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대담] 김기석 성공회대 총장 “생태적 감수성을 갖춘 미래 인재 키울 것”
[심층대담] 김기석 성공회대 총장 “생태적 감수성을 갖춘 미래 인재 키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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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리버럴 아츠 칼리지’로 인문학적 교양교육 강점

지도자 중요한 덕목 중 하나 ‘소통 역량’
4차 산업혁명 시대 맞아 실용적 진보 추구
자기주도전공설계 방식, 융복합 교육 강화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대학’ 비전 제시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성공회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성인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1914년 4월 30일 성미가엘신학원으로 개교해 1994년 성공회대로 교명을 변경했고, 짧은 종합대 역사에도 불구하고 진보 진영의 간판급 학자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고(故) 신영복 석좌교수를 비롯해 한홍구ㆍ정해구ㆍ이재정ㆍ조희연 모두 성공회대에 몸을 담고 있거나, 몸을 담았던 인사들이다.

그런데 최근 성공회대에 변화의 새로운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8월 1일 제8대 총장에 취임한 김기석 총장이 취임사에서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대응해 ‘실용적 진보’를 추구해야 한다”고 밝힌 것. 같은 달 성공회대는 올해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에서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되면서 학교를 한 번 더 업그레이드시킬 좋은 기회를 마련했다.

이 대학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최근까지 신학과 교수로 후학들을 양성했던 김 총장에게 대학의 발전 방향과 인재 양성 전략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성공회대는 진보학자들의 메카로 유명한데.

“성공회대는 진보적이고 사회참여적인 학자들이 많은 대학으로 유명하다. 이재정 초대총장(현 경기도교육감)이 비판적 지식인들을 교수로 다수 초빙했다. 우리 시대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고(故) 신영복 석좌교수, 진보 성향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이 모두 성공회대 교수들로 진보적인 시민사회 활동을 주도해왔다. 20여년 전 당시 한국 대학이 수용하지 못했던 비판적 지식인을 수용했다는 것은 이념적 균형성이 기울어진 학문사회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 실용적 진보에서 다뤄야 할 중요한 어젠다는 무엇인가.

“과거 20여 년 전 진보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민주 대 보수, 민주 대 독재, 인권 등에 대한 어젠다(agenda)를 중요시했지만 지금은 시대의 가치가 달라졌다. 이런 가치가 제도적 실현이 됐기 때문이다. 대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면서 사회현실과 시대정신이 달라지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용적 진보는 기후 변화, 환경 파괴, 생태계 위기 등의 담론을 다루는 게 중요해졌다.”

- 소통을 강조하시는데.

“소통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어떤 조직이든지 공동체를 이끌기 위해 갖춰야 할 첫 번째 자질이 소통 역량이라고 본다. 모든 업무의 프라이어리티(우선순위‧ priority) 넘버원(Number One)으로 삼고 있다. 취임 이후 가진 첫 번째 공식행사도 방호와 미화를 담당하는 계약근로자를 식사에 초대하는 일이었는데 낮은 곳에서 일하는 분들과의 소통에 방점을 뒀다.”

- 성공회대의 강점은 무엇인가.

“그동안 성공회대는 인문학적 교양교육을 열심히 추구해 왔다고 생각한다. 특히 취업률을 대학평가의 잣대로 삼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인문학적 교양교육을 강조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은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가 있는데 인문사회 교육을 강화하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성공회대와 유사한 대학의 모델을 찾는다면 리버럴 아츠 칼리지가 아닐까 싶다.”

- 자율개선대학 선정 이후 어떤 방향으로 특성화를 추진하나.

“대학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육개혁에 방점을 뒀다. 이번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에서 자율개선대학에 최종 선정되면서 대학에서 추구하는 융·복합 교육과정 운영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학부로 입학 후 자유롭게 전공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소규모로 분립된 학과를 4개의 융합학부로 통합한 것. 학생들이 융합학부 안에서 세부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공 개념으로 트랙을 제시했다. 주전공, 부전공, 복수전공 등으로 전공과목을 나눠 트랙별로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자기주도전공설계 방식으로 구성했다.”

- 최근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성공회대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는 공동체 교육의 현주소는 어떤가.

