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대량해고에 교육부는 방기”, 학생 “학습권 침해”
매뉴얼에 방학 중 임금ㆍ채용 쿼터제ㆍ3분의 1 채용 등 논의
대학 “마른 수건 짜는 형국”…정부가 해법 내놔야

[한국대학신문 이하은 기자] 3월 개강을 일주일 앞둔 대학가. 전국 곳곳에서 시간강사 대량 해고가 시작됐다. 수백여 개의 개설 과목을 줄이고, 시간강사를 겸임·초빙교원으로 대체하는 등 대학들은 ‘강사 구조조정’에 나섰다. 최근 일부 강사와 1~3년 계약을 체결해, 8월 시행되는 강사법을 피하려는 ‘꼼수’까지 나타났다. 일할 곳을 잃은 강사와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는 대학, 학습권을 침해받은 대학생들 사이의 갈등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이에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교육부가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강의 축소ㆍ전임교수 대체ㆍ편법채용…법과 다른 현실= 대학들은 전방위적으로 시간강사 축소에 나섰다. 강의 수를 줄이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각 대학의 구조조정 저지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고려대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1학기 개설과목 중 전공과목 74개, 교양과목 161개를 없앴다. 연세대는 교양 과목을 약 60% 축소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중앙대 역시 지난해 대비 서울캠퍼스 교양 과목은 61개가 줄었고, 안성캠퍼스는 전공과목이 746개나 사라졌다. 강사 수도 264명이 감소했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전국적으로 대동소이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구대는 1월 초 시간강사 400여 명 대부분에게 강의를 배정하지 않기로 해 갈등을 빚었다. 이에 대구대는 개선안을 마련키로 하면서 강사와 협의체를 구성해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학생들은 “강의 선택권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으며, 학습권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며 “졸업을 미루거나 다음 학년으로 진급을 못 할 위기를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시간강사를 겸임·초빙교원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등장했다. 숙명여대는 1학기부터 시간강사들을 ‘초빙대우교수’로 전환하는 의사를 묻고 있다. 이화여대도 전임교원의 강의를 연구실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성균관대의 경우 시간강사를 ‘겸임교수’로 바꿔 계약하면서 타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활동했던 경력으로 이를 대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성균관대의 한 시간강사는 “다른 대학에서 시간강사로서 강의를 맡고 있다는 강의경력증명서만으로 ‘겸임교수’로 이름을 올리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학들은 해당 의도를 부정했다. 성균관대는 “몇 년 전 이야기”라고 선을 그으며 “2018년 이후 자격 요건을 강화해 채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고려대는 “강의 수가 200개 이상 줄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사법 관련한 논의는 중단한 상태”라고 답했다. 이 외의 대학들도 “3월 중순이 돼야 1학기 개설 과목에 대한 분반 및 세부조정이 이뤄진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3월 중순 이후 개설과목이 확정된다면, 대학 내 갈등이 더욱 격화할 소지가 있다고 교육계는 전망하고 있다. 

