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리학자 윤병국 교수와 함께하는 세계여행 ③ 중국, 신실크로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문명의 혈맥  ‘실크로드’
[관광지리학자 윤병국 교수와 함께하는 세계여행 ③ 중국, 신실크로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문명의 혈맥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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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사이버대 관광레저항공경영학과 교수
둔황의 막고굴.
둔황의 막고굴.

실크로드의 기원 

길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부족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민족과의 투쟁으로 새로운 삶의 공간을 찾기 위해 필연적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길은 험난한 지형과 기후적 조건을 극복해야 했고 서로 다른 이질적 문화와 상호작용에 의해 문화접변(Acculturation)이 발생해 새로운 단계로 진화한다. 그 과정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모험의 여정이었다. 모험이란 흥미롭고(Exiting), 특별하며(Unusual), 때로는 위험한(Dangerous) 경험이고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원거리(오지)의 신비하고 독특한 자연환경을 찾는 여행이다. 그 여행기간은 장기간(Journey)일 수밖에 없다. 실크로드가 딱 그러한 곳이다.

고대 유라시아 대륙에는 동서양을 연결해주는 통로가 있었고 역사 속에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2~3세기경 중국의 서안과 이탈리아 로마를 잇는 교역 길이었다. 이 길을 통해 엄청난 사람과 재화가 오가곤 했었다. 독일의 지리학자이며 탐험가인 리히트호펜(Richthofen, 1833~1905)은 자신의 저서 《China》에서 중국의 비단이 중앙아시아와 서북 인도에 수출되는 경로를 ‘자이덴 슈트라세’〔Sei- den(비단) Strasse(길), 실크로드(Silk Road)라 명명하면서 ‘비단길’이 됐다. 이어서 스웨덴의 스벤헤딘과 영국의 오렐 스타인이 자신들의 탐험기에서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실크로드란 말은 하나의 고유명사로 굳혀지게 된 것이다.

실크로드의 역할과 상징성

이후 이 길은 비단뿐만 아니라 중국의 화약과 차, 도자기, 제지술이 서양으로 갔고 각종 향료가 아시아로 전해지는 등 동서 간에 다양한 문물 교류의 통로로서 문명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와 동시에 불교, 이슬람교 등과 같은 종교와 각종 학문 및 예술의 교류의 통로였다. 그 공간의 주인공은 그 험난한 길을 마다 않고 왕래한 대상(隊商)과 구법승, 탐험가 등이었다. 즉, 무역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동서의 많은 상인들, 법현, 현장, 혜초(왕오천축국전, 6C), 마르코 폴로(Marco Polo, 13C, 동방견문록), 오도리크(Odoric da Pordenone, 14C, 동유기)가 목숨을 걸고 이 길을 왕래한 것이다. 이 길의 상징성은 동서문명 교류의 중심 거점인 둔황(敦煌)이 가지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가 집적된 둔황석굴 장경동(藏經洞)을 1900년대 청나라 둔황지역 관리였던 왕원록이 발견한 것이다. 그는 고문서와 회화의 가치를 몰랐고, 열강의 고고학자들이 금품으로 교묘히 매수해 약탈하고 심지에 벽화까지 파내어 본국의 박물관으로 옮긴 것이다. 실크로드의 약탈자라고 칭하는 오부르체프와 올덴부르크(Oburuchev와 Oldenburg, 러)가 1905년부터 약탈을 시작해 스타인(Stein, 영), 펠리오(Pelliot,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포함, 프), 오타니(Otani, 일)1) 등과 같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수많은 고고학자들이 그 길에 동참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극의 현장은 이제 역사 속에 묻히고 실크로드는 유라시아 대륙의 주요한 동서 교류에서 밀리게 된 것이다. 항공과 해운산업의 발달로 위험하고 힘든 이 길을 다닐 필요가 없게 됐지만 구법승과 비단장사 대신 모험과 탐구심으로 무장한 여행객들에 의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제 실크로드는 세계 주요여행사들의 모험과 탐험상품으로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그 지리적 원격성과 거친 사막지형과 혹독한 기후조건으로 인해 일반인들보다는 인류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 수준 높은 오지여행가들의 대표적 여행지로 인식되고 있다.

신실크로드의 시작과 우루무치

실크로드의 루트는 어떤 정형화된 경로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초원로, 오아시스로(천산북로, 천산남로), 바닷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과거 실크로드의 시작은 중국의 장안(서안)에서 시작해 란저우를 거쳐 둔황이 그 험로의 여정이었다. 이들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길에 호탄국, 북쪽길에 쿠차국, 투르판국이 형성한 역사유적도시다. 그중 가장 선호가 많았던 천산남로인 둔황-하미-투루판-우루무치가 활발하게 발달하게 된 것이다. 현재의 신실크로드의 중심 도시는 중국서부 대개발의 핵심지인 우루무치로 다른 도시들 못지않게 오래된 역사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으며 지금도 동양 사람들뿐만 아니라 서양인들에게는 신비한 지역으로 인식돼 오지 탐험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한국의 인천공항에서 5시간이면 다가갈 수 있는 우루무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성도(省都)로서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의 도시다. 아시아 대륙의 중심이면서 위구르족, 카작족, 회족 등 47여 개 소수민족이 오래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고 찬란한 고대 서역문명을 창조해냈지만, 현재 주민의 대다수인 한족 중심으로 자원개발의 혜택이 집중되고 있어 신장 위구르족과 오랫동안 누적된 민족 감정으로 독립 요구 등의 갈등이 상존하고 있다.

