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학교 연구기획팀장

▲ 유신열 팀장

행정 분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일의 성격에 따라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외부에서 주어진 어떤 문제를 내부의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일을 ‘관리한다’는 의미고, 또 하나는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일은 조직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이것을 사분면 위에서 가로축 왼쪽에는 일의 관리를, 오른쪽에는 창조를, 세로축 위쪽에는 일의 긍정적 결과를, 아래쪽에는 부정적 결과를 그려볼 수 있다. 여기에서 사분면 왼쪽의 관리를 위한 행정시스템은 외부의 원인행위가 있으면 그에 따라 작동하고 그렇지 않으면 멈추는 수동적 시스템이고, 여기에 잘 적응돼 있는 제도가 관료제(bureaucracy)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관료제 안에 갇혀 있는 구성원은 관리 중심으로 일을 하려는 경향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고, 이러한 경향은 다시 조직의 관료화를 더욱 촉진하는 순환 고리를 만든다. 이렇게 고착된 시스템은 조직의 근본적인 목적을 지향하기보다는 비용관리와 절차적 권위를 앞세운 수단에 치중하게 된다. 물론 관리에 중점을 둔 행정의 결과가 조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왼쪽 위의 2사분면에 있기를 우리는 희망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3사분면의 절망적인 영역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이어령 교수는 서양문화를 미리 정해진 규격에 무언가를 넣는 시스템적인 사고를 바탕에 둔 ‘상자 문화’라고 정의하고, 관료제는 이러한 사고 바탕위에 있다고 봤다. 하지만 정보가 넘쳐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분명 이러한 시스템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조직의 한계가 있다고 하면서 자유자재로 변하는 융통성과 포용성을 상징하는 우리의 ‘보자기 문화’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보자기와 같은 특성을 지닌 애드호크라시(adhocracy)를 관료제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애드호크라시는 관료제처럼 대상을 분할해서 상자에 우겨넣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대상을 보자기처럼 감싸안고 그 형태에 따라서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특별임시조직이다. 관료제에서는 교육을 정해진 교육과정 상자에 넣어 대량생산하고, 연구를 연구비 비목별로 분해해서 비용관리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반면 애드호크라시는 교육과 연구의 본질적 목적에 맞춰 조직이 변화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대학은 스마트한 관료제 바탕 위에 애드호크라시를 접목해 1사분면의 창조 영역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비록 창조적 일의 결과가 조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4사분면에 위치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실험적인 도전은 조직의 미래를 위해 투자로 봐야 한다.

신영복 교수는 ‘여기저기 우연의 점들을 찍어나가다 그것이 서로 연결돼 선이 되고 인연이 되고 그 인연들이 모여 면(面)이 되고 장(場)이 된다’고 했다. 여기에서 장은 조직의 에너지 자원이 된다. 조직에서 구성원이 전체 속에서 하나의 점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기본적 임무라면, 점들을 연결해 조직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구성원의 선택적 임무다. 기본적 임무는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선택적 임무는 에너지를 창조하고 새로운 생각을 바탕으로 시스템의 모든 자원을 연결해 조직을 한 단계 혁신하는 멋진 일이다. 

개인이나 부서의 경계를 넘어 자신의 생각을 조직의 근본 목표에 맞추고 있으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얻게 되고, 선택적 임무를 하게끔 하는 능동적 힘이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나온다. 그 힘을 바탕으로 나 스스로가 점과 점을 이어 장을 만들어 나가고, 또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하나의 점이 돼준다면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는 상생 관계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행정에서 ‘일을 한다’는 것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실천할 수 있는 멋진 방법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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