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수 본지 논설위원/한양대 에리카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박기수 한양대에리카 교수
박기수 한양대에리카 교수

2010년부터 BBC가 제작한 <셜록>은 현재진행형 텍스트다. 현재 시즌 Ⅳ까지 총 13편(극장용 <셜록: 유령신부>포함)이 발표됐지만 누구도 완결됐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작사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즌이 계속되기를 희망하는 셜로키언들의 강한 바람일 것이다. 원작 소설로부터 시작된 강력한 팬덤이 <셜록>을 통해 폭발적인 확장을 보이면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셜록>의 공동 기획자이면서 시나리오를 나누어 집필했던 스티븐 모팻이나 마크 게이티스의 견해에 따르면, 이 작품은 19세기 탐정을 현재로 소환했다는 점과 원작과는 달리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는 셜록과 왓슨에 초점을 맞추는 차별화 전략을 구사한다. 21세기로 소환된 셜록은 홈스라는 성 대신 이름 셜록으로 불리며, 스스로 고기능 소시오패스(High Function Sociopath)라고 선언하고 미행과 염탐보다는 GPS를, 전보가 아닌 휴대폰 문자를 활용한다. 셜록이 보내는 문자 메시지는 타이포그래피로 화면에 제공되며, 스톱모션과 플래시백으로 사건 현장을 재구성해 추리 과정을 시각화하거나 한스 짐머가 작곡한 영화 <셜록  홈스>의 곡을 데이비드 아놀드와 마이클 프라이스가 변주한 OST는 테마별 고유한 분위기를 환기하며 속도와 긴장을 고조시킨다. 1887년 발표된 이래 시대별, 미디어별로 숱하게 제작됐던 원작의 식상함을 현재화에 재구성하는 방식과 초점의 변화를 꾀해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을 구현한 것이다.

더구나 <셜록>은 기존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서사적 완결을 지향하는 텍스트가 아니다. 시즌 Ⅳ까지 원작의 스토리를 활용해 각 화별 서사는 사건 해결로 마무리되지만 <셜록> 시리즈가 거시적인 갈등 구조로 전개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사건 중심 서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서사적 완결이라는 성격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셜록>은 갈등중심, 사건중심, 결과 중심의 서사가 아니라 셜록의 괴팍한 성격과 습관, 주변을 배려하지 않는 추리기계로서의 면모, 셜록의 또 다른 자아와 같은 모리아티나 마이크로프트와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을 체험하는 과정중심의 서사가 특징이다. 시즌별로 감독이나 작가를 달리해 셜록의 캐릭터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흥미롭게 구현하기 위해 편당 90분이라는 파격적인 시간을 제공했다. 

홈스가 셜록이 된 것은 단지 성이 아닌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요구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했다는 의미다. 이야기는 홀로 설 수 없다. 이야기(story)를 구현하는 방법(tell)과 향유자와 소통할 수 있는 회로(ing)가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비로소 온전한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 ‘지금 이곳’이 요구하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향유자와 얼마나 소란스레 대화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만 한다.

최근 콘텐츠 향유 생태계의 변화는 놀랍다. 지배적인 채널의 변화는 물론 그로 인해 스토리텔링의 형질까지 변화하고 있지 않은가? 플레이리스트나 72초 TV가 제공하는 웹드라마의 파격이나 넷플릭스와 같은 OTT로 인한 향유형태의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이와 같은 스토리텔링의 형질 변화는 단지 이야기의 성격이나 말하기 방식의 변화에만 머물지 않고, 과연 스토리텔링이 무엇이며,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갈등의 연성화’(심각한 갈등을 피하고 편안한 심리로 콘텐츠를 향유하려는 경향)나 상황중심, 대사중심의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경향은 일시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현실의 갈등만으로도 힘겹고 콘텐츠로 구현되는 허구의 세계보다 더 극적인데,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더 극단적인 갈등을 보며 피곤해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스토리텔링이 서사에서 출발하고, 서사는 산문정신을 기반으로 삶과 세계에 대한 탐구를 전제로 한다는 전통적인 믿음은 휘발된 지 이미 오래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종이의 집>만 보아도 우리가 즐기는 것이 갈등을 기반으로 한 가치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내용 없는 즐거움이라 비판하기 전에 ‘지금 이곳’의 스토리텔링의 변화에 좀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갈등이 누락됐다면, 가치가 휘발됐다면, 그것을 대신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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