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학교 연구기획팀장

다른 대학교와 교육과정을 공동 운영하는 것은 가능할까? 우선 관련 법령을 살펴보자. 고등교육법 제21조 1항에 ‘학교는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 다만, 국내대학 또는 외국대학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교육과정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고 본문과 단서조항 두 문장으로 돼 있고, 동법시행령 제13조에 좀 더 세부적으로 규정돼 있다. 그런데 단서 조항 내용 중에서 한 가지 표현이 약간 거슬린다. 그냥 ‘다른 대학교’라고 간단하게 표현하면 될 것을 굳이 ‘국내대학 또는 외국대학’이라고 했을까? 국경이 없는 달나라에 대학교가 세워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법 조문연혁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고등교육법 제21조1항은 1997년 이 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학교는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라는 본문만 있었다. 이후 1999년 개정을 통해 이 조항에 ‘다만, 외국의 대학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교육과정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는 단서 조항이 붙었다. 그리고 2011년에 지금과 같은 내용으로 개정됐는데, 정부가 공표한 개정이유는 ‘국내대학과 외국대학 간뿐만 아니라 국내대학 간에도 교육과정을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다시 정리하면 대학은 다른 대학교와 교육과정을 공동 운영할 수 있는 자율권이 없는데 처음에는 외국대학에 한해서, 다음에는 국내대학과도 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허용해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국내대학 또는 외국대학’이라는 표현에서는 통제적 관점을 바탕으로 작용하는 일련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필자의 관점은 다르다. 고등교육법 제21조1항의 본문 ‘학교는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는 표현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첫 번째는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권한이 대학에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대학이 교육과정을 운영할 때에는 학칙에 명시해서 하라는 것이다. 대학의 자율권에는 당연히 다른 대학교와 교육과정 공동운영에 대한 사항도 포함돼 있다. 다만 외국대학과 국내대학은 다른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별도로 언급을 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봐도 대학이 교육과정의 운영에 대한 포괄적인 자율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2011년에 ‘국내대학 또는 외국대학’이라는 표현으로 단서 조항이 개정됐다. 이것은 대학이 본래 가지고 있던 권한을 다시 부여하는 모양이 돼 결국 본문에서의 대학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됐다. 그래서 법 개정 이후에는 대학에 자율권이 무엇인지 누구도 확실히 말할 수 없게 됐다. 이것은 작은 섬을 주고 바다를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결과는 관점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관점은 문구가 아니라 맥락으로 파악된다. 교육과정 운영을 포함한 대학의 학문의 자유에 대한 관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 자유에 대해 법은 명쾌하게 대답해주지 않는다. 학문의 자유를 몇 줄로 기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국내대학 간 교육과정 공동운영 정도는 허락해 줄게’라는 방식의 자유는 부모가 어린아이를 대하는 관점이다. 대학은 미지의 세계,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야 할 사회적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이 마음껏 상상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고 법은 그 뒤를 따라 믿고 받쳐주려는 열린 관점이 필요하다. 

장자(莊子)는 우리의 좁은 생각에 호통을 친다. “땅은 정말로 넓고 큰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사람이 쓸모를 느끼는 것은 단지 자신의 발이 닿고 있는 부분뿐이다. 그렇다면 발이 닿는 부분만을 남겨두고 그 주변을 황천, 저 깊은 곳까지 파서 없앤다면 그래도 이 발이 닿고 있는 부분이 쓸모가 있겠는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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