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수/교수학습센터장

작년 12월 말 개봉한 ‘1987’의 흥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올 3월 1일 기준 약 720만 명의 누적관람객수를 기록한 이 영화는 여러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것은 물론, 제9회 올해의 영화상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재미와 예술성을 모두 갖춘 ‘웰메이드’ 영화로 평가되고 있다. 제작 초기 6월 민주화 운동을 전면에 내세운 주제로 인해 투자에 난항을 겪었던 이 영화는 스스로의 작품성으로 그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모든 국민이 민주화의 열망으로 뜨거웠던 1987년의 6월을 떠올려보려 했으나 당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나에게 있어선 거리를 뒤덮은 최루탄의 매서운 냄새와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던 젊은이의 결연한 음성 외에는 달리 추억할 만한 소재가 없었다. 그 대신 영화 속 1987년의 대학 캠퍼스는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6년의 캠퍼스에 대한 향수를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이는 아마도 1987년도 대학 캠퍼스의 낭만이 9년의 세월이 지난 1996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2018년 오늘, 대학의 모습은 어떠한가? 1996년에 비해 톤 자체가 다르다. 대학이 기업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영화 '1987'의 주인공을 뚜렷하게 특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주요 인물을 굳이 꼽는다면 영화 중반부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대학생 연희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학 신입생인 연희(김태리 분)는 첫 미팅을 하러 나선 길에 시위대로 몰려 경찰에 쫓기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학교 선배인 이한열(강동원 분)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 후 우연히 학교 캠퍼스에서 '만화 사랑'이라는 동아리를 홍보 중이던 이한열과 다시 재회하게 되고, 동아리 가입을 권유받는다. 하지만 동아리의 목적이 만화보다는 학생운동을 위한 의식화에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이미 개인적 아픔을 갖고 있던 연희는 '힘없는 우리가 이런다고 세상이 바뀌겠냐'고 내뱉고 자리를 떠난다. 그러나 연희는 이후 심각한 내적 갈등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대학 시절 3년 정도 교내 신문사(당시엔 학보사) 활동에 매진한 적이 있다. 당시 많은 대학생이 그랬지만 나 역시 전공 선택에서 나의 적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못했다. 학과 공부에 별 취미를 못 붙이고 있던 차에 우연히 학보사 수습기자 모집광고를 보고 학교생활에 조금이나마 재미를 붙여볼 요량으로 시험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나의 삶 전체를 돌이켜볼 때, 가장 탁월했던 선택이 바로 학보사 활동이다. 그곳에서 나는 기사 작성법을 배웠고, 취재거리를 찾기 위해 특정한 사건을 낯설게 관찰하려 노력했다. 어디 그뿐인가, 단체 생활을 경험했고, 동기사랑이 나라사랑임을 깨달았으며, 비판 기사에 무작정 화부터 내는 교수의 항의전화에 담담히 대응하는 용기도 갖게 됐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배움은 사회가 지닌 문제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곧 예비 사회인이 아닌 온전한 한명의 시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했다는 경험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그 경험의 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교육학자이자 위대한 철학자인 존 듀이(John Dewey)는 평생에 걸쳐 실용주의 교육을 주장했다. 그는 학교를 학생이 미래의 책임과 삶의 성공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실재하는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교사와 함께 직접 해결해보는 교육적 경험을 하는 곳으로 봤다. 동시에 초·중등 교육부터 학생이 민주적 생활 태도를 함양할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대학 총장이라고 하면 으레 학자나 교육자가 아닌 기업의 CEO와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게 된다. 대학이 기업처럼 인식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의 기업화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대학이 기업처럼 운영되는 것이 마치 대학 운영의 모범적 형태인 것처럼 여겨지는 풍토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어디까지나 교육기관이며, 교육은 지식과 기술의 습득에 우선해, 인간의 품격을 기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예비 사회인을 교육하는 곳이 아니라 이미 온전한 한 명의 사회인을 교육의 수혜자로 받아들인 곳이다. 따라서 학교평가나 취업에는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대학생들의 사회적 활동 참여를 위한 모임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70%에 육박하는 대학 진학률이 부끄럽지 않은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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