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성 인천대 총장

조동성 인천대 총장
조동성 인천대 총장

대학은 교양을 갖춘 선진사회 시민을 양성해야 하는가,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직업인을 양성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교수나 대학 방향을 설정하는 총장들에게 장기적 과제다. 대학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형, 대학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에게는 시급한 과제다.

지난 11월 21일 ‘변화의 시대, 교양교육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주최한 국제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에는 대학교육을 책임지는 국내외 대학 총장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다뤄진 내용을 가지고 대학 발전모델을 만들어보았다. 지난 반세기에 일어난 대학 변화를 세 단계로 나누어 대학 1.0, 2.0, 3.0이라 부르고, 단계별로 대학의 주체, 환경, 자원, 그리고 메커니즘을 살펴보자.

대학1.0은 우리가 잘 아는 전통적인 대학이다. 대학 주체인 교수가 교실에서 강의를 하면 학생들은 열심히 받아 적는다. 신 같은 교수의 권위에 도전하는 학생은 없다. 대학 환경도 중요하다. 생산자가 왕인 시대에서는 지식 공급자인 교수가 대학 주도권을 잡는다. 대학 자원은 책이 쌓여있는 도서관이다. 대학 메커니즘 면에서 교수들은 지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교육은 수직적으로 진행된다.

대학2.0은 미국에서 1950년대, 한국에서 1970년대 말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모델이다. 대학에서 새로운 주체로 등장한 학생들이 팀을 짜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교실에서는 프로젝트 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한다. 이 변화는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대학 환경이 바뀌면서 일어난 결과다. 활용되지 않는 책을 쌓아놓은 도서관은 더 이상 대학 자원이 아니다. MIT 미디어랩(Media Lab)처럼 사회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는 연구소, 스탠퍼드 대학(Stanford University) 디스쿨(d.school)처럼 생각을 디자인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진정한 대학 자원이다. 교육 메커니즘도 바뀌었다. 교수로부터 학생으로의 수직적 지식 전수가 사라지고, 학생들이 서로 배우는 과정에서 수평적 배움이 진행된다.

대학3.0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서 복습하는 대신, 집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복습하는 ‘거꾸로 교육(Flipped learning)’ 방법이 등장했다. 거꾸로 교육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려면 학생들이 집에서 온라인으로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수요를 반영해서 MOOC라고 쓰여지는 ‘온라인공개수업(Massive Open Online Course)’이 2009년에 등장했다. 학생은 확실한 주체가 됐다. 대학이 강의실로 학생을 끌어 모으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을 연결해서 소비자인 학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자원인 온라인 강의 콘텐츠가 기하급수적으로 집적되고 있고, 이를 활용해 원격화상강의를 비롯한 사이버 교육 메커니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오늘날 대학들은 세 가지 모델을 동시에 사용한다. 아직 대학1.0 방식 강의가 많지만 대학2.0과 대학3.0 방식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 새로운 변화가 대학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은 대학은 인공지능(AI)에서 시작해서,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BD), 가상현실(VR), 블록체인(BC)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미래를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연구와 교육 틀을 바꾸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능력을 가르치는 미래지향적 대학4.0은 현재 일자리 중 50%가 10년 안에 없어지고 그만큼 새로운 직업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에 맞춰 학생들이 새로운 능력을 갖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대학4.0이 다루어야 하는 주제는 크고 경직적인 대학보다 기업이나 작은 연구소에서 더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미 대학(University)이라는 단어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에 만들어진 창업자 양성기관인 싱귤래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은 정규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이 아니다. 학위(degree)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나노디그리(nanodegree)는 유다시티(Udacity)라는 사기업이 만든 학위 이름이다. 해외에서 대학과 학위는 더 이상 정부가 인증하는 법적 용어가 아니다. 학생이 공부하는 장소가 곧 대학이고, 공부한 성과에 대한 증명서가 곧 학위다.

한국도 바뀌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면서 기업도 신입사원 자소서에 대학 이름 쓰는 칸을 없애고 지원하고자 하는 직무와 관련된 강의 이름 쓰는 칸을 추가했다. 대학에서 기업이 원하는 강의를 수강하지 못한 취준생들은 학원을 다니거나 사교육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는 등 학교 밖에서 자소서 빈칸을 채우기 위한 공부를 다시 한다.

이렇듯 미래 대학4.0에서는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기업 경영자와 전문가들이 새로운 교육 주체로 등장해서 학생들과 직접 소통한다. 교육 환경 역시 대학 경계선을 벗어나 기업과 연구소로 확장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교육 자원이다. AI, IoT, BD, VR, BC 등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 생소한 용어들이 튀어나오는 시대에, 학문의 반감기는 기존 이론의 가치가 반으로 줄어드는 데 필요한 시간이 아니라 진부화된 기존 이론의 반을 현장에서 제거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됐다. 교육 메커니즘 역시 대학과 현장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위에서 일어난다.

만일 대학이 4차 산업혁명에 올인하면 10년 후 어떻게 될 것인가? 모든 유행어가 그렇듯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행어도 10년 안에는 사라진다. 4차산업혁명 이후에도 대학은 살아남아야 한다. 그 후를 준비하는 대학을 대학5.0으로 부르고 그 특징을 찾아보자.

첫째,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인간상, 윤리적 행동과 미래에 대한 예측 능력에 영향을 주는 새로운 대학 주체가 된다. 둘째, 환경 면에서 대학은 사회의 중심, 대화의 광장으로 자리 잡는다. 셋째, 자원 면에서 지식을 전수하는 데 효과적인 서적보다 지혜를 담고 있는 고전이 강조된다. 넷째, 메커니즘 면에서 2500여 년 전 소크라테스, 공자가 문답식 대화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지혜를 터득하게 해주었듯이, 대학5.0에서 학생들은 인류 유산인 고전을 읽는 가운데 살아가는 이유와 공부하는 즐거움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대학이 인류역사에 나타난 11세기보다 훨씬 전인 2500년 전 성현들이 가르침을 주던 아크로폴리스나 서당을 대학0.0이라고 부른다면 미래 대학 5.0은 시간을 뛰어넘은, 그러나 환경 조건이 체계화되고 고전이란 자원이 추가된 현대판 대학0.0이라고 부를 수 있다.

대학4.0과 대학5.0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대체관계가 아니라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춰야 하는 보완관계다. 기존 대학이 미래에도 생존하려면 대학4.0과 대학5.0을 동시에 이루어내야 한다. 서울대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단 두 개밖에 없는 법인국립대학인 인천대학교는 대학4.0+5.0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기존 64개 학과를 X축에 놓고, 나노디그리와 같이 기업에서 설계하는 과정을 Y축에 놓아서 학생들로 하여금 기초학문과 새로운 지식을 동시에 섭취하도록 하는 매트릭스 칼리지를 도입했다. 또한 서양고전 100권, 동양고전 100권, 한국고전 100권 중 자신이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고 지혜를 함양하면서 이에 해당하는 학점을 취득하는 제도를 시작했다. 대학사회는 인천대의 새로운 시도를 참고하면서 각 대학의 상황에 맞는 모델을 찾기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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