명사산.
명사산.

둔황(敦煌)의 막고굴(莫高窟)

오아시스인 둔황은 한나라 때부터 서역으로 나가는 관문으로, 험난한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다음 오아시스를 만날 때까지는 서쪽으로 약 100㎞ 정도를 더 가야 한다. 이 때문에 고대부터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으로 떠나는 순례자, 상인, 군인들은 마지막으로 이곳 둔황에서 여정을 점검하고 필요한 물자를 조달했다. 그리고 자신과 일행의 성공적인 여정을 위해 또한 죽음과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정신적 불안감과 육체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석굴을 만들고 부처님을 모시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반대로 서역으로부터 중원으로 들어올 때는 무사귀환에 감사의 불공을 드리고 기꺼이 거액의 돈을 봉헌해 석굴의 신축과 중건의 결과 수천 개의 동굴인 천불동(千佛洞)이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고비 사막 깊숙한 곳, 둔황 시에서 동남쪽으로 약 25㎞ 떨어진 명사산과 산웨이산 사이를 흐르는 계곡을 끼고 1600m에 이르는 기나긴 절벽에 펼쳐져 있다. 수많은 세력들이 이곳을 지배했지만, 모두 불교를 신봉하는 민족들이었고, 건조지형인 탓에 수천 개의 벌집 같은 석굴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 석굴 벽면은 모두 채색 벽화로 덮여 있으며, 채색된 조각상이 놓여 있다. 벽화는 건식 프레스코 화법으로 화려하게 채색돼 있으며, 석가 일대기나 극락과 해탈을 열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존하는 석굴은 492개, 석굴 벽화의 전체 면적이 4만5000여㎢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최대의 석굴 사원이다.

현재 둔황석굴의 가장 큰 위협은 사막 풍화작용이다. 막고굴의 492개 석굴 중 절반 이상의 벽화가 갈라지거나 색깔이 변하고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최근의 급속한 도시화와 관광객의 급증 때문이다. 둔황시의 과도한 지하수 사용 때문에 월아천(사막 오아시스)의 수심도 1m가 채 못 되는 등 지하수 고갈 현상이 날로 심화 되고 있다. 지하수가 고갈되면서 막고굴로 불어 닥치는 사막바람을 막아주는 주위의 방풍림도 40% 가량 줄어들었다. 방풍림이 줄면서 사막바람에 직접 노출되는 석굴 벽화가 늘어나고, 벽화의 훼손이 심해지고 있는것이다. 사막화의 영향을 이곳 둔황의 인류문화유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명사산(鳴沙山)과 월아천(月牙泉)

이곳 둔황에서 고대 실크로드를 횡단했던 대상들의 험로와 오아시스를 경험하고자 한다면 명사산(鳴沙山)과 월아천(月牙泉)으로 가면 된다. 명사산은 바단지린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나의 봉우리가 아니라 동서로 40㎞, 남북으로 20㎞에 걸쳐 분포한 모래 구릉을 모두 지칭한다. 월아천은 명사산 안에 있는 작은 오아시스로 모래산에 둘러싸인 채 수천 년 동안 잠시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는 신비한 샘이다. 실제로 명사산 일대는 3만 년 전까지는 울창한 삼림 지대였다고 한다. 초생달 모양의 샘과 주변에 서 있는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사막 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멋진 광경이다. 그리고 초승달의 움푹한 호선을 끼고 들어앉은 월아산장(月芽山莊)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월아산장은 제법 오래된 티가 나기도 하지만 사실은 최근에 새로 조성한 건축물이다. 월아천 옆에는 인공호수를 조성해 줄어드는 샘물을 공급하면서 오아시스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카레즈.
카레즈.

카레즈 (坎儿井, Karez)

우루무치나 투루판 같은 신장 위구르자치구를 여행하다 보면 궁금한 점들이 생긴다. 강수량이 많지 않은 데다 매우 건조하고 증발량은 많은 이곳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풍족하게 물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 건조지역에서 생존하고 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던 생명의 근원은 바로 지하용수 시설인 카레즈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위구르어로 ‘칼우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카레즈는 수백 ㎞ 떨어진 천산에서부터 지하 수맥을 찾아서 밭이나 마을 등의 목적지까지 일정한 간격(20~30m)으로 우물을 파고, 다시 각각의 우물 바닥 높이가 일정하도록 높이에 맞춰 수로를 뚫는다. 이는 산 위의 빙하가 녹은 물이나 지하수가 흘러들게 해 물이 증발되지 않고 이용할 수 있게 한 일종의 지하 관개 시설인 셈이다. 이 지하수로는 5~6㎞에서 길게는 몇 천 ㎞까지 이어져 현재 이 수맥들은 투루판 등 주변 도시의 유용한 수자원이 되고 있다. 이 지하수로의 역사는 거의 2000년 전까지 거슬러 가기에 전 세계 건조지역에 유사한 형태가 있는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투루판과 마찬가지로 ‘카레즈’라고 부르나, 이란에서는 ‘카나트(Qanat)’로, 시리아와 북아프리카에서는 ‘호가라(Foggara)’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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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본인 오타니가 약탈한 실크로드 문화재는 당시 조선총독부에 보관되어 있다가 미처 일본으로 반출하지 못하고 현재는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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