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의 작은 서랍] 내가 선택한 나의 세상은
[이종희의 작은 서랍] 내가 선택한 나의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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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이 나이쯤 살다보면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내가 몰랐던 세상도 조금씩 엿보게 된다. 나는 특정 전문 직종에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새롭게 알게 되는 지식이나 정보에 혼자 감탄하며 즐거워하곤 한다. 그중 의사나 변호사는 일상에서 도움을 톡톡히 받는 직업군에 해당한다. 의사인 친구는 나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지인의 건강이 염려스러울 때 상담사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변호사 이웃은 작고 사소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억울하고 그렇다고 혼자 해결하지도 못하는 일에 대한 현명한 대처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참 고마운 일이다.

얼마 전엔 전직 회계사를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내게 진지하게 한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재정 이야기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양한 상담을 많이 받아온 그분은 금전과 관련해 아무 의도 없이 했던 말들이 날카로운 공격의 화살이 됐던 여러 일화를 소개해 주시며 나의 마음을 덜컹 내려앉게 했다. 가까운 사이에서 금전으로 인해 벌어지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그러나 엄연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들의 탐욕과 이기심에 새삼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그리고 신중함이란 인간의 악함이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변수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 외엔 아닐 것이며, 인간의 악의 변수를 고려하며 사람을 대한다는 건 참 외롭고 고달픈 일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된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내 안에서 세포 분열을 통해 낳은 생명체도 나와 생각이 다를 때가 많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엮인 배우자 또한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많으니, 망망대해 같은 이 세상에 비빌 언덕이 한 평이라도 될지 궁금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론적인 외로움 말고 사람을 만나고 대할 때 경계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야 한다는 건 다른 이야기다.

세상은 선과 악의 합체이며 한 인간의 내면에도 그 선과 악이 소용돌이치지만 세상을 보는 프레임에 따라 색과 온도와 형체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또한, 어떤 삶의 태도를 지닌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 한가운데일 수도 있고, 그림책 속과 같은 평화와 연대와 치유의 세상이 되기도 한다.

권력지향적인 사람은 자신에게 대적하는 대상에 대한 적개심에 휩싸이고, 부를 좇는 사람은 다른 이가 가진 부에 대한 질투로 잠들지 못하기 십상이다. 경쟁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사람은 불안하고 초조한 일상의 피로를 이야기하며, 위선으로 치장된 이는 자신의 초라하고 비굴한 내면을 감추려고 전전긍긍할 것이다. 외모의 가치에 기대는 이는 멈출 수 없는 노화가 두렵고 슬프며, 채워지지 않는 인색한 욕구에 휘둘리는 삶은 지치고 고달프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마음을 간직한 동시 작가에게 세상은 그래도 노래할 만한 가치가 있고, 정직한 신부님에게 세상은 평화와 용서의 대상이 된다. 다른 이의 아픔을 치유하고 싶은 심리 상담사를 통해 위로와 격려의 힘을 배우게 되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화가를 통해 신비로운 자연에 감사하게 된다. 사랑이 많은 초등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을 꿈꾸게 할 희망에 대해 들떠하며, 소박한 작은 책방 주인장은 향기롭고 기품 있는 삶을 깨우쳐준다. 열정적인 협동조합 활동가는 더불어 사는 삶의 감동을 전해주고, 공동체 마을을 일구며 땀 흘리는 농부는 스스로를 태우는 초와 같이 빛을 발한다.

이 모든 것은 같거나 다르다. 그리고 나의 프레임과 나의 경험에 의해 내가 속한 세상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어떤 세상에서 더 오래 머물고, 어떤 내면과 교류할지는 온전히 나의 선택의 몫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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