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의 작은 서랍] ‘저물어가는 것’에 대해
[이종희의 작은 서랍] ‘저물어가는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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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이종희 교수
이종희 교수

A 할머니는 어릴 적 동네에서 명석하기로 유명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시절, 집안의 도움 없이 악착같이 공부해 명문여고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인텔리 할머니다. 우아하고 지적인 여류 문인을 꿈꾸며 작가 지망생다운 품위를 잃지 않고 지조 있게 살아왔다. 팔순이 돼서야 인생을 회고하는 책을 하나 출판하고는 덜컥 ‘인지장애’ 증상에 시달리게 된다. 컴퓨터도 능숙하게 다루고 스마트폰의 캡처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던 할머니가 이제는 자식들에게 전화 거는 방법조차 잊고 말았다. 주변의 돌봄 없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 할머니는 날짜 확인을 누누이 하는 가족에게 그래도 가끔 이렇게 역정을 낸다. “내가 바보인 줄 알아?”

B 할머니는 기골이 장대하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감이라는 말을 곧잘 들은 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타고난 체력에 텃밭 매고, 나물 뜯고,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해도 끄떡없었다. 오죽하면 아이 낳고 몸조리라는 걸 모르며 두려울 게 없이 살아온 할머니가 이제 ‘폐기능 장애’로 감기를 가장 무서워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더구나 고관절 손상으로 지팡이에 온몸을 의지하는 신세가 되니, 일어나고 앉는 것부터 일상의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불안한 자식들은 옷차림이나 화장실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참견하게 되고, 그럴 때 할머니는 크게 역정을 내고 만다. ‘사람 좀 그만 무시하라고!’

한때 ‘인자하고 삶의 경험이 풍부한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이 소박하고 겸손한 꿈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그 꿈이 얼마나 소중하며 실현되기 어려운 꿈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위의 두 할머니는 조금 차이는 있더라도 나이 들어가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며 또 언젠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연륜과 삶의 지혜를 지닌 큰 어른으로 존경받는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가 돌보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의 개념이 더 일반적이다. 그리고 돌봄은 종종 무시와 학대로까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위의 두 할머니의 역정은 ‘늙어가는, 혹은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절박한 외침’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실로 아무런 준비 없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게 됐고, 혼란과 갈등 속에서 허둥대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생활하기 힘든 노인이라도 사회적 지원의 높은 문턱을 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힘들게 요양보호 서비스 등급 판정을 받고 시설을 가보아도 흡족할 만한 시설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직접 모시는 건 각기 가족 구성원의 동의와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러니 노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세대는 고단하기 짝이 없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가 있을 것이며, 부모님과 자식들 사이에 끼어서 하루하루 쫓기듯 시간은 간다. 점점 돌봄과 존중의 경계선 따윈 안중에 없고 그저 노부모 스스로 조금이라도 더 버텨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렇듯 내외적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존엄성은 그들의 희망과 함께 서서히 침식돼 가는지 모르겠다.

가을이 저물어간다. 가을과 함께 저물어가는 것들이 유독 눈에 많이 들어온다. 생은 유한하며 그래서 본질적으로 비극이다. 비극 안에 희극적 요소가 내포되지 않는다면 주어진 생을 견뎌내기란 쉽지 않다. 희극적 요소로서 따뜻한 존중이 전제된 사랑 외에 대체 가능한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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