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식 / 본지 논설위원, 상지경영컨설팅 대표

안팎으로 ‘과거사’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밖으로는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이 등장하고 안으로는 일제로부터 시작하여 해방이후의 정권에 대한 평가 문제가 핵심이슈가 되어있다. 역사논쟁의 가열이 다음 시대를 규정하는 어떤 암시인지는 아직 분명치가 않다. 대체적으로 지금까지의 흐름은 고구려사에 대한 문제는 ‘반중국’의 정서를 확산시키고 있고 일제하로부터 시작되는 역사재평가는 양분된 논리가 전개되고 있다. 진실을 밝혀 새로운 국가와 민족의 올바른 미래를 밝히는 작업으로 볼 때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가 없다. 문제는 ‘역사 바로지키기’나 ‘역사 바로 세우기’는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새로운 긴장과 갈등 국면을 파생시킨다는 점이다. 중국이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의도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이 문제를 들이민 것은 과거의 역사를 중화식 패권주의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동북아의 중심세력이 되려는 장대한 시나리오의 시작이다. 이렇게 보면 양국 간의 외교적 절충이나 협상에 의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해진다. 한국 측의 비난과 여론 압력에도 불구하고 던져진 카드를 거두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역사의 진실 보다는 새로운 중국 중심의 지배논리를 만들어내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에 의해 여러 차례 중원의 정치권력이 탄생한 중국으로 보면 변방의 국가들은 모두 중국의 역사였다는 인식이다. 그러므로 미국 중심의 패권주의 역사가 진행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대립세력의 중심에 중국을 대입시키는 일이 어렵지 않다. 따라서 ‘고구려 역사’의 왜곡은 그 수단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이슈를 던져 놓고 그것을 해결해 가는 ‘정치’를 통해 세력의 중심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마치 미국이 핵문제를 들고 패권국가로 군림한 과정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무기는 아직 경제력도 아니고 군사력도 아니다. 있다면 역사와 문화다. 특히 동북아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일본도 예외 일 수 없다. 중국-한국-일본을 묶는 역사의 중심축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 중국은 ‘전략적’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중국의 새로운 ‘문화공세’를 짚어 낼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의 ‘과거 역사 평가’ 역시 장대한 시나리오에 속한다. 대통령과 집권당이 헤게모니를 잡고 야당이 반대 입장에 섰던 것이 초기 반응이었다. 야당은 이 작업 속에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공격했다. 이른바 ‘좌파정권의 20년 집권’이 그 배경이라는 것이다. 비단 여야 정파의 대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세력도 양분되었다. 산업화를 주도했던 세력은 야당 쪽에 섰고 신세대와 재야 시민운동 세력은 여당에 동조했다. 일제와 군부독재 시대를 도마에 올리자 공산정권과 그 부역자로까지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일부에서는 국사의 중심에 이 문제를 끌어들인 것은 경제위기를 호도하려는 정치적 음모라는 비난도 하고 있다. 정치적 반대세력의 태생적 원죄를 추궁하여 정치적 ‘족쇄’를 채우려는 음모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개혁의 기류는 간 곳 없고 역사의 부정과 청산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보다 큰 안목에서 본다면 이 작업의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의 통일을 겨냥한 장대한 작업일 수 있다. 바로 세운 역사 위에서라야 새로운 통일시대가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세계사의 재편성이 사상과 체제 경쟁의 결판으로 이루어졌듯이 새로운 시대의 형성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역사 문제가 튀어 나온 것은 하나의 그 징후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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