■ 운영 매뉴얼 위한 TF운영 중…무슨 내용이 오갔나= 교육부는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사제도 운영 매뉴얼’을 만들어 3~4월 배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와 대학ㆍ강사ㆍ대학원생 대표가 TF를 꾸려 논의 중이다. 그러나 운영 매뉴얼에 따라 각 대학의 시간강사 채용 규모가 결정될 수 있기에 강사와 대학 측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본지가 TF에 참여한 복수의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최근 가장 큰 논란이 됐던 사안은 시간강사를 3분의 1씩 1‧2‧3년 계약하는 방식이다. 교원의 지위를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강사법은 ‘8월 1일 이후 신규 임용되는 강사부터 적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이번 학기에 1~3년 단위로 계약한 강사들은 8월 시행되는 강사법 대상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제안한 대학 대표는 “지금도 강사 대량해고가 나타나는 마당에 8월 1일 법이 시행돼, 모든 강사를 한 번에 전환해야 한다면 현장에는 일대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3년을 목표로 3분의 1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매년 해거리를 겪을 수밖에 없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강사들이 점진적으로 안배되도록 개선해야 한다”며 “물론 신분보장 등 강사법을 적용받는 강사들과는 동등한 처우를 받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방안을 다른 대학들에 권장하는 방식으로 알렸다고 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은 이미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강사 측은 즉시 반발했다. 강태경 전국대학원생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법 시행을 막는 처사이기 때문에 강사법의 원칙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며 “강사법은 이미 10년에 거쳐 4번이나 유예됐다. 대학은 그만큼의 시간을 번 셈이다. 지금에 와서 또 미루겠다는 태도는 모두가 합의해 만든 안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상룡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한교조) 정책위원장은 “대학이 이렇게 나온다면 강사법 안착을 위해 정부차원에서 나서야 한다고 본다. 교육부는 관리‧감독의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법이 만들어졌다면, 성공적으로 시행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교육부는 이와 관련해 법률 자문을 요청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앞서 교육부는 강사법의 후속조치로 1월 31일 시간강사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다. 그러나 방학 중 임금 기준 및 퇴직금, 전임교수의 시수제한 등이 담기지 않아, 강사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는 데 역부족이란 평이다. 이에 매뉴얼에라도 임용 및 심사절차 해설, 표준계약서 작성, 면직 사유 등을 담아 정부 안으로 확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임순광 한교조 위원장은 “전임 교원의 책임시수 상한제가 담기지 않아 우려한 상황이 벌어졌다. 의견수렴 기간에 시행령을 변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겸임·초빙교원을 양산하지 않으려면, 그들이 강사보다 나은 대우를 받도록 계약조건이나 처우 등을 보장해야 한다. 이 한 문장만 넣으면 해결될 일이다. 또한, 정부의 책무성을 높여 시행령에 관련 예산을 정부가 확보한다고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진균 강사제도 개선과 대학연구 교육공공성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대변인은 “강사의 처우를 명확히 규정하는 게 목표”라며 “매뉴얼을 촘촘히 만들어 대학이 회피할 방도를 차단해야 한다. 방학 중 임금 역시 시행령에 들어가지 못한 사안까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태경 수석부위원장은 “강사 임용 심사과정에서 신규 진입자에 대한 채용 쿼터를 둘 필요가 있다”며 “4~5년 새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할 시기가 온다. 자연적으로 은퇴할 강사 수를 조사해 채용 구조에 대한 자료를 만든다면 쿼터 비율을 대략 계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대책위원회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출범 및 강사구조조정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공동대책위원회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출범 및 강사구조조정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 대학이 전부 재정 감당해야?…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교육부는 올해 강사법 관련 예산에 288억원을 반영했다. 그러나 이는 애초에 추산한 3000억원에 한참 모자라는 액수다. 

대학들은 재정적 압박을 호소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학이 쌓아놓은 수조원의 적립금을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에 대해 황홍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사무총장은 “적립금은 건축ㆍ연구ㆍ장학 적립금 등 목적을 정해서 적립하도록 사립학교 법이 규정하고 있다. 이들 출처의 상당 부분이 기부금으로 조성되는데, 기부자의 기부 목적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8500억원에 달하는 대학혁신지원사업액에 대해서도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의 사업을 유지‧계승하도록 돼 있다. 대학의 혁신 목표를 설정하고, 이 목표에 따른 비용을 써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기본적으로 지원사업액은 운영비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학의 재정압박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혼란이 가중되자 교육부가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2011년 법안이 통과됐을 때부터 ‘예고된 혼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사태를 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또한 관련 예산 확보를 위해서 기재부의 협조가 필수인 만큼 범정부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학술단체들은 19일 일제히 성명을 내고 정부와 교육당국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경제학회는 “대학들은 급격한 학생 수 감소에다 수년간 등록금 동결로 마른 수건을 짜는 형국이다. 대다수 지방대학은 통째로 벼랑 끝에 서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강사법을 강요하며, 대학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은 현장에 너무 무지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문재인정부의 대학 강사에 대한 정책은 정부의 교육적 책임성과 인간성을 묻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며 “그동안 희생해 온 강사의 처우 개선과 고등교육 퇴보의 방지를 위해서 획기적 재정 지원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비판사회학회는 “교육부는 교육환경 개선지표에 비정규교수 임용 책임성과 강사료 항목을 대폭 반영해 대학평가의 핵심 지표로 활용해야 한다. 대학평가는 대학의 행위를 조정할 수 있는 교육부의 가장 강력한 권한이므로 대학들의 반교육적인 악성 조치들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강사처우개선을 위한 2000억원의 ‘추경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며 “강사처우 개선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부합하는 조치로, 소홀히 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진균 대변인은 “정부는 관성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강사법은 관성의 중요한 부분을 건드리면서 옳은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개혁의 시도는 좌절될 수밖에 없다”며 “공공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위기의식을 갖고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등 해결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홍규 사무총장은 보다 근본적인 해법으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내놨다. 대학이 재정 문제로 강사법 시행의 여력이 없으니, 시행 동력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황 사무총장은 “그동안 교부금법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졌고, 대학의 책무성을 소홀히 하면 지원을 중단하는 근거도 마련돼 있다. 여기에 대학 운영에 대한 평가기준을 마련해 책무성을 담보한다면 근본적인 해법이 되리라 본다”며 “정부와 국회까지 포함해 강사법을 법률로 강제한 만큼 부담을 함께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