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의 작은 서랍] 가족 그리고 영화
[이종희의 작은 서랍] 가족 그리고 영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종희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 이종희 교수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는 가족이라는 일상적 테마를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이나 삶과 죽음에 대한 날카롭고 깊이 있는 통찰력을 보여주는 감독이다. 화려한 서사와 등장인물 간의 첨예한 갈등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 영화 관객에게는 그의 영화가 다소 헐겁고 밋밋한 무채색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거장 감독이며, 한국에도 두꺼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걸어도 걸어도’는 진심을 보여주기 어려워하는 가족 간의 어긋남과 그로 인한 상처들이 묘사돼 나타난다. 그러나 영화를 끌고 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부모의 애잔한 사랑이다. 가업을 이을 것으로 기대했던 큰아들을 사고로 잃은 부모의 분노와 슬픔은 그 표현과 극복 방법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상처를 안고 생을 견뎌온 그들의 아픔의 크기만은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기대에 못 미치는 둘째 아들 내외가 형의 제사를 위해 고향에 내려오고,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히 음식 장만을 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1박 2일의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 장면에서 끝나는데 아들 내외가 탄 버스가 사라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부모는 이렇게 읊조린다. ‘다음엔 설이나 돼야 볼 수 있겠지.’ 그리고 버스 안에서 아들은 마음고생한 아내를 이렇게 위로한다. ‘다음 설에는 오지 않아도 되겠지.’

2016년도 작품인 ‘태풍이 지나가고’도 태풍이 몰아치는 짧은 1박 2일의 기간을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에서도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의 사랑이 과장되지 않게 담담히 그려진다. 도박을 일삼고 가정적이지 않던 남편을 견디고 살아온 어머니는 이혼당한 아들과 손주, 그리고 아들의 전처와 태풍이 부는 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각기 기대하던 것이 달랐던 이들이 삶에 대한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 현실의 자리를 찾는 과정이 그려진다. 떠나간 아내에게 미련을 갖고, 소설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못하며 무능하게 살아가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이런 말을 건넨다.

“잃어버린 것을 좇고, 이룰 수 없는 꿈을 좇고, 그렇게 살면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이란 건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거야.”

한국 배우 배두나가 인형으로 출연해 한국에서도 꽤 화제가 됐던 ‘공기인형’은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겐 꽤 낯설게 느껴진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인형처럼 텅 빈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간과 인간의 마음을 갖게 된 인형을 대비시킨다. 배두나가 열연한 ‘노조미’는 어느 날 사람의 마음을 가지게 되고 세상을 느끼고 배워나간다. 그녀는 세상을 향해 ‘나이가 든다는 건 무엇이며, 생명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그리고 영화는 대답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죽음에 다가가는 거라고, 그래서 끝내 생명을 잃는 거라고….’ 그리고 타인과 관계 맺지 못하는 외롭고 나약한 인간들에게 요시노 히로시의 아름다운 시를 선사한다.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듯하다. 꽃도 암술과 수술이 갖춰져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곤충이나 바람이 찾아와 암술과 수술을 중매한다. 생명은 그 안에 결핍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다른 존재로부터 채워 받는다. 그러나 서로가 결핍을 채운다고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 하지도 않고 그냥 흩어져있는 것들끼리 무관심하게 있을 수 있는 관계…. 나도 어느 때 누군가를 위한 곤충이었겠지. 당신도 어느 때 나를 위한 바람이었겠지.’

추석과 개천절 등 휴일이 지났다. 어떤 이는 혼자 지내 외로웠을 것이며, 어떤 이는 가족과 함께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삶에 정답은 없다. 나의 연휴는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었는지 곰곰이 되새겨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