은 20%인 20조 1백88억 원 이었다. 이중 대학교육 지원예산은 교육예산의 11%에 해당하는 2조2천1백 2억 원에 불과했다. 또 이 통계 자료에 따르면 교육대 산업대 방송대 각종학교를 제외한 고등교육법상 전국 1백 62개 대학 중 사립대가 1백36개교였다. 이 자료를 보면 그나마 적은 고등교육 예산이 상당부분 국립대 에 배정되는 가운데, 등록금에 의존하는 열악한 재정기반을 가진 사립대학이 한국대학을 이끌고 있는 형국임을 보여준다. KDI가 이런 대학재정을 감안 '비전 2011 프로젝트'에서 기여입학제를 제안하고, 재경부 장관이 이를 거들고 나선 것은 대학 수익사업, 세제혜택, 기금모금, 대학 내 기업유치 등 재정확충방안과 더불어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대학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또 대학재정을 적극 유치하고, 재정 효율성을 높이는 시스템마련이 시급하다. 방만한 행정조직에 대한 구조조정과 신속한 의사결정구조, 기업 수준에 버금가는 대학운영·재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이와 함께 이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대학경영자 상의 정립도 추진 과제이다. 한국의 대학은 이제 원하든 또는 원치 않든 경쟁력 강화라는 흐름에 몸이 얹혀져 있다. 이런 흐름에서 능동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할 것인지, 아니면 흐름에 역류할 것인 지는 전적으로 대학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분명한 것은 경쟁력 있는 대학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살아남는 대학이 많을수록 국가경쟁력은 제고될 것이라는 점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