“우리가 정치적 편견 없이, 선입견 없이 임해야 하는 주제다. 1980년대 진보가 보수가 될 수 있고, 그 당시 보수가 진보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로 빗대 설명해 보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주연의 '그랜 토리노(Gran Torino , 2008)'란 영화에선 보수의 가치가 잘 그려져있다. 영화 속 현실은 미국 내 베트남 이주민들이 치안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악당들에게 핍박을 받지만 아무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주인공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들과 맞서는 과정에서 보여준 방식이 자기희생이다. 이는 개인의 도덕성을 갖고 문제를 영웅적으로 해결하려는 일종의 자유주의적 접근이다. 또 다른 영화로 좌파 감독인 켄 로치(Ken Loach)가 만든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 2016)'를 꼽을 수 있다. 목수로 평생 일하던 사람이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돼 의사의 진단을 받고 일을 쉬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사회복지센터에서는 여러 서류를 떼어오라고 하면서 실업급여 상태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복지정책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복지체계를 꼬집는 영화다. 앞서 언급한 영화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곧 맞닥뜨릴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아이들 교육 환경으로 돌아와서 얘기해보면 사회 제도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부유해졌지만 정신적 고통을 받는 아이들이 많아졌고 이들이 도움을 받을 곳이 많지 않다. 서로 협동하며 공동체적으로 사는 법을 잘 모른다. 학생들 사이에서 자유를 더 확대해야 하는지, 공동체 교육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하는지에 대한 발전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기성세대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 세대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데 비해 권리에는 굉장히 민감하다. 또 윤리교육을 하지 않아도 기성세대보다 도덕이나 인권감수성이 대단히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취약하다. 가령 여럿이 무엇을 해보라고 하면 잘 하지 못하거나 팀과제를 내면 정말 싫어한다. 팀과제를 잘 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들어올까봐 전전긍긍하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고등교육 개혁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정말 어려운 문제다. 고등교육 개혁은 대학 개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아무리 많이 시켜도 이른바 일류대 가기가 너무 힘들다.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경험을 토대로 얘기해 보겠다. 영국이나 미국 등 교육 선진국을 보면 중고등학교 시절 한국에서 공부를 시키는 수준의 절반만 시켜도 100대 대학 안에 드는 대학은 충분히 갈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대학을 바라보는 관점은 대학의 본질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대학의 이름(평판)을 좇는 데 맞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국민적 욕망과 바람들을 정부 교육정책에 담아내기에 힘든 구조다. 이는 대학교육이 바로 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신부 출신의 대학 총장은 학교를 운영하는 데 어떤 장단점이 있나.

“신부 훈련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하게 된다. 가령 희망과 절망의 순간에 다시 일어서는 태도, 겸손하고 희생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다짐하는 일 등등. 말하자면 일종의 ‘영성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습들에 대해 공동체 구성원들은 총장이 명예욕이나 물욕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느낀다. 총장 역할을 수행하는 데 플러스가 되는 요소다. 반면 신학전공자로서 급변하는 시대에서 대학의 생존전략을 짜는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를 고려해 부총장 제도 등을 통해 경영이나 대학평가 준비, 조직 관리 등을 보완해 나가고 있다.”

- 신부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원래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이 가슴을 설레게 했던 때가 있었다. 처음에 대학 기계과에 진학을 했는데 주변에 마땅한 조언자가 없었다. 막상 학교에 들어가니 기계공학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 차라리 순수과학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순수과학과 종교는 통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낸 <신학자의 과학산책>이란 책에서 신학과 과학의 경계를 탐구하는 시도를 많이 했다. 과학정신과 기독교정신은 영역이 다르지만 진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 성공회대가 추구하는 인재상은.

“대학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가치에서 보면 평화, 인권, 생태, 사회적 경제, IT 분야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을 다하겠다. 특히 학생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IT 역량을 평화,인권,생태 사회적ㆍ경제적 가치와 결합해 융복합적 학문소양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해나가겠다.”

- 성공회대가 어떤 대학으로 발전하길 바라는가.

“‘작지만 아주 강한 대학’ ‘한국사회에 반드시 있어야 할 대학’ ‘자기 미래를 찾아가는 대학’이 됐으면 한다. 특히 남북 관계가 새로운 평화 국면을 맞게 되면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대학이 되길 바란다. 더 나아가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환경의 위기를 초래한 상황에서 생태적 감수성을 갖춘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우리 대학이 앞장서겠다.”

이인원 본지 회장(오른쪽)이 김기석 총장과 대담을 하고 있다.

■ 김기석 총장은…

성공회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1990년 대한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2004년 성공회대 교수에 임용됐다. 신학과장, 신학대학원장, 교목실장, 연구대외협력처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올 8월 성공회대 제 8대 총장에 취임했다.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협의회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대담 = 이인원 본지 회장 / 사진 = 한명섭 부국장 겸 사진부장 / 정리 = 김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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