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에세이] 너는 공부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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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기 청원고 교사
배상기 청원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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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뒷산에서 자주 뵙는 할머니 한 분이 있다. 그 할머니의 자식 자랑은 대단하다. 두 아들을 매우 잘 키워서 한 아들은 의사로, 다른 아들은 박사로 키웠단다. 의사인 아들은 며느리도 의사이며, 박사인 아들도 잘나가는 사람이란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외롭고 초라해 보인다.

할머니는 자녀들이 집에 거의 오지 않는다고 했다. 전화도 잘 안 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이 보고 싶어 전화하면, 아들들은 바쁘니까 저녁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고 끊고는 저녁이 돼도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녀들이 바빠서 그럴 것이라고 위안을 하면서도, 얼굴은 못 봐도 목소리는 듣고 싶었는데 이제는 포기했다고 한다. 어느 날인가에 자녀들에게 전화해서, 엄마가 외로우니 가끔이라도 전화 좀 하라고 사정도 했으나 달라진 것은 없단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 가르쳐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필자가 15년여 전에 담임했던 철규(가명)라는 학생을 생각나게 했다. 철규는 매우 성실했고 공부도 잘했다. 장래 최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는 기본 실력이 있는 학생이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아주 좋았다. 담임선생님과 학교에서 기대를 받는 학생이었다.

어느 날 필자는 그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가야 하니, 자율학습을 빼달라는 것이었다(그 당시에는 학교에서 거의 강제로 자율학습을 했다). 필자는 당연히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할머니 장례로 인한 결석은 인정되기에 큰 문제는 없다고 하면서, 장례가 끝나면 필요한 서류를 함께 보내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철규가 학교에 왔다.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는데도 등교를 한 것이 이상해서 물어봤다. 엄마가 학교에 가라고 해서 왔단다. 장례식까지 있겠다고 했더니, “넌 공부나 해. 이런 쓸데없는 일 때문에 결석할 생각하지 말고…”라고 했단다.

철규 어머니로부터 철규의 등교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왔다고 대답하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며칠간 결석해도 되는데 왜 이렇게 일찍 학교에 보내셨느냐고 물었다. 철규 어머니는 단호히 말했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이 대학입시 이외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제 할머니께 인사를 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 그 어머니의 주장이었다. 학생은 공부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고 순간 당황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는 일이, 학생이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를 하는 일보다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말이 필자에게는 너무 생소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인륜지대사 중 하나인 할머니의 장례를 사소한 일이라고 하다니 필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길러준 할머니일 텐데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필자는 학생이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조상들에게 감사하는 것을 배우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고인이 된 할머니께 자손의 예의를 다하는 것이 소중한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 장례식은 아이에게는 믿고 의지한 사랑하는 어른과 영원히 작별하는 슬픔을 배우는 중요한 교육의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부모와 자녀는 서로 의지하면서 사랑하고 살아가야 한다. 대학입시 공부가 아무리 중요해도 가족의 사랑만큼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넌 공부나 해!”라고 하면서 할머니의 장례식에도 못 가게 하는 부모라면, 필자가 만난 뒷산 할머니처럼 될 수 있다. 또한, 그런 사람은 자녀에게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가르치지 않는 냉정한 부모이자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다.

조상에 대한 제사와 차례를 보면서 필자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영원하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부모는 자녀에게 “넌 공부나 해!”라고 하기 이전에, 가족이 서로를 걱정하고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부모와 자녀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한 관계를 영원히 지속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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