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윤리·연구 환경 모두 개선 돼야 할 문제
과학계 가이드라인 내놨지만 연구자의 자성 필요

 

▲ 지난 12일 과기정통부와 교육부가 발표한 부실학회 참여 기관과 참여자 실태 통계표.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교육부 발표로 연구자들의 부실학회 참여 실태가 드러나면서 과학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에 연구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자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2일 열린 ‘과학기술인의 건강한 연구문화 정착을 위한 간담회’에서는 부실학회와 관련한 실태 조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과기정통부와 교육부가 238개 대학과 4대 과학기술원 및 26개 과기출연연을 대상으로 W학회와 O학회에 5년간 참가한 실태를 전수 조사했다. 이 두 학회는 최근 국내외에서 부실성이 높은 학회로 지목됐다. W학회는 언론을 통해 부실성이 보도됐고, O학회는 미국연방거래위원회가 허위정보로 연구자를 기만한 혐의로 기소해 2017년 11월 예비금지판결을 받은 곳이다.

전수조사 결과 최근 5년간 한 번이라도 W학회와 O학회에 참가한 기관은 조사대상 기관의 40%인 총 108개 기관이다. 참가한 연구자 수는 총 1317명, 그중 2회 이상 참가자는 180명이었다. 대학 83곳과 출연연 21곳, 과기원 4곳이 포함된 결과다.

정부가 부실학회 참여를 문제 삼은 배경은 고의적이거나 반복적인 부실학회 참가행위가 정부R&D 연구비 유용이나 논문 중복게재 등 연구부정에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의 모럴해저드가 근본적 원인…실적 강조하는 환경도 문제= 발표 이후 과학계는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연구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질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연구윤리 문제에 천착해온 황은성 서울시립대 교수(생명과학)는 이번 논란을 ‘연구자의 윤리’라고 못 박았다. 황 교수는 “환경의 문제를 탓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며 “일부 학자들이 악용하고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교수들이나 연구자들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자신 개인의 이득만을 취하려고 해 생겨난 결과”라고 주장했다.

다만 연구실적만을 강조하고 있는 국내 연구 환경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같은 날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회관에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연구윤리 대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엄창석 고려대 대학연구윤리협의회 회장은 “과거 순수한 학문적인 답을 찾는 과정이 연구였다면 시대가 바뀌어 사회적으로 활용되는 형태로 변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이광복 서울대 교수(전기공학부)는 “연구결과에 대한 평가를 질적평가가 아닌 양적평가로 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며 “연구자들이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한국연구재단이 발간한 부실학회 판단 가이드라인.(자료= 한국연구재단)

발등에 불 떨어진 과학계, 가이드라인 마련 나서= 한국연구재단은 ‘약탈적 학술지와 학회 예방 가이드’를 담은 내용과 공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캐나다 캘거리대학의 자료를 번역 및 요약해 작성된 가이드라인에는 약탈적 학술지와 학회에 대한 개요와 이를 피하는 방법 등을 담고 있다. 약탈적 학술지와 학회의 특징을 명시하고 연구자들이 이를 자가진단할 수 있도록 체크하는 항목도 실려있다.

한국연구재단은 이와 함께 건강한 연구문화 정착을 이한 추진과제 이행계획안을 발표하고 △부실학회 참가 정밀조사 및 예방 △연구윤리 이슈 대응체계 정비 △연구비 부정사용 원천차단 강화 등 3개 부문에 걸친 10대 추진과제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김해도 정책연구팀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연구 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연구계도 자성할 필요가 있다. 가이드라인은 시작 단계로 연구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리게 되면 스스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학술활동은 학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가이드라인 외에 정부가 참가 여부 등을 강제로 규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앞서 발표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이슈 브리프’에서도 해외 허위 학술출판의 문제와 대응방안이 정리돼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투고 학술지·학술회의 선택을 위한 가이드라인 제공 △신뢰할 만한 학술지·학술회의 통합목록 구축 △허위 학술 커뮤니케이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시스템 구축 △연구윤리 및 연구관리 규정의 재정비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과기정통부, 교육부 조사 결과 부실학회 실태가 드러나면서 과학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과기정통부, 교육부 조사 결과 부실학회 실태가 드러나면서 과학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연구자들의 인식 전환 필요…질적평가도 함께 이뤄져야”=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연구자들이 부실한 학회나 학술지 이용에 대한 위험성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들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유명무실한 규정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연구자들과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황은성 교수는 “지금 문제뿐만 아니라 교수 자녀 공저자 문제도 있었고, 그 동안 대학 당국에 스스로 조사해서 판단하라는 기회를 줬지만 기관들은 감추기에 급급했다”며 “학교의 총장이나 연구대표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자정하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해도 팀장은 “평가제도의 개선이 필요한데 국내는 질적 평가(주관적 평가)에 대한 신뢰가 없어 너무나 객관성만을 요구하다 보니 점차 정량화 돼 가는 경향이 있다”며 “질적 평가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의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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