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한국과학창의재단 책임연구원
한국영재교육학회 수석부회장

▲ 이정규 책임연구원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따르면, 지금의 정상 패러다임에 안주하는 것 자체가 패러다임의 적이라고 하면서, 정상 패러다임도 변화가 정점에 이르게 되면 '혁명'이라는 패러다임 간 투쟁을 겪게 된다고 했다.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는 유기체(사람이나 조직, 사회)는 이니셔티브를 장악하게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한 유기체는 도태되고 만다. 물론 '4차 산업혁명'도 'Industrial 4.0', 'Digital Transformation' 등의 다양한 용어로 불리고 있으나,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여기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중요한 사안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3차 산업혁명을 선도했던 국가가 그 성공을 기반으로 계속 선도해나갈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중간 과정을 생략한 채 새로운 지능정보화사회의 첨단 테크놀로지를 지닌 국가로 차고 나갈 것인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연기관을 선도적으로 발전시켜 100여 년이 된 기업이나 국가가 새로운 전기자동차, 자율형 주행자동차 분야에서도 계속 선도해나갈 것인지, 아니면 중국처럼 중간 발달과정은 생략됐지만, 바로 전기자동차, 자율형 주행자동차 분야에 뛰어들어 선도할 것인지 예측불가능하다. 이러한 사례는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초연결 인터넷 네트워크, 암호화 화폐, 블록체인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사례다. 이러한 사례분석을 통해 우리나라도 4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개척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교육' 경제 발전에 큰 역할 수행 = WEF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지속성장 가능성의 순위에서는 우리나라가 19위라고 했지만, 언제든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의 핵심국가로 성장할 잠재적 DNA를 갖춘 나라라고 생각한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오랜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등을 거치면서 1960년대 GNP 100달러로 해외 차관과 원조를 받았다가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국가가 돼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발전했다.

이러한 발전의 근간에는 교육이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녀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교육풍토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급격한 패러다임의 전환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회의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인간이며, 인간을 혁신하는 가장 빠른 길은 교육'임을 믿고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교육혁신'의 바람이 곳곳에서 불고 있다. 국회와 정부, 대학, 기업, 방송 및 언론매체를 포함한 다양한 포럼에서도 다뤄진 주제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의 의장인 슈밥이 “4차 산업혁명이 마치 쓰나미처럼 세차게 밀려오고 있다”는 선언이 계기가 됐다. 이후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으로 다양한 관점과 분야에서 논의가 이뤄졌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자세 = 다양한 교육혁신에 관한 논쟁들을 살펴보면, 다음의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근거로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혁신의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혁신역량으로 공통적으로 꼽히는 것이 창의력과 융합력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공지능과 로봇 등에 공존(또는 대응)해야 하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혁신역량은 세계경제포럼 등에서 밝힌 바와 같이 창의력과 융합력이다. 남과 다른 새롭고 적절한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창의력과 기존에 자신의 전문분야만을 파고드는 ‘I자형 인간’이 아닌, 전공분야뿐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분야와 맥락을 융합하는 ‘T자형 인간’인 '융합력'이 미래 교육에서 계발시켜야 할 ‘핵심역량’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창의력과 융합력의 이슈는 갑자기 거론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와서'인간에게 창의력과 융합력이 더욱 필요한 혁신역량으로 강조됨에 따라, 이를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계발시켜줄 것인가가 다시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1950년 미국심리학회 회장이 된 길퍼드는 “이제 하나의 정답만을 요구하는 시대는 갔다”고 하면서 앞으로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역설한 이후, 창의성 연구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때마침 1957년 구소련의 스푸트니크호로 인해 세계 최고라는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기면서, '교육기본법'을 바꾸는 계기가 됐고, 창의력 교육과 영재교육을 꽃피우는 도화선이 됐다. 1962년 노벨상을 수상한 왓슨과 크릭의 DNA 나선구조연구도 전혀 다른 과학 분야인 생물학과 물리학이 만나 서로 학문의 벽을 허물고 창의·융합적인 연구를 한 결과였다.

■시대에 걸맞은 교육환경 개선 시급 = 우리나라는 2011년도 창의적 인재발굴과 양성의 교육정책을 시작으로 창의적인 한국인 양성의 교육정책이 시작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할수록 우리에게 더욱 요구되는 혁신역량인 '창의융합력'을 잘 계발할 수 있는 교육제도, 학습과 평가 시스템, 대입전형제도의 변화, 초·중등 교육과정의 개선, 교원들의 교수학습법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나라 영재학교들의 입학전형과 교육과정에서 창의력과 융합력의 단계가 강화됐다는 점이다.

둘째, 지금과 같은 교육시스템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19세기에 설계된 교실에서, 20세기 교사에 의해, 21세기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는 얘기조차 있을까. 여전히 교실에서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요약정리해서 전달하는 강의식 수업을 잘 듣고, 잘 외운 후에 하나의 정답만을 찾아내는 시험을 치르는 학습평가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어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매우 우려스럽다. 하다못해 서울의 모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A+를 잘 받는 비법으로 교수의 농담마저 그대로 시험지에 답을 해야 한다는 웃기고도 슬픈 얘기가 우리 교육과 평가시스템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교수학습법, 정답 찾기 중심의 평가시스템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혁신역량을 계발할 수 있는 교실환경, 교수-학습방식 등의 대폭적인 개선이 시급하다. 이러한 교육의 대안으로 2013년부터 시작된 중학교의 '자유학기제'가 2018년부터 '자유학년제'로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의 혁신방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자유학기제란 자유교과 및 창의적 체험활동 등을 활용해 주제선택, 진로탐색, 예술․체육, 동아리 활동을 하는 교육이다. 수업도 실생활 연계 주제 수업, 협력‧소통 기반 문제해결학습, 교과 융합수업 등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 대비 미래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개발헤 학생들이 중심이 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다. 특히, 주제 중심의 교과 간 융합 수업은 여러 교과의 교사가 담당 교과의 핵심을 살리면서 다른 과목과 공통된 주제나 소재를 엮어 블록타임(block time), 코티칭(co-teaching) 등을 활용해 수업 중이다.

셋째, 지금과 같은 전통적인 학교와 교실은 붕괴되고, 새로운 교육시스템이 각광을 받고 널리 확산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 시절 백악관으로 초청돼 과학상을 받은 2명의 과학영재의 사례를 분석해보면 잘 알 수 있다. 14세의 최연소 그것도 정부연구기관이 아닌 민간인으로서 집 창고에서 핵융합에 성공한 테일러 윌슨, 왜 유명인들은 췌장암으로 죽으며 조기에 발견할 수 없을까에 관심을 갖고 독학해 한 방울의 피로 췌장암을 발견할 수 있는 검사를 개발한 잭 안드리카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들의 선생님은 대학이나 연구소가 아니라 인터넷이었다.

세계적으로 창의융합력 연구소의 대명사로 꼽히는 스탠퍼드대학의 D-school은 혁신적인 디자인 컨설턴트와 24시간 오픈 마인드를 갖춘 대학이 실리콘밸리라는 환경과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오늘날 전 세계 디자인 산업 및 교육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대학 셰파트 교수는 “30년 전에는 교실수업에서 전통적인 교재와 깔끔한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교육으로는 미래를 가르칠 수 없다”고 했다. 창의적인, 그리고 전공의 칸막이를 없애는 융합교육만이 미래를 준비하는 혁신교육의 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창의융합교육의 바람은 올린 공대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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