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단] 慈母有敗子(자모유패자) 자애로운 어머니에게 못된 자식이 있다.
[수요논단] 慈母有敗子(자모유패자) 자애로운 어머니에게 못된 자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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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경 경남정보대학교 교수
최성경 교수
최성경 교수

고교 졸업자의 숫자가 해마다 줄어들면서 대학들은 정원 채우기에 급급하고,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대학입장에서 애지중지 금값이다. 또한 해마다 전년도보다 수학능력이 떨어지고, 버릇없는 학생들이 입학한다고 강의실에서는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수학능력이 떨어져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린 학생들은 모래알처럼 스르르 대학을 빠져 나가는 현상으로 탈락률은 증가하고, 이를 붙잡고자 교수들은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좋은 게 좋다는 식의 학생지도가 팽배한 것도 현실이다. 이러니 군사부일체라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이제는 교수의 존재조차 학생들 뇌리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단지 강의하고 성적 주는 움직이는 지능인간 정도로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학생들과 교수의 관계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제관계에서 등록금과 성적을 주고받는 이해관계로 변한 지 오래이며, 교수들이 면담을 한다지만 마음을 털어놓는 학생들은 극소수다. 아니 교수들의 면담목적도 학생의 진로나 적성개발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주목적은 이 학생이 중도탈락 위험군인가 아니면 학업을 계속할 학생인가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는가? 이런 상황하에서 학생들의 잘못이나, 올바른 학업을 위해 따끔한 지적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어쩜 나아가 학생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지는 않는가?

예부터 매를 아끼면 자식을 버린다고 했거늘 하물며 이제는 매는 고사하고 따끔한 고언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리하여 중도탈락자 관리를 위해 각 대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타 대학을 벤치마킹하면서 대학운영에 도움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과연 교육과 학생지도에 좋은 게 좋다는 식만이 능사인가? 우리는 너무 학생들 개인을 사랑하기보다 대학운영에 도움이 되는 하나의 수입원으로 보고 있지는 않는가?

마냥 잘 대해준다고 탈락할 학생이 탈락을 안 하고, 엄하게 대한다고 탈락하지 않을 학생이 탈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감정을 교감하는 동물이기에 자신에 대한 혹독한 질책도 조금은 더디지만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이 자기를 위한 것임도 알게 된다. 축구 경기에서 지나친 수비는 비기거나 지는 게임이다. 공격과 수비의 적절한 조화가 이길 확률을 더해준다. 강의실에서나 학생지도에서 강의평가나 탈락률을 의식해서 지나치게 수세적인 자세로 학생들을 대했다면 이제는 좀 고쳐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강의를 열정적으로 하면서 학생들을 과제나 이런 걸로 힘들게 해도 결코 강의평가가 나쁘게 나오지 않는다. 학생들도 교수의 이런 행동들이 그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이와 같이 학생지도에서도 시간을 투입해서 관계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진정한 지도를 위한 고언과 질책이 행해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내 잘못을 비난하고 지적하는 사람이 진정한 나의 스승임을 알 것이다.

자유분방함이 오늘날 젊은이들의 트렌드이지만, 교육현장에서만큼은 질서와 정돈된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도 어려운 일을 학교가 할 수 있을까 하겠지만 분위기는 만들기 나름이다. 그것도 초창기에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때 그렇게 해야 한다. 조금은 규율이 있는 강의실, 좀 더 아우라 있는 교수자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위기가 잡히면 어영부영하는 학생들도 따라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더욱 상승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쑥도 삼밭에서 자라면 똑바로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하기 위해선 먼저 교수자들이 바로서야 한다. 귀에서 입까지의 거리는 불과 네 치밖에 되지 않는다. 귀로 듣고 곧 입으로 내는 그런 천박한 학식으로 어찌 일곱 자의 몸을 가눌 수 있겠는가? 이런 얄팍한 학문을 구이사촌(口耳四寸)의 학문이라고 한다. 얄팍한 지식을 가르치는 이런 모습이 아니라 무언가 솔선하고 언행일치로 모범이 되는 무게 있는 모습의 큰 어른으로 학생들 앞에 서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오래 기억할 교수는 위엄 있지만 인간적인 교수가 아닐까? 학생들의 기호에 맞추는 것도 좋지만 자신만의 색이 있는 교수로 학생들에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강의실에 들어